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김진성 기자] “2시까지 던지라고 해라.”
LG 김기태 감독이 웃으면서 한 이 말이 현실화됐다. 14일 삼성과 LG의 시범경기가 열린 대구구장. 경기 전 KBO는 “민방위훈련으로 오후 2시부터 15분간 경기가 중단된다”라고 밝혔다. 야구가 민방위훈련으로 중단된 적이 드물기 때문에 이날 야구장에선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시범경기 도중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기가 15분간 정지됐다.
경기 전 김 감독과 삼성 류 감독이 걱정한 건 투수교체였다. 시범경기에선 투수들이 철저하게 계획된 상황에서 등판한다. 투구수와 이닝이 결정되고 마운드에 오른다는 의미. 보통 공수교대 때 투수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기 중에 민방위훈련이 시작하면 투수들이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감독들의 계획대로라면, 선발투수가 민방위훈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덕아웃에서 15분간 대기한 뒤 다시 던져야 한다는 의미. 이럴 경우 투수에겐 부상 위험이 뒤따른다. 어깨를 의도적으로 달궈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류 감독은 “미리 좀 알려주지”라고 난색을 표했다. 류 감독과 김 감독 모두 경기 전 KBO의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마운드 운영 계획을 수정했다. 김 감독은 “제국이에게 오후 2시까지만 던지라고 해라”고 했다.
류제국과 밴덴헐크 모두 이닝과 투구수가 아닌 ‘시간제’로 마운드에 올랐다. 결국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오후 1시 52분. 3회말 삼성 공격이 끝나자 일제히 양팀 선수들이 심판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심판들은 경기를 진행했다. 1시56분. 4회초 LG 공격이 끝난 뒤엔 김기태 감독이 직접 구심에게 경기를 속개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오기도 했다. 그래야 후속 투수들을 바로 준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시56분에 4회말 삼성의 공격이 시작했다. 선두타자 이흥련이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자 1시59분이 됐다. 후속 김상수 타석에도 경기가 진행됐다. LG 선발투수 류제국은 초구 볼을 던진 뒤 2구째에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그러자 민방위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류제국과 LG 수비수들은 일제히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김상수도 저벅저벅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15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선수들은 덕아웃에서 기다렸다. 15분 뒤 LG 신승현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신승현은 2시에 경기가 중단되기 전 미리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김상수는 다시 타석에 들어와서 1루 땅볼로 물러났다. 후속 정형식이 포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나며 삼자범퇴. 그러나 4회말이 끝나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이 넘었다.
이날 동시에 경기가 열린 대전구장에선 정확하게 이닝이 끝나는 동시에 사이렌이 울렸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에선 경기 도중 민방위훈련이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경기가 중단됐다. 류중일 감독은 “비 때문에 경기가 갑자기 멈추는 것과 똑같다”라고 웃었지만, “야구하고 민방위훈련과 무슨 상관이 있지?”라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경기 전 취재진들과 선수들 사이에서는 “외국인선수들에게 왜 이러는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렸다. 한국 문화에 낯선 외국인선수들이 갑자기 전국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당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분단국가의 특수한 상황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선수도 분명히 있다. 경기는 삼성의 완승. 하지만, 야구 팬들은 좀처럼 보기 드문 희귀한 광경을 봤다. 민방위훈련과 동시에 정적이 깃든 야구장. 아무래도 평상시엔 상상이 안 되는 장면이다.
[대구구장.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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