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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스크린을 바라보기 힘겨운 작품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 아버지의 복수, 어른들에게 버림받고 이용당하는 아이들. 모두가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성범죄와 마약, 살인. 모두 어른들의 세상에서 벌어질법한 사건이지만 이는 아이들 세상에서 벌어졌다.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딸을 잃은 아버지 상현(정재영)이다. 상현은 아내를 잃은 후 오직 딸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일이 바빠 야근하기 일쑤지만, 딸을 그 누구보다 아낀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의 이유이자 의미인 딸이 죽었다. 그것도 마약을 먹여 성폭행을 했다. 그렇게 버려진 상현의 딸은 아무도 없는 버려진 목욕탕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상현 역을 맡은 정재영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연기자로 살아가지만 집에서는 그 역시도 평범한 가장일 터. 두 아들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다. 이런 정재영은 '방황하는 칼날' 출연 결정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소재가 무겁고, 나 역시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그런 것들이 걸리긴 했다. 아이가 딸이었다면 좀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거나, 출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정재영이었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모르겠다. 출연을 했을지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은 알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방황하는 칼날'은 현실에서도 일어날법한 상황이다. 내가 딸이 있었다면, 이런 상황을 영화에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공감을 했을 수도 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할 필요가 있었고, 하고 싶었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영화 속에서 상현의 감정은 그 누구도 느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을 누가 느끼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스크린 속에 들어간 배우들은 그 감정을 억지로라도 느껴야 했고, 생각해야 했다. 정재영은 "정신적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촬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인 게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다. 느껴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는 상현의 감정 말이다. 그런 것에 관련된 영화를 보긴 했는데 상황이 모두 다르다. 정신적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감정을 잡으려고 했던 영화였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가 쉽게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라'고 한다. 그중 최고인 것 같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 이도 느끼기엔 어려운 감정이다. 하지만 딸이 성폭행 후 죽은, 그것도 성폭행 당한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의 감정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 것일까. 정재영은 "아버지가 딸을 그렇게 만든 이들을 죽인다. 이것은 그냥 복수가 아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원한을 풀어주려는 것도 아니고, 미안함의 감정이다"고 말했다.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이 아니다. 아버지 상현의 살인은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상현의 감정은 범인들에 대한 분노가 아닌, 딸에 대한 미안함이다. 결국 '방황하는 칼날'은 해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 영화가 끝까지 개운하지 않다. 통쾌함과 해답을 주는 영화가 많은데, 이런 문제를 주는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번쯤은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만 생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됐다. 영화 속 등장하는 아이들도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좋지 않은 어른을 만나 이용을 당하고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상현의 살인이 통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편 '방황하는 칼날'은 한 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의 가슴 시린 추격을 그린 드라마다. 정재영이 아버지 상현으로 분했으며, 이성민이 형사 억관을 출연했다. 10일 개봉 됐다.
[배우 정재영, 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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