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사이드암 투수의 전성시대가 이어질 조짐이다.
지난해 국내야구의 특징 중 하나는 사이드암, 언더핸드 등 잠수함 투수의 득세였다. LG 신정락 우규민, NC 이재학 이태양 등은 선발로 뛰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삼성 심창민 신용운 두산 오현택 변진수 넥센 한현희 마정길 LG 김선규 롯데 김성배 이재곤 정대현 한화 임기영 정재원 NC 고창성 KIA 유동훈 박준표 등 중간계투 요원은 넘쳐났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었다. 성적도 괜찮았다. 지난해 신인왕을 차지한 이재학은 10승5패 평균자책점 2.88(2위)이라는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우규민도 10승9패 평균자책점 3.91로 괜찮았다. 김성배도 31세이브로 롯데 뒷문을 잘 잠갔다. 홀드 10걸 중에선 1위 한현희(27개)를 비롯해 정대현(16개), 심창민(14개) 등 사이드암 투수가 3명이나 됐다.
▲ 사이드암 지존의 귀환
사이드암 지존이 귀환했다. 임창용이 7년만에 친정팀 삼성으로 컴백했다. 임창용이 역대 국내 사이드암 투수 중 지존으로 불리는 건 이유가 있다. 보통 중, 고등학생 들이 투수를 시작할 때 구속이 나오지 않을 경우 사이드암으로 던진다. 구속이 많이 나오고 공이 묵직한 투수는 정통파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정통파로 던지는 게 공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1군에서 살아남은 사이드암 투수 대부분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투수는 많지 않다.
그런데 임창용은 야쿠르트 시절 무려 160km를 찍었다. 그것도 공 끝 변화가 굉장히 심해 ‘뱀직구’로 불렸다. 특수한 케이스였다. 온몸을 비틀어 던지는 데 정통파보다 더 많은 구속이 나온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임창용 특유의 유연함과 손목, 팔, 어깨 등의 강한 근력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임창용은 시카고 컵스 시절 팔꿈치 재활을 마친 뒤에도 150km 초반의 구속을 꾸준히 찍었다.
임창용이 한창 몸 상태가 좋았던 야쿠르트 시절에는 스리쿼터, 정통파에 가까운 오버스로 폼으로도 던졌다. 상체를 좀더 꼿꼿이 세우느냐에 따라 폼이 달랐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팔 스윙과 안정적인 제구를 자랑했다. 그만큼 몸이 탄탄했고 유연했다. 사이드암이 강속구를 뿌리는 것도 당황스러운 당시 일본타자들로선, 폼마저 일정치 않았으니 ‘마구’로 느꼈을 수밖에 없다.
▲ 사이드암, 보는 눈이 즐겁다
국내 야구 팬들이 임창용의 삼성 컴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오승환을 잃은 삼성의 특수한 상황이 맞물렸지만, 기본적으로는 임창용의 피칭 폼 자체에 대한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했듯 임창용은 사이드암 중에서도 특별하고 경쟁력이 높다. 임창용이 몸만 잘 추스를 경우 한국에서 여전히 최강 사이드암 명성을 떨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건 임창용이 복귀 기자회견서 언급한 ‘상대해보지 않은 타자’와의 대결이다. 임창용이 떠난 뒤인 2008년 이후 본격적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성장한 타자들과 임창용의 맞대결이 기다려진다. 두산 김현수 롯데 손아섭 SK 최정 한화 이용규 정근우 넥센 박병호 강정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의 1~2회 WBC, 베이징올림픽 선전의 주역들이기도 하다. 일발장타력을 갖춘 외국인타자들과의 맞대결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포인트다. 임창용의 강속구와 외국인타자들의 경기 종반 파워 맞대결은 팬들에게 좋은 볼거리다.
지루함이 곧 도태로 이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다. 한국야구 역시 지난해 2년 연속 700만관중 동원에 실패했다. 잘 나갔던 한국야구의 관중이 2006년 이후 7년만에 뚝 떨어진 시즌이었다. 월드컵, 아시안게임의 변수를 맞이하는 한국야구로선 사이드암 투수의 득세와 임창용의 복귀가 굉장히 반갑다. 그 자체로 볼거리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 낯설음과 익숙함의 묘한 경계선
굳이 임창용 정도의 경쟁력이 아니더라도, 최근 1~2년 사이 1군에 살아남았던 사이드암 투수 대부분은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 과거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사이드암 투수는 대부분 직구의 완급조절로 승부했다. 일단 낮은 릴리스포인트 자체의 생소함만으로도 타자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들어갔다. 코너워크와 느린 직구만으로도 매력이 있었다. 또한, 투구 궤적상 우타자에게 최대한 팔을 숨기기 때문에 타이밍 싸움에서 유리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왼손 파워히터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교한 우타자도 늘어났다. 사이드암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도래했다. 최근 득세한 사이드암 투수는 대부분 좌타자에게도 약하지 않다. 오히려 우타자보다 더 강한 면모를 보이는 투수도 있었다. 결국 우타자는 물론이고 좌타자에게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떨어지는 변화구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좌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체인지업 수준을 넘어 싱커, 스플리터, 커브, 슬라이더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다양한 무기가 낮게, 그리고 타자에게 낯선 궤적을 그릴 때 위력이 배가된다.
이런 이유로 사이드암 전성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임창용이 돌아온 2014년. 사이드암 투수는 올 시즌에도 희망을 노래한다. 기본적으로 지난해 좋은 활약을 펼쳤던 투수들의 경우 올 시즌 전망도 어둡지 않다. 시범경기서 딱히 사이드암 투수들이 집단적으로 부진한 모습은 없었다. 다만 각팀 1군에 살아남은 사이드암 투수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장점인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변수다. 국내에 워낙 정교한 타자가 많기 때문에 결국 타자의 눈에 익숙해지면 사이드암 투수가 다시 고전하는 흐름이 찾아올 수 있다.
[임창용(위, 가운데), 이재학(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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