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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모호해서 더 기억된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영국 공연계의 거장 앨런 베넷의 대표작으로 1980년대 영국의 한 공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8명의 학생들과 그들의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시험'이 아닌 '인생'을 위한 수업을 목표로 다소 자유로운 수업을 펼치는 문학교사 헥터와 오직 '옥스브리지'(옥스포드+캠브리지) 입학에만 혈안이 돼있는 교장, 오로지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옥스포드 출신의 젊고 비판적인 역사교사 어윈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8명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히스토리 보이즈' 속 인물들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쉽게 정의할 수 없다. 다양한 인간 군상 속에 한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당연히 모호한 일. 이 모호함이 '히스토리 보이즈' 인물들을 정의하고,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균형을 표현한다.
대표적으로 교사들은 모두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헥터(최민용)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데 반해 어윈(이명행)은 냉소적이고 이성적이다. 교장(오대석)은 명문대 입학에만 집착해 교육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가운데서 여교사 린톳(추정화)이 중심을 잡는듯 하지만 그조차도 남자들이 만들어간 역사 안에 다소 분노하는 여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모두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직진하지만은 않는다. 사실 이들은 모두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헥터는 시와 고전 영화를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감성을 자극하지만 뒤로는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일삼는다. 어윈 역시 열등감을 지닌 채 속은 꽁꽁 싸맨 인물이다. 때문에 인물의 성격은 더욱 모호해지고 어른들의 이중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에 반해 아이들은 어떤가. 교사들의 스타일에 따라 그에 맞춰주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교사들에게 흡수된다. 포스너(이재균, 윤나무), 데이킨(김찬호, 박은석), 스크립스(안재영), 럿지(임준식), 락우드(오정택), 악타(손성민), 팀스(황호진), 크라우더(이형훈)는 각각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소위 영재들이지만 교사들로 인해 좌지우지 되고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사실 '히스토리보이즈'는 이중적이고 모호한 인물들 성격만큼이나 작품 자체도 다소 모호하다. 각기 다른 역사 의식을 지닌 이들이 역사를 말하고 그 안에서 분쟁하고, 또 다른 시각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만큼 이 과정이 방대하고 어렵다.
'히스토리보이즈'는 자신들만의 결론을 내 관객들에게 전하기보다 치열한 토론으로 다량의 시선을 전한다. 그런 면에서 동성애 소재 역시 불필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들만의 역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다수의 의견, 다각도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게 사랑이든 도전이든 소유욕이든, 이조차도 모호하고 그래서 더 생각하게 만든다. 누가 옳다고 할 수 없는, 그래서 더 모호한 다양한 시선과 견해가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이로 인한 치열한 논쟁은 뜬구름만 잡는 것이 아닌 현 시대 우리도 충분히 논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이 가운데 럿지는 "역사란 X같은 일 다음에 또 X같은 일이 생기는거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다양한 의견으로 인해 모호함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속 시원해지는 한 방, 즉 풍자가 전해지는 순간이다.
'히스토리보이즈'는 다른 세대의 이야기, 그들의 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또 다른 이야기 등 이들의 역사 속에서 배움을 얻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역사를 이야기 한다. 최민용, 이명행, 추정화, 오대석 베테랑 연기자들과 함께 학생 역 젊은 연기자들의 호흡이 흥미로운 것 역시 이들의 역사가 그렇게 세대간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연극 '히스토리보이즈'는 오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연극 '히스토리보이즈' 공연 이미지. 사진 = 뮤지컬해븐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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