사회종합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안현수 열풍이다.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 이는 러시아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따낸 쇼트트랙 금메달이었다. 소치올림픽을 겨냥해 안현수를 영입한 홈팀 러시아의 의도가 적중했다. 러시아에 안현수는 복덩이가 됐다. 반면 한국 팬들은 안현수의 금메달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안현수의 금메달 획득 직후 대한빙상연맹 홈페이지가 마비됐고, 안현수 관련 기사 댓글엔 한국 쇼트트랙계를 원망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 안현수가 그리운 한국 팬들
사실 소치올림픽에서 ‘안현수’라는 이름은 없다. 한국 언론과 팬들만 기억하는 이름이다. 그의 정식 이름은 ‘빅토르 안’이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다. 익히 잘 알려졌듯, 안현수는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빅토르 안’보다 ‘안현수’가 편하다. 한국 팬들은 여전히 ‘안현수’를 그리워한다.
안현수는 소치올림픽 직전부터 한국 언론과 팬들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여자친구 우나리 씨에 대한 관심도 대폭발했다.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선수, 과거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던 간판 쇼트트랙 스타가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 TV 화면에 선명하게 잡혔다. 한국 팬들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안현수가 얄밉다기보다는, 국내 쇼트트랙계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늘어나면서 안현수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안현수 특유의 폭발적 스퍼트는 녹슬지 않았다. 초반에 뒤지다 레이스 막판 폭발적 스퍼트로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기술은 세계 최강이다. 안현수의 후배들인 한국 대표팀 선수들도 이를 당해내지 못한다. 안현수는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추월하는 기술로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무릎 부상과 파벌문제로 빙상연맹과 갈등을 빚고 러시아로 떠났다. 지금 국내 쇼트트랙 팬들은 쇼트트랙계가 너무나도 밉다. 선수관리만 제대로 됐다면 안현수가 러시아로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현수가 그 기량을 유지한 채 태극마크를 달고 소치올림픽에 나섰다면 메달도 한국에 집계됐을 것이다. 물론 현 상황에선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말이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안현수의 한국 대표 탈락과 러시아 국적취득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3년 전 일을 지금 조사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혹시 빙상연맹의 부조리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안현수 개인의 쇼트트랙 인생사를 들춰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다.
▲ 제2의 안현수가 없다
안현수 열풍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조짐이다. 왜 그럴까. 단순히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선수가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게 신기해서가 아니다. 안현수가 떠난 한국 쇼트트랙에 안현수만한 특급스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쇼트트랙이 안현수에 버금가는 혹은 안현수 그 이상의 아우라를 지난 초특급 에이스를 발굴했다면, 그리고 이번 소치올림픽서 안현수에게 대적할 정도의 기량을 보여줬다면 국내에서 지금과 같은 안현수 열풍이 불었을지는 의문이다.
남자 대표팀은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 이호석, 김윤재로 구성됐다. 월드컵시리즈와 세계선수권서 고전하면서 소치올림픽 개인전엔 신다운과 이한빈만 나선다. 소치올림픽에서 드러난 두 사람의 경쟁력은 냉정하게 보면 예전 김동성, 안현수, 이정수 등 선배 에이스들에 비하면 다소 부족하다. 물론 충돌하고 넘어지는 등 불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실력이다. 소치올림픽 종목별 예선과 결선서 안현수와 함께 레이스를 펼친 국내 선수들은 번번이 안현수를 꺾지 못했다. 이게 한국 쇼트트랙의 현 주소다.
소치올림픽서 한국 쇼트트랙의 최강자 이미지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남녀 모두 경기력이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수년 전부터 불거진 파벌, 구타 논란은 물론이고 특급 에이스가 실종된 경기력까지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이번 올림픽 잔여 일정서 메달을 획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밑바닥부터 돌아봐야 한다. 열악한 인프라, 지원 여건 등을 개선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탄탄한 토양 속에서 제2의 안현수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타국에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그게 쇼트트랙계가 국내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안현수 열풍에 한국 쇼트트랙의 슬픈 현실이 투영돼있다.
[안현수(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가운데, 아래). 사진 = 소치(러시아)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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