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김진성 기자] “우와.”
11일 대구구장. 2-2로 팽팽하던 8회말 삼성 공격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3루 방면 삼성 응원석이 들썩였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하는 타자에게 보내는 환호가 아니었다. 불펜에서 몸을 푸는 투수에게 보내는 반가움이었다. 임창용. 그가 1군에서 몸을 풀었다. 2007년 10월 5일 부산 롯데전 이후 2380일만의 1군 등판이 성사되는 듯했으나 SK가 9회 결승점을 따내면서 실전 등판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7년만에 친정 삼성으로 돌아온 임창용. 역시 클래스가 남다르다. 류중일 감독은 임창용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임창용 역시 삼성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다. 열흘이란 시간을 달라는 류 감독과의 약속을 완벽하게 지켰다. 현재 몸 상태는 최상. 오승환을 내보낸 삼성은 임창용의 영입으로 투타 중심축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시즌 출발이 썩 좋지 않지만,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임창용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 선동열·오승환도 그랬다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환호성을 불러일으킨 투수를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실력이 뛰어난 불펜의 끝판왕, 마무리 투수에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져오는 얘기들이 있다. 역시 선동열 KIA 감독의 현역 시절 케이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선 감독 역시 현역 시절 광주구장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팬들의 환호성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최근엔 오승환을 꼽을 수 있다.
“선 감독이 몸만 풀어도 상대팀이 덜덜덜 떨었다니까.” “게임 끝났다고 생각했지.” 선 감독이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가 위축됐던 시절이 있었다. 마무리로 한창 주가를 높였던 90년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몇몇 구장을 제외하곤 불펜이 외야 혹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갔지만, 선 감독이 해태에서 뛰었던 시절만 하더라도 불펜은 1,3루 바로 옆에 위치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선 감독이 불펜에서 몸을 풀면 원정 팬들마저 환호성을 내질렀다는 후문도 있다. 결정적으로, 상대팀 선수들이 스스로 위축된 나머지 제대로 된 경기력을 뽐내지 못했다. 불펜에서부터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긴 선 감독은 실제로 마운드에서도 위풍당당했다. 불펜에서부터 팬들에게 신뢰감을 줬다.
오승환도 마찬가지다. 지난 9년간 삼성 팬들은 3점 이내 리드 상황서 9회는 당연히 오승환이 맡는 것으로 인식했다. 오승환이 7회 혹은 8회 몸이라도 풀면 경기 진행 상황과는 무관하게 팬들의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는 장중한 테마송이 대구구장에 울려퍼지면 곧 ‘게임오버’를 의미했다. 삼성 팬들에겐 기쁨, 상대 벤치에는 절망이었다. 그렇게 오승환은 한국에서 최다 세이브 투수가 된 뒤 일본야구 한신으로 떠났다. 선 감독과 오승환은 확실히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클래스가 남달랐다.
▲ 뱀직구 대신 용직구?
임창용을 상징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뱀직구다. 워낙 볼 끝 변화가 심한데, 그것이 마치 뱀처럼 흐물흐물 하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11일 대구 SK전 직전 임창용과 잠깐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삼성 홍보팀 관계자가 “뱀직구 대신 용직구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웃고 넘어갔지만, 임창용을 상징하는 또 다른 단어가 될 수 있어 간과할 사안은 아닌 듯하다.
프로선수의 이미지 메이킹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더구나 강한 마무리가 필수적인 현대야구에선 마무리 투수의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 위에서 설명한 선 감독과 오승환 얘기도 결국 불펜에서부터 강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게 마운드까지 이어진 좋은 사례다.
임창용은 1976년생, 공교롭게도 용띠다. 그의 이름 석자 중 마지막 자인 ‘용’을 딴 ‘용직구’는 괜찮은 별명인 듯싶다. 뱀보다는 용이 확실히 강한 이미지다. 물론 임창용이 실제로 좋은 활약을 펼쳐야 이런 별명과 이미지 메이킹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삼성과 삼성 팬들은 임창용이 잘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임창용의 공을 불펜에서 받아준 불펜포수 역시 “구위, 컨트롤 모두 예술”이라고 했다.
▲ 욕심 없어서 더 무섭다
‘용직구’에 대한 임창용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용이 아니라 지렁이 같은데요”라고 웃었다. 그만큼 겸손하다. 류중일 감독은 “임창용, 이승엽에게 예전 전성기 시절만큼의 활약을 기대하면 안 된다”라고 수 차례 강조했다. 류 감독은 임창용의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7년만에 국내로 돌아온 특급 마무리에게 크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임창용의 말을 들어보면 욕심이 없다. 한일통산 300세이브에 4개 남은 상황. 임창용은 “그게 큰 의미가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SK 박희수 등 다른 팀 마무리 투수와 세이브 경쟁을 펼치게 됐다는 질문에도 웃으며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임창용은 그저 “리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가서 세이브를 착실하게 따내겠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오)승환이 세이브 기록(한국 최다 기록, 277세이브)을 최대한 따라가고 싶다. 300세이브?”라고 웃었다. 참고로 임창용의 한국 통산 세이브는 168개. 2004년 9월 30일 잠실 LG전서 쌓은 세이브가 마지막으로 기록된 상태다.
임창용은 기록에 큰 욕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런 목표의식이 없는 게 아니다. 임창용은 입단 기자회견 당시 류 감독에게 요청했던 열흘을 소중하게 보냈다. 퓨처스리그서 후배들과 착실하게 몸을 만들었고, 류 감독의 “마무리 대기” 지시를 이끌어냈다. 거창한 말보다는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젠 별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대구구장이 들썩인다. 임창용이 마무리 전설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임창용. 사진 = 대구 김성진 수습기자 ksjksj0829@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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