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임창용은 임창용이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한 마디로 정리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임창용은 “초짜가?”라면서 곧바로 마무리로 내정한 류 감독에게 마운드에서 1⅔이닝동안 모든 걸 보여줬다. 임창용의 복귀전이 열린 13일 대구구장. 결과보다도 과정이 너무나도 드라마틱했다. 그 의미 역시 남달랐다.
삼성은 5회까지 6-0으로 앞섰다. 선발투수 윤성환이 6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했다. 임창용의 복귀전은 싱겁게 열리는 듯했다. 아니었다. SK는 야금야금 추격했다. 급기야 8회 무사 만루 상황에서 최정이 안지만에게 극적인 동점 그랜드슬램을 뽑아냈다. 삼성은 또 다시 1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임창용은 그때 삼성 마운드에 구세주로 등장했다. 2007년 10월 5일 부산 롯데전 이후 2382일만의 복귀. 삼성과 임창용에게도, 팬들에게도 드라마틱한 복귀전이었다.
▲ 임창용의 미친 지배력
삼성이 4점 앞선 8회초. 분위기는 사실상 기울어졌다. 경기장 분위기는 소강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3루쪽 삼성 불펜에서 임창용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몸을 풀기 시작했다. 대구구장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드라마를 위한 전주였다. 이날 경기 전 임창용이 “나를 보러온 팬들을 위해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무조건 등판하겠다”라고 류중일 감독에게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스마트 폰으로 실시간 기사 검색을 한 팬들은 임창용의 복귀전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임창용이 마운드에 올랐다. 8-4가 아닌 8-8 동점 1사 만루. 게다가 타석에는 대타 외국인타자 루크 스캇.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빅매치가 성사됐다. 스캇은 엉덩이 근육통으로 선발라인업에서 빠졌으나 이만수 감독이 역전을 위해 꺼내든 회심의 카드. 아울러 9개구단 외국인타자 중 최고 레벨을 자랑하는 타자.
임창용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초구 바깥쪽 직구를 꽂았다. 144km에 스캇의 헛스윙. 2구째는 볼, 그리고 3구째에 좌익수 희생플라이가 나왔다. 모두 직구로만 승부했다. 결국 주자를 남겨놓고 내려간 안지만의 실점. 임창용은 후속 김성현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역시 임창용이었다.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놀라운 건 위기에서 연이어 직구 승부를 했다는 점. 그만큼 자신의 공을 믿었다는 의미다. “어설프게 변화구 던지는 것보다 직구가 낫다”라는 지론이다.
삼성은 8회 박한이의 역전 결승타로 승부를 뒤집었다. 임창용에게 세이브가 아닌 승리 요건이 갖춰졌다. 임창용은 1점 리드를 업고 9회 마운드에 올랐다. 이명기 조동화 최정을 차례대로 범타 및 삼진으로 처리했다. 특히 최정에겐 스리쿼터 폼으로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면서 대역전 드라마의 마침표를 찍었다. 임창용의 구원승은 2007년 9월 9일 잠실 LG전 이후 2408일만이었다. 임창용은 직구 슬라이더 커브를 섞어 총 24구를 던졌다. 슬라이더가 2개, 커브는 1개에 불과했다. 147km까지 나온 직구 스피드. 평범했지만 남달랐다. 임창용은 과거 야쿠르트에선 160km까지 찍었다. 그야말로 마구였다.
▲ 피칭 폼에 열광하는 팬들, 이것이 용직구
보통 사이드암 투수의 경우 직구 스피드가 140km 전후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임창용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한창 잘 나갔던 야쿠르트 시절 그 정교한 일본타자들도 건드리지 못할 강속구로 천하를 지배했다. 많은 전문가는 임창용 특유의 피칭 폼에서 그 이유를 찾곤 했다.
한 야구관계자는 “임창용 피칭 폼은 남다르다”라고 했다. 13일 경기서 직접 지켜봤다. 전체적으로 피칭 폼이 다이내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세트포지션보다는 완전하진 않은 와인드업 자세에서 다이내믹함이 느껴졌다. 우선 두 팔을 가볍게 뒤로 젖힌 뒤 왼쪽 다리를 힘차게 뻗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를 확 젖힌 뒤 오른쪽 다리로 반원 모양을 그리는 동시에 타자 쪽으로 최대한 뻗었다. 그리고 타자 무릎 높이에서 공을 던졌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창용이 한창 잘 나갔을 때는 이것보다 더 다이내믹했다고 한다. 임창용은 이날 경기 후 “아직 와인드업과 세트포지션에서의 자세가 부족하다”라고 했다. 아무래도 야쿠르트 시절의 그 최상의 감각은 아닌 듯했다. 이날 임창용에게 팔을 머리 뒤로 부드럽게 넘겼다가 내린 뒤 어깨를 크게 젖히는 와일드함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예전엔 허리는 비교적 꼿꼿이 세웠지만, 어깨와 손목의 회전이 단연 와일드했다. 나이도 먹고, 팔꿈치 수술도 받으면서 예전보다는 약간 얌전해진 투구폼. 그래도 이 정도로도 충분히 환상적이었다. 또한, 이날 임창용은 주자 유무에 따라 투구 폼을 다르게 취했다. 야쿠르트 시절에는 사이드암 스리쿼터 언더핸드 폼이 모두 가능했다. 이날은 사이드암과 스리쿼터에 가까운 두 가지 폼을 사용했다. 주자가 있을 때 팔 높이가 좀 더 높아졌다.
XTM 이효봉 해설위원은 “폼이 두 가지다. 타자들에겐 대단히 위협적이다”라고 했다. 당연히 타자 입장에선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다. 각기 다른 폼으로 던져도 제구가 일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함이 팬들을 열광시킨다. 임창용이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열광했던 삼성 팬들은 임창용이 1⅔이닝 동안 SK 타선을 압도하자 아이돌 그룹 팬클럽으로 변신했다. 다이내믹한 용직구와 함께 임창용이 화려하게 돌아왔다.
▲ 147km 용직구가 주는 교훈
용직구. 임창용 이름을 딴 별명이다. 삼성 관계자가 웃으면서 제안한 별명이다. 볼 끝이 흐물흐물하고 지저분한 게 꼭 용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타자 입장에선 폼마저 위협적인데 볼 끝도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복귀전서 임창용이 기록한 직구 최고구속은 147km였다. 사실 국내 투수 중 147km를 찍는 투수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빠른 볼을 구사한다는 1~3선발급 투수들은 전력피칭으로 그 정도를 찍는다. 그러나 파워가 좋아진 요즘 타자들은 충분히 공략한다.
중요한 건 임창용만의 확신과 자신감이다. 그 다이내믹한 폼 자체가 자신감이었다. 임창용은 “솔직히 경기 중 피칭 폼 변화를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도 그 폼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의미다. 특유의 당당함과 태연함. 그 아우라에 SK 타자들이 압도당했다.
국내 투수코치들이 마운드에 올라가기만 하면 얻어맞는 투수들에게 “정면승부하라”고 조언한다. 이효봉 위원은 “말은 쉽다. 그런데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면 그게 잘 안 된다”라고 했다. 자신의 볼을 믿지 못하고, 실패한 결과에 매몰된다. 또 다른 수도권 구단 투수코치는 “물론 실패한 결과를 곱씹어보고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잊을 때는 잊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용직구도 별명일 뿐, 결국 똑 같은 직구다. 147km짜리였다. 임창용은 마운드에서 당당했다. 2382일만에 오른 국내 마운드에서 역전을 허용하면 홈에서 SK에 스윕을 당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 그 당당함과 다이내믹한 폼이 모든 걸 말했다. 부상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폼을 작게 하는 투수들. 얻어맞으면 어쩌나 싶어 도망가는 투수들. 임창용은 그들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마무리가 사는 법을 말해줬다. 입 아닌 표정과 피칭 폼으로.
[임창용.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삼성라이온즈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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