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혜진이가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은행의 정규시즌 2연패. 박혜진(24)의 활약이 대단했다. 박혜진은 올 시즌 13.4점(5위), 3.8어시스트(7위), 5.2리바운드(8위), 1.2굿수비(4위), 출전시간 37분10초(2위), 공헌도 844.10(4위)으로 대부분 분야에서 리그 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박혜진은 정규시즌 MVP 1순위로 거론된다. 지난해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휩쓸었던 임영희 역시 MVP 2연패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세는 박혜진이다. 그만큼 인상 깊은 모습을 심어줬다.
박혜진은 여고농구 명문 삼천포여고를 졸업했다. 청소년대표 경험도 있다. 2008-2009시즌 전체 1순위로 우리은행에 지명돼 프로에 데뷔했다. 신인왕을 받았다. 올 시즌은 6년차. 2010-2011시즌 자유투상을 한 차례 받긴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위성우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2011년 11월 전임 김광은 감독에게 불미스러운 사건을 당해 농구를 그만둘뻔한 위기도 있었다. 당시 박혜진이 농구를 그만뒀다면 우리은행은 물론, 한국여자농구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뻔했다.
▲ 승부사 기질 대폭발, 화려함과 내실의 조화
박혜진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 역시 승부처에서의 대단히 냉정하고도 효율적인 활약이다. 박혜진은 올 시즌 접전 승부서 위닝샷을 세 차례나 꽂았다. 위성우 감독은 “박혜진이 결정적인 슛을 성공하면서 3~4승을 한 것 같다”라고 했다. 일단 3점슛 성공률이 36.6%로 지난 시즌 23%에 비해 크게 올라갔다. 올 시즌 슛 폼을 교정한 뒤 외곽슛 적중률이 좋아졌다. 또한, 승부처에서 과감하게 시도한 외곽슛이 몇 차례 들어가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박혜진은 올 시즌 자유투도 45개 연속 성공하며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대담하다. 자유투 성공률 94.9%로 리그 1위다.
이런 부분은 누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수년간 농구를 한 선수들도 승부처만 되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박혜진은 프로 6년만에 자신의 잠재력을 터트렸다고 보면 된다. 그 시점은 이번 정규시즌이 아니라 지난해 10월 방콕 아시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박혜진의 맹활약에 아시아가 놀랐다.
박혜진은 내실도 갖췄다. 178cm의 신장을 바탕으로 좋은 수비력을 선보인다. 원래 박혜진의 수비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 수비에도 눈을 떴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큰 신장으로 상대 가드를 압박하는 능력이 좋다. 신장에 비해 스피드도 뛰어나다. 풀코트 프레스, 하프코트 프레스, 트랩 디펜스 등 우리은행 특유의 다양한 수비전술과 속공의 중심은 박혜진, 이승아 백코트 듀오다. 특히 박혜진의 탁월한 하드웨어와 해결사 잠재력 폭발은 우리은행 전력에 큰 보탬이 됐다. 박혜진이 사실상 티나 톰슨의 공백을 너끈하게 메웠다. 이것만으로도 MVP 1순위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 강하지 않은 몸싸움과 아직은 넓지 않은 시야
박혜진 역시 보완해야 할 점은 있다. 위 감독은 “몸싸움이 좋지 않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벌크업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몸싸움 자체를 그리 선호하는 경향이 아니다 보니 승부처에서 영리하게 상대 파울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좋지 않다. 위 감독은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구력이 쌓여야 한다. 박혜진 스스로 몸싸움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는 있다.
또 하나. 박혜진의 경기운영능력과 시야를 봐야 한다. 박혜진의 경기운영능력은 좋다. 상황판단능력이 뛰어나다. 이승아와 함께 뛸 땐 2번을 맡는 경우가 있지만, 홀로 투입될 땐 능숙하게 1번을 소화한다. 다만, 동료의 찬스를 보는 시야는 아직 떨어진다는 평가다. 때문에 확실한 찬스가 났음에도 제 때 패스가 나가지 않아 공격이 지체되기도 한다. 그만큼 공격에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된다. 위 감독은 “포인트가드는 자신보단 동료를 잘 살려줘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부분에선 스스로 한번 더 알 껍질을 깨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 여자농구 초특급 우량주
박혜진은 우리은행의 네 시즌 연속 최하위, 다시 말해 암흑기를 함께했다. 전임 감독들은 박혜진을 꾸준히 중용했다. 그리고 위 감독을 만나서 잠재력을 터트렸다. 포워드, 센터도 마찬가지지만, 가드는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다른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위치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겪어보면서 감각을 익혀야 한다. 박혜진은 약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아 마침내 WKBL 최정상급 가드로 성장했다. 그리고 팀도 최강으로 거듭났다.
과거 전주원, 이미선(삼성생명) 역시 실업 초년병 시절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얻은 끝에 한국 여자농구 가드 계보를 이었다. 최윤아(신한은행) 역시 전주원과 함께 뛰면서 이미선의 뒤를 잇는 특급가드로 성장했다. 그 계보를 박혜진이 잇는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아직 전주원-이미선-최윤아에 비하면 박혜진은 많이 부족하다. 반대로 보면 아직 보여줘야 할 게 더 많이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주원은 현역시절 공격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놀라운 패싱센스와 경기운영능력 등 전형적인 포인트가드 스타일이었다. 이미선과 최윤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혜진은 이들과는 스타일이 다른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대성할 자질이 보인다는 게 농구인들의 평가다. 그런 점에선 오히려 박혜진이 한국여자농구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고 볼 수도 있다. 확실히 남다르다. 단순히 올 시즌 MVP 1순위로 거론돼선 안 될 것 같다. MVP 차원을 능가하는 초특급 우량주임에 틀림없다. 한국여자농구에 바야흐로 박혜진 시대가 도래했다.
[박혜진.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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