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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안현수(러시아, 빅토르 안)라 쓰고 황제라 읽는다.
안현수는 22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이번 대회 1000m에서 귀화 후 첫 금메달을 따냈던 안현수는 값진 금메달 2개를 추가하며 지난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 이후 8년 만에 올림픽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세간의 평가에 "살아있다"고 답한 안현수다.
안현수는 이날 500m 금메달을 따내면서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전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됐다. 토리노 대회에서 1000m와 1500m, 5000m 계주 금메달, 500m 동메달을 따냈던 그는 이번 대회 500m에서 정상에 오르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개인 8번째 올림픽을 목에 걸었다.
뿐만 아니라 안현수는 지금의 조국인 러시아에도 큰 선물을 알렸다. 이날 계주 금메달로 우크라이나에서 귀화한 블라디미르 그리고레프를 비롯해 세멘 엘리스트라토프, 루슬란 자카로프에게도 금메달을 선물했다. 러시아 사상 첫 올림픽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임은 물론이다. 이만하면 국가의 영웅이다.
이날 계주는 안현수가 '황제'임을 확실히 증명한 경기였다. 15바퀴를 남기고 선두를 미국에 뺏긴 러시아는 잠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7바퀴를 남기고 바통을 이어받은 안현수가 절묘한 인코스 파고들기로 J.R 셀스키를 추월했고, 이후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러시아 선수들은 한 차례도 리드를 뺏기지 않았다. 2바퀴를 남기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안현수는 그야말로 여유 있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확정했다.
안현수가 가는 길이 곧 역사다. 안현수는 명실상부 세계 쇼트트랙의 1인자다. 귀화 이전에도 그를 막을 자는 없었다. 2002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을 차지하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동계아시안게임과 월드컵, 세계선수권은 안현수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한국 쇼트트랙의 고질병인 파벌싸움이 안현수의 발목을 잡았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당시 안현수를 지도한 이는 남자대표팀 송재근 코치가 아닌 여자대표팀 박세우 코치였다. 안현수는 남자선수들이 아닌 여자선수들과 훈련하면서도 그 어렵다는 올림픽 3관왕을 달성했다. 피나는 노력 없이 절대 불가능한 결과였다. 하지만 2008년 무릎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고, 2009년 대표선발전서도 고배를 마셨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소속팀 성남시청이 해체됐다.
한국에서 설 자리가 없던 그는 결국 2011년 4월 러시아로의 귀화를 시도했고, 8개월 뒤인 12월 국적을 취득했다. 스케이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소치올림픽에서 업적을 남겨야 했던 러시아는 안현수에게 적극 러브콜을 보냈고, 안현수는 이를 수락했다. 그렇게 그는 '빅토르 안'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2012년 쇼트트랙월드컵 1차대회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이후에도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진가를 발휘했고, 20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14 유럽쇼트트랙선수권에서 4관왕으로 종합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무려 8년 만에 올림픽 3관왕에 등극했다. 쇼트트랙 전 종목 금메달 획득으로 기쁨을 더했다. 황제는 죽지 않았다. 잠시 휴식기를 가졌을 뿐이다.
[안현수가 500m 결승서 1위로 통과하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 소치(러시아)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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