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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윤문식(71)에게 한계란 없다. 그저 배우가 팔자고 무대가 인생이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할 것 없이 종횡무진 하는 그는 마당놀이를 통해 무대를 지켜왔다. 10년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 전통뮤지컬 악극 '봄날은 간다' 무대를 여전히 지키는 이도 윤문식이다. 그에게 배우는 수식어가 아니다. 오직 윤문식 그 자체다.
윤문식이 출연하는 '봄날은 간다'는 첫날밤 남편에게 버림받고 홀로 남겨져 과부로 살아가는 기구하고 슬픈 운명의 한 여자 명자와 가족을 버리고 꿈을 찾아 떠난 남자 동탁, 극단 사람들의 기구한 인생을 그린 드라마로, 운명의 장난 같은 극중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작품이다.
윤문식은 쇼단의 단장으로 동탁에게 일약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인물로 돈을 인생의 제일의 목표로 생각하는 사업가 역을 맡았다. 잊고 지내던 아련한 옛 추억을 되살려줄 예정이다.
윤문식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0년만에 만난 '봄날은 간다'는 여전히 재미있고 반갑다. 매일 만나는 애인보다 오랜만에 만난 애인이 더 반갑고 조심스럽지 않나. 아무리 친해도 다시 만나니 낯설면서 더 흥분되는 마음, 딱 그 마음이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 "목적은 하나, 감동 주고싶다"
윤문식은 '봄날은 간다'를 통해 한국의 정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서양 연극, 뮤지컬에 익숙해져버린 요즘 장르가 다를 뿐인데 전통적인 것을 고루하다고 보는 일부 잘못된 시선은 곤란하다.
윤문식은 "목적은 하나다. 관객들의 정서를 불러 일으켜서 감동을 주는 건 똑같은 거다. 악극은 이지적으로 다가가기보다 보다 감성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며 "철학적인 것과는 다르다. 듣는 사람들도 편하고 하는 사람들도 편해야 한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었던 얘기들이고 단순화된 이야기"라고 밝혔다.
"사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는 거다. 여성 학대사 같은 것이니까. 그래서 어른들과 함께 젊은이들도 더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인고의 세월을 지낸 어머니들 이야기니까. 젊은 여성들은 어머니를 보고 '바보'라 할 수도 있다. '왜 저렇게 살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어머니들이 지금 젊은이들 마인드로 살았으면 이 나라는 망했을 거다."
윤문식은 '봄날은 간다'를 통해 효는 물론 어머니의 인고를 전하고자 한다. 이 나라는 여자가 지켜온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 어머니의 인고가 가정을 지켰고 이는 곧 나라를 지킨 것이다. 어머니들의 한(恨)이 있었기에 우리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민족이 될 수 있었다.
윤문식은 "한이라 해서 힘 없는 사람들이 참고 사는 게 아니다. '너희들 해라, 나는 나대로 간다' 그런 대단한 거다. 다 그렇게 살진 않았지만 대표적인 인물을 뽑아 작품에 넣는 것이다. 어머니 세대가 그렇게 살았다. 가정을 지키는 데는 남편들의 힘보다 아내들의 힘이 더 컸다"고 말했다.
"아버지 얘기하면 담담하게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부잣집 딸이라 해도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라면 눈가가 촉촉히 젖는다. 어머니는 아무리 부자고 먹고 살기 편해도 자식에게, 남편에게 희생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과 자식들에게 아내, 어머니는 거의 종교적이라고 봐야 한다."
▲ "촌스러운데 그리운 시골 어머니같은 악극"
윤문식은 '봄날은 간다'에서 쇼단 단장 역을 맡았다. 가장 평범하고 아픔이 없는 인물 같지만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윤문식의 설명만 들어봐도 이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윤문식은 "가장 평범한 사람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입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웃기기는 하지만 이는 곧 복선이 되고 극 전체를 아우른다는 것. 아픔이 있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닥 아픔이 없어 보이지만 이는 통증의 차이일뿐, '봄날은 간다'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은 어느 인물이나 똑같이 표현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겪는 통증은 똑같지만 사람들은 왕왕 그런다. 내 통증이 더 아프다고 생각한다. 항상 얕은데를 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만 잘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아픔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 느끼는건 천지 차이다. 그걸 얘기해주는게 바로 연극이다. 연극을 어떤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어 윤문식은 악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악극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아듣기 편하게 전해주는 것"이라며 "유치하고 촌스럽다 할 수도 있지만 시골에 계신 우리 어머니 역시 촌스러운데 그립지 않나"라고 말했다.
연극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만큼 한국 문화 정책에 대한 그의 시선도 날카로웠다. 윤문식은 "지금 우리 나라 문화 정책이 잘못돼 있는게 불만이다. 국수주의자도 아니지만 대학교만 봐도 음악 대학과 한국 음악이 나뉘어져 있는게 이해 가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겉모습만 보고 화려하니까 덤벼드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나 예술 파트는 퍼스트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며 "최소한 10등 안에 들어야 되는건데 갈데 없으면 오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털어놨다.
▲ "연극할 때를 생각하면 낙원이다"
윤문식의 이러한 일침은 당연했다.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모든 것을 흡수하고 경험하려 한, 1969년 연극 '미련한 팔자대감'으로 데뷔한 뒤 꾸준히 무대를 지킨 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윤문식이 곧 연극이었고, 연극은 곧 윤문식의 인생이었다.
윤문식은 "그러니까 나 보고 '만약에 연극 안했으면 뭐가 됐을 것 같냐'고 하는데 그럴 때 난 '틀림없이 무당이 됐을 것 같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그런 게 있다. 본래 연극이 굿이라고 하지 않나"라고 운을 뗐다.
"가장 훌륭한 배우가 무당이다. 상대방 눈치를 보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연기자도 똑같다. 백남준 선생도 '예술은 사기'라고 하지 않았나. 배우가 무대에 올라갔을 때 본인이 뭐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정신 없이 몰입 돼다 보면 등이 촉촉히 젖어 있다. 신과의 접점이 생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빙의 같은 것인데 이는 평생을 연극 하면서도 몇 번 없다. 이런 접점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연습하고, 찾았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아니기에 분명히 더 좋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항상 만족이 없다."
천생 배우였다. 항상 허기져 있다고 했다. 물론 배우의 인생을 살며 배부른 생활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돈이 없어 허기진 것이 아니다. 연기에 대한 갈망으로 인한 허기였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90명의 입학생중 자신과 최주봉, 박인환만이 배우로 살아 남았다고 했다.
윤문식은 "우린 목적이 달랐던 거다. 연기 자체가 행복했던 거다. 돈 있으면 확실히 편하지. 그렇지만 내게는 그게 행복일 수 없다. '왜 그렇게 가난했는데 연극하냐'고 한다. 물론 불편하다. 그렇지만 연극할 때 행복한데 다른 걸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사실 나와 최주봉, 박인환 세 친구의 얼굴이 잘생겼으면 타락했을지도 모른다"라고 밝히며 웃었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우린 더 이를 갈고 했다. 다른건 할 줄 모르니까 포기도 못한다. 소명처럼 하는 것이다. 견뎠으니까 그만큼 행복했다. 그냥 팔자 같다. 뒤에서 오는 맹수는 피할 수 있어도 앞에서 오는 팔자는 보여도 못 피한다고 하는데 딱 그거다. 보여도 못 고친다. 가난하지만 재미있고 좋으니까 할 수 있다. 술 마시러 가고 노는 것보다 연극 하는 게 더 행복한데 어떻게 못하게 하겠나. 마음의 자유가 있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만큼 표현할 수도 있으니까 좋다. 끼와 팔자가 있어야 배우도 할 수 있다. 연극할 때를 생각하면 낙원이다. 세상은 참 묘하다. 나비는 이슬을 먹고 꿀을 만드는데 독사는 똑같이 이슬을 먹고 독을 만든다. 사람들도 다 마음이 다르다. 나는 행복을 보며 연극을 해왔으니 지금까지도 이렇게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윤문식은 말했다. "나는 죽으면 '광대 윤문식 여기 누워 있다' 했을 때 '아, 저 친구 참 유쾌한 친구였는데, 참 즐겁게 해준 친구였는데'라고만 말해주면 행복하다"고.
한편 악극 '봄날은 간다'는 오는 5월 1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배우 윤문식. 사진 = 쇼플레이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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