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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창원 김진성 기자] “왜 제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모비스 양동근은 챔피언결정 4차전과 6차전 이후 인터뷰실에 들어와서 똑같은 얘기를 했다. 자신이 수훈선수로 꼽힐 이유가 없는데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동근이가 볼 있을 때와 없을 때 코트를 잘 헤집고 다녔다. 궂은 일에 충실했다. 가장 잘 해줬다”라고 극찬했다. 선수 보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 감독은 이미 양동근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양동근이 자신의 활약에 만족하지 못했다.
양동근은 모비스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가 확정된 뒤 “내가 해줘야 할 부분을 하지 못했다.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잘했다면 더 쉽게 했을 것이다. 이번 챔프전을 통해 많이 배웠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코트에서 같이 뛰는 선수들, 벤치에 앉아서 응원해준 후배들 모두 정말 고맙다”라고 했다. 양동근은 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했을까. 단순히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자신을 돌아본 건 아니었다.
▲ 양동근 움직임,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양동근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양동근은 챔피언결정전 6경기서 평균 7.5점 3.2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차전서 4쿼터에만 17점을 몰아친 것 외에는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 양동근이 기본적으로 동료들과 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한 건 이런 객관적 기록 때문이기도 하다. KBL을 대표하는 가드로서 어울리지 않는 수치인 건 확실하다.
LG 김진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내내 양우섭에게 양동근 전담마크를 지시했다. 양우섭은 공과 동료의 움직임도 거의 체크하지 않고 사실상 ‘페이스 가딩’을 했다. 이 전략은 LG에 쏠쏠한 재미를 안겼다. 물론 양동근은 3차전을 시작으로 4~5차전을 뛰면서 이런 수비에 적응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공략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양동근은 올해 한국나이로 34세다. 왕성한 체력을 과시했던 20대 시절과 비교할 때는 움직임과 활동량이 살짝 떨어졌다. 본래 양동근의 주특기는 수비와 볼 없는 움직임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많은 움직임을 요구한다. 그는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예전에 군대 가기 전에는 이것보다 더 많이 뛰고도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덜 뛰게 되고, 또 더 힘들다”라고 털어놨다.
올 시즌 모비스는 기복이 심했다. 정규시즌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지 못했다. 모비스 특유의 수비조직력이 2%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다. 예전보다 2% 부족한 양동근의 움직임이 핵심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코트 곳곳을 휘저으며 공을 쓸어담고 공격자를 질식시키는 맛이 예전보다 살짝 떨어진 게 전체적인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 양우섭을 확실하게 공략하지 못한 것도 예전과는 달리 힘과 스피드가 조금씩 떨어진 영향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모비스는 우승했다. 그래서 양동근은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자신의 몫까지 동료들이 뛰어줬다고 본 것이다.
양동근은 “태영이 형과 태종이 형을 보면 난 힘들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문태영과 문태종 형제는 한국나이로 37세와 40세 백전노장이다. 양동근은 “태영이 형은 슛 하나를 연습할 때도 경기 때처럼 집중한다. 정말 부지런하다. 대표팀에서 태종이 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솔선수범하는 두 노장을 보면서 양동근은 자신을 채찍질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한 건 이런 영향도 있었다.
▲ 미안함과 고마움이 양동근을 업그레이드 하는 동력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미안함과 고마움이 양동근을 업그레이드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양동근은 지금도 포인트가드로서 시야가 넓은 편이 아니다. 한양대 시절부터 정통 포인트가드라기보다 2번 슈팅가드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 어시스트보다는 득점이 더 많았다. 이런 스타일은 프로 초창기 에도 이어졌다. 본인 스스로 볼을 갖고 휘젓는 농구에 익숙했다.
유 감독은 일전에 “동근이를 개조하는 데 3년이 걸렸다”라고 한 적이 있다. 경기 흐름을 볼 때 필요 이상으로 드리블을 많이 하는 부분, 플레이의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3년이란 시간 이후 양동근의 플레이가 업그레이드 됐다는 것이다. 프로 입단 이후에도 자신의 약점을 고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부지기수라는 걸 감안하면 양동근은 대단한 독종이다.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난 비결은 성실함이다. 양동근의 성실함은 지금도 모든 농구인이 인정한다.
양동근은 지금도 과거 김승현 이상민처럼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어시스트 능력을 갖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의 경기운영능력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진화했다. 현재 그의 경기운영능력은 KBL 넘버 원이다. 김선형(SK), 김민구(KCC)에게 2% 부족한 안정감이 양동근에겐 있다. 공격 욕심을 줄이고 팀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 생겼다. 수 많은 경험으로 체득한 임기응변능력 역시 KBL 탑이다. 양동근이 3차전 막판 17점을 뽑아낸 것도 동료의 수비자에게 스크린을 건 뒤 빠져나오면서 슛 찬스를 잡거나 다시 찬스를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양동근은 프로 초창기 시절 플레이 스타일을 개조하고 업그레이드했다. 이제 그는 또 한번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노장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체력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았다. 양동근이 이제까지 보여준 성실함이라면 또 한번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양동근은 워낙 몸 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향후 5년은 거뜬할 것이라는 게 농구인들의 평가다. 그 고마움과 미안함이 양동근을 스스로 채찍질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동력이다. 시즌은 끝났다. 그러나 KBL 최고 가드는 곧 또 다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양동근.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창원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창원 김성진 수습기자 ksjksj0829@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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