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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한국 전통뮤지컬 악극 '봄날은 간다'가 10년만에 돌아왔다. 배우 김자옥, 최주봉, 윤문식, 최선자, 뮤지컬 배우 이윤표, 김장섭 등 배우들과 10인조 오케스트라로 한층 업그레이드돼 한국 전통뮤지컬 악극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봄날은 간다'는 첫날밤 남편에게 버림받고 홀로 남겨져 과부로 살아가는 기구하고 슬픈 운명의 한 여자 명자와 가족을 버리고 꿈을 찾아 떠난 남자 동탁, 극단 사람들의 기구한 인생을 그린 드라마로, 운명의 장난 같은 극중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 가운데 10년 전 초연에도 '봄날은 간다' 무대에 올랐던 최주봉(69)은 쇼단 배우가 꿈인 동탁 역을 맡았다. 시골 떠돌이 이발사의 삶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잡게 되지만 착한 아내 명자를 배신하고 가족을 버린 최잭감으로 평생을 후회와 눈물로 보내는, 10년 전과 같은 역할이다.
최주봉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이 스케치식으로 떠오르더라.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자연스럽게 10년 전이 기억나 힘들지 않다. 몸이 기억하고 있더라"고 입을 열었다.
▲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확신이 있고 정열이 있다"
사실 '봄날은 간다'는 10년 전과 현재 많은 것이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최주봉, 윤문식을 제외하고 모든 배우들이 바뀌었고, 제작 역시 새로운 팀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흐른 현재, 악극과 '봄날은 간다'는 최주봉에게 어떤 의미일까.
최주봉은 "몇 사람 얘기만 들어서 공연 하는게 아니다. 의견 수렴을 해서 공통 분모를 찾아 어떤 것이 좋은지 얘기를 나누며 공연을 올리는 것"이라며 "악극이란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하게 만들어진다. 한국인 정서에 맞기 때문이다. 10년 전 봤던 분들도 다 잊으셨을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되새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10년 전 봤던 분들 세대 중엔 돌아가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10년씩 나이가 더 드셨으니까. 이런 것을 보면 악극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며 "그렇다고 옛날에 맞추지는 않는다. 요즘 사람들에 맞게 해보는 거다. 악극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옛 것을 휴지처럼 버리는게 아니라 간직해서 남겨놔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악극이라는 것은 적응이 어렵다. 악극 자체가 원래 오버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더 공감을 줬다. 하지만 시대에 맞춰 해야지 옛날처럼 하면 안된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리얼하게 해야 하냐고? 그건 아니다. 악극은 캐나갈 수 없다. 줄기는 그대로 가되 요즘 가지로 살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악극은 다르다. 그런 면에서 난 자신 있다. 호기심을 부르는 게 악극이다. 감정 폭이 다르진 않지만 분명 해보고 싶은 연기다."
그렇다면 10년 전과 현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는 "10년 전과 나는 똑같다. 옛날도 지금도 '봄날은 간다'의 감동은 여전하다. 악극을 15년 했는데 '봄날은 간다'가 제일 잘 와닿는다"며 "시대가 변하고 나도 나이를 더 먹었지만 그대로 또 10년 후에 다시 하다 보니까 나도 기쁘고 그대로 또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있고 정열이 있다. 내가 했던 것이기 때문에 차이도 잘 못 느끼겠다"고 설명했다.
"차이를 잘 못 느낀다. 오히려 욕심을 부리게 된다. 못했던 부분을 더 채워 나갈 수 있지 않겠나. 이럴 땐 이렇게 해봤으면 좋겠고 그런 차원에서는 내가 감동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뭔가를 바라보는 거다. 그때는 젊은 기운에 막 뛰고 그랬지만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이다."
▲ "무대를 지키는 것은 내 운명, 팔자다"
'악극의 부활'이라 불릴 만큼 '봄날은 간다'에 대한 기대는 높다. 이는 무대 위에서 변치 않는 열정으로 관객들을 배신하지 않는 배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주봉 역시 하나에 뿌리를 내리면 심취해 버리는 배우인 만큼 관객들에게 설렁설렁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더 몰입하고, 죽기 살기로 연기한다.
그는 "내가 최선을 다해야 관객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설렁설렁 하는 배우가 아니구나 느껴야 한다. 내가 쌓아왔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몰입하는 모습에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역할을 소화해서 하는 마음이 어디 가겠나. 보는 사람들도 무대에서의 내 흔적을 아는 거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악극에 계속 출연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인정을 받았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인물을 만들 때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물론 배우라는 건 고유의 목소리, 신체, 연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크게 바뀌지는 않지만 약간씩 바꿔 줬을 때 관객들이 좋아한다. 솔직히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은 그렇지 않지만 무대는 내 나이에 20대 역할을 해도 용서해준다. 무대 위의 최주봉은 할 수 있고 관객들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무대가 고마운 거다. 다 마음 먹기 달려 있다."
최주봉이 무대에 느끼는 마음은 고마움 뿐만이 아니다. 늘 설레고 새롭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더 보고싶어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 때문에 더 연습하고 노력한다. 무대에 한번 올라가면 더 바짝 긴장하기도 한다. 서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연습하고 그 안에서 순발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최주봉은 인터뷰 당일에도 공연장 밖에 홀로 나와 크게 대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무대를 꾸준히 지키는 것은 내 운명이다. 내 팔자다. 이게 좋아서 하는 것이지 내가 뭘 하겠나. 지금 면장을 하겠나, 군수를 하겠나. 사실 인기가 최고였던 40대에 정치 하자고 섭외도 받았다. 하지만 난 배우를 하는 사람이다. 팔자다. 원동력도 딱히 없다. 그저 팔자이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해온 내 에너지가 몸 속에 있다. 그런 정신력이 몸에 남아있는 것이고 무대만 보면 미친다. 돈도 필요 없다. 무대 위 배우는 지구력 싸움이다. 그러기 위해 체력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배우는 광대, 노는것 보러 오라"
배우를 팔자로 알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최주봉이지만 사실 부침도 있었다. 가정적인 일, 주위의 시선 등 여러가지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를 모두 수렴하고 설득했기에 꾸준히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연기자로서 폭을 넓혀가게 됐고, 인정 받게 됐다.
최주봉은 "배우라는게 뭐냐. 하나의 인정을 받는 거다.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 받지 못하는 배우는 연기하지 않는게 낫다. 이왕 연기 하는거 스타덤에도 올라 봐야 한다. 성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취 하려고 싸우는 것이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나 자체가 삐뚤어지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다. 옳은 길이라고 판단하고 살아 왔기 때문이다. 살아 오면서 유혹도 많이 받았고 나쁜 길도 갈뻔 했다.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부모님한테 땡깡도 부리고 사고도 쳤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과정이었다. 먼 길을 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 부침이 많았던 것이 오히려 약이 되지 않았나 싶다."
1969년 연극 '퇴비탑의 기적'으로 데뷔한 뒤 연기만 45년 해왔으니 그 어떤 것이 의심스러우랴. 자신의 길을 믿고 직진하는 것과 동시에 시대에 맞춰 자신을 바꾸기도 하니 관객들은 최주봉에게 지루할 틈이 없다.
"어릴 때부터 옛것을 보고 겪어온 사람이기에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그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흉내내는 것일지도 모르나 나만이 낼 수 있는 맛이 있다. 묻어 있는 옛 정서가 있다. 또 '봄날은 간다'의 동탁이는 나와 닮은 점이 많아 더 연기하기 좋다. 윤문식과도 눈빛만 봐도 알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자신감이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자신감이고 또 자연스러운 믿음이다. 그는 "남들에게 인정 받는 성실한 배우가 되고 싶다. 교만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따라오고 자동적으로 인정 받는 배우가 된다는 것이다.
"'연기라는게 이런겁니다'를 보여주고 싶다. 그냥 최주봉의 연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된다. 춤, 노래, 밴드까지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가. 다른 건 없다. 무대 위에 오르면 배우는 그저 재미있다. 공연은 배우들 노는 것을 보러 가는 것이다. 우린 광대다. 광대가 무엇이냐. 춤추고 노래하며 재미와 감동 준다. 이거다. '봄날은 간다'를 갖고 재미와 감동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향수도 불러 일으키고 꿈을 주고 교육과 희망을 준다. 또 악극은 눈물이 주를 이룬다. 전쟁과 사랑은 곧 눈물이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한편 악극 '봄날은 간다'는 오는 5월 1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배우 윤문식, 김자옥, 최주봉(왼쪽부터), '봄날은 간다' 포스터. 사진 = 쇼플레이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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