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천우희라는 배우가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다소 생소했다. 영화 '한공주'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한공주'로 천우희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화 '써니'의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일명 '본드걸'. 그것이 천우희를 설명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말이었다.
하지만 '한공주'를 본 이들이라면 더 이상 천우희를 본드걸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한공주' 속 천우희는 공주 그 자체였다. 무엇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천우희는 공주였고, 공주는 천우희였다.
천우희가 주연으로 나선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은 주인공 공주가 세상이 정해놓은 피의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무비꼴라쥬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시작으로 마라케시, 로테르담, 도빌 아시아 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이 작품에서 천우희는 주인공 한공주 역을 맡았다. 집단 성폭행이라는 큰 사건을 당한 한공주는 자신을 세상과 단절 시켰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고,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속으로 삼키는 공주의 조용한 외침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어려운 인물이었다. 어린 소녀였고, 공주의 대사처럼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떠나야했다. 친구도 가족도 공주의 곁에는 없었다. 공주였지만, 공주처럼 살긴 힘든 인물이었다.
"이 작품을 선택할 때는 힘든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모두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한 선택이었고 끌렸다. 또 내가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이 된 후 촬영 들어가기 전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게 만들이다. 감정을 잘 조절해서 현명하게 표현하고 연기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주의 감정은 느껴보지 않고는 힘든 그런 종류의 것이다. 밖으로 표현하기보다 안으로 삼켜야 했고, 큰일을 당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공주의 감정을 천우희는 영리하게 표현했다.
"공주는 분명 큰일을 겪고 나서 시간이 흘렀던 상황이었다. 아주 많이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표출하는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표정을 지우고 무덤덤하게 하려고 했다. 상자에 담아서 잠가뒀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괜찮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은척하는, 이중적인 표현이 표출하는 것 보다 어려웠다."
영화 속에서는 공주의 생각을 읽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무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가만히 앉아 있던 공주는 노래를 할 땐 그 나이대의 소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지우고 다시 어두운 공주로 돌아간다. 친구들의 내민 손도 좀처럼 잡지 않는다. 이런 공주를 천우희는 어떤 아이로 생각을 했을까.
"공주의 생각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대로 표현했다. 준비 단계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분석하고 연구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다. 공주는 몸이 반응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연기 할 때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공주'는 해외 영화제의 찬사를 받았다.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수상의 기쁨도 누렸다. 천우희 역시 그 현장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상황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 아니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많은 일들이 해외에서 벌어졌다. 좋으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꿈같은 느낌이었다. 좋기도 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한데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냥 좋아하면 되는데 묘한 느낌이었다. 나도 같이 갔으면 좋았겠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천우희는 한동안 '써니'의 본드걸로 살아왔다. 그만큼 강렬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써니'의 본드걸로 살아갈 순 없는 일이다. 이미지를 지우고 싶기도, 바꾸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써니'가 끝난 지 얼마 안됐을 때는 지우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은 몰라줄까라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흐르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할 건데 급하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차근차근하려고 한다. 나는 이제 시작단계다. 조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천우희의 말대로 앞으로가 더 중요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이다. 천우희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라. 주어진 것 마다 최선을 다 하다보면 내 것이 되고, 배우 천우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어떤걸 보여줘야 하나라는 고민은 한다"고 말했다.
[배우 천우희, 영화 '한공주' 스틸컷.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무비꼴라쥬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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