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피겨여왕이 작별을 고했다.
김연아가 21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서 144.19점을 기록했다. 쇼트프로그램(74.92점) 점수와 합한 최종점수는 219.11점. 밴쿠버올림픽서 기록한 228.56점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은메달을 땄다. 그래도 꽤 성공적인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연아에겐 23일 갈라쇼가 남아있지만, 정식 무대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이 마지막이었다.
김연아는 24세다. 1996년, 6세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천재성이 있었다. 피겨 불모지 한국에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국내무대를 휩쓴 김연아는 2004~2005시즌에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필생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와 경쟁하면서 더욱 성장했다. 시니어 진입 이후 더욱 진일보했다. 아사다도 적수가 아니었다. 김연아는 밴쿠버올림픽 우승 이후 허리 부상 등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으나 결국 다 이겨냈다.
김연아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그녀가 그동안 거둔 찬란한 성과가 모두 나온다. 그러나 김연아가 현역에서 물러나면 사람들은 김연아를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1개를 따낸 위대한 스케이터’로 기억할 것이다. 물론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은 대단하다. 하지만, 김연아가 이날까지 명예롭게 퇴장할 때까지의 과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김연아는 외로웠다. 정상이란 누구나 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더욱 힘겨웠다. 기본적으로 국내 피겨 인프라가 너무나도 척박하다. 외신들도 김연아에겐 찬사를 보내면서도, 실제로 아이스 쇼 등을 취재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서 우연히 한국 피겨 환경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보물이 튀어나왔냐고. 김연아는 잡초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대견했다.
김연아를 견제하는 세력도 많았다. 라이벌 아사다 마오를 비롯해 유럽 선수들과 미주 선수들까지. 이번 소치올림픽만 해도 율리나 리프니츠카야, 아들레나 소트니코바 등 홈팀 러시아 선수들이 홈 텃세를 등에 업고 김연아를 위협했다. 좋지 않은 빙질, 세계 최강자를 시샘한 심판들의 인색한 판정. 김연아로선 늘 그렇듯.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렇게 지난 19년을 피겨스케이터로 살아왔다.
부상도 있었다. 김연아의 허리와 발목은 정상이 아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2년 정도 쉬면서 CF만 찍었을 땐 ‘돈연아’라는 말도 들었다. 그냥 스타도 아닌, 특별한 스타였기에 김연아로선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컸다. 알고보면 남들과 다름 없는 20대 초반의 소녀인데, 우리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겼던 것도 사실이다. 김연아는 4800만 국민들의 염원과 기대를 안고 19년을 살았다.
김연아는 올림픽 2연속 메달이 확정된 뒤 활짝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 19년 피겨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 영광스러운 결과를 얻었으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피겨 인생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제는 웃어도, 울어도 된다. 김연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고 팬들과 이별을 알렸다.
김연아의 은메달. 좀 아쉽긴 해도, 이제는 김연아와 작별을 할 시간이 됐다. 김연아도 이젠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올림픽 2연속 메달 획득, 금메달과 은메달 1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녀에게 무엇을 더 원할 수 있겠는가. 김연아가 떠난다. 떠날 때까지 김연아는 월드 챔피언이었다. 눈물과 함께 퇴장하는 김연아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뜨거웠던 만남처럼. 이젠 뜨겁게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고마워요, 김연아.
[김연아. 사진 = 소치(러시아)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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