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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내 연기는 50점짜리."
배우 지창욱이 매긴 MBC 드라마 '기황후' 속 연기 점수다. "내가 진짜 연기 잘하는 사람이 된 줄 알고 안주할까봐 칭찬이 두렵다"고 했다. '기황후'에서 사랑에 미쳐버린 황제 타환을 연기한 남자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졌지만 소년의 인상이다. "하하하!" 웃는 소리는 호탕하다. '기황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창욱이 저렇게 연기를 잘했나?' 대화를 해보니 스스로 확신이 있다. 타환은 권력과 사랑에 쉴 새 없이 흔들렸으나 타환으로 분한 지창욱은 흔들림 없이 자신을 믿고 연기했다.
▲ 역사왜곡 논란
'기황후'는 뜨거웠다. 시청률이 뜨거웠고, 논란은 더 뜨거웠다. 문제작이었다. 시작 전부터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란 자막으로 가리기엔 마주한 논란은 훨씬 컸다.
제작발표회 때 "솔직히 걱정된다"고 했던 지창욱이었다. "제작발표회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정말 많이 떨렸고 긴장했다. 내가 과연 역사왜곡 논란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배우로서 어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까 처음으로 고민했던 작품이었다."
실제로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드라마적 재미에 열광한 시청자도 있었지만 기황후를 미화하는 건 옳지 않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만약 시청자들 중 누군가 '공인으로서, 한 명의 출연 배우로서 역사 왜곡 논란에 어떤 책임을 질거냐?'고 묻는다면 난 솔직히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다만 '저희 드라마는 픽션이고,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에 관한 드라마입니다'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일 것이다."
차라리 모든 설정이 가상이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생각도 해봤다. 그렇다고 내가 제작진한테 '가상의 인물로 하시죠. 지금 역사 논란이 있어서 안 됩니다' 할 수는 없는 거다." 웃으며 한 농담 같은 얘기였지만 아쉬움이 왜 없겠나. 시청률이 30%에 육박하는 인기였으나 결코 '좋은 작품'이란 평은 못 받았다. 지창욱은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셨으니 다행히 감사하다"고 했다.
▲ 충신 골타의 배신
후반부에는 매끄럽지 않은 흐름이 문제였다. 타환의 충신 골타(조재윤)가 배신자였다. 극본을 향한 시청자들의 질타가 가장 컸던 지점이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타환을 생각하는 골타의 마음을 진심으로 연기했던 재윤이 형이 많이 힘들어했다."
조재윤과의 연기는 60~70%가 애드리브였다. 찰떡궁합이었다. 그래서 골타의 배신에 "감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가깝고 친한 사람한테 배신 당한 적이 없어서 어떤 감정일지 생각이 많았다."
그럼에도 타환이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이었던 건 "극본 덕분"이라며 작가에게 고마워했다. 지창욱에게 놀랐던 '기황후'였다. 타환을 만들기 위해 다른 배우나 캐릭터는 "참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타환이 미쳐버린 순간. "남은 마지막까지 모든 광기를 다 표출해 볼 걸, 조금도 절제하지 말 걸 하는 아쉬움"이라고 했다. 50점이란 점수는 "여지를 남기고 싶다. 나머지 반은 앞으로 채워나갈 거다"고 했다.
▲ 하지원
하지원은 지창욱에게 불편했던 선배, 좋은 여자 그리고 "참 밝은 사람."
"지원이 누난 타이틀롤이라 촬영이 많았다. 2, 3일씩 밤새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여배우라서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을 텐데…, 근데 현장에선 늘 웃는 얼굴이다. 후배로서 그게 참 보기 좋았다.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 앞에서 항상 밝게 웃어주니까 사람들도 편하게 대할 수 있고. 대단하단 생각뿐이다. 나도 꼭 배우고 싶었던 점이었다."
그런데 처음만 해도 "누나가 너무 불편했다"며 지창욱이 웃었다.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던 걸. 누나도 낯을 많이 가리더라. 선배인데 마냥 편하게 대할 수도 없고. 첫 촬영을 나갔는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제일 고민이었다. 여배우한테 갑자기 다가가는 것도 좀 그러니까."
말 타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 쭈뼛쭈뼛하다 겨우 떠올린 공통점이 단국대 동문. 말을 탄 채로 대기하다 조심스럽게 지창욱이 하지원한테 말을 건넸다. "저기, 누나. 누나가 저희 학교 선배님이세요."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아, 그래요…. 네."
"정말 눈 앞이 캄캄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당황스럽더라. 보통 '학교 선배님이세요' 하면 '그래? 넌 몇 학번이야?', '무슨 수업 들었어?', '잘해줄게. 맛있는 거 먹자' 이런 거 많지 않냐. '아, 그래요'라니. 패닉이었다."
어색했던 첫 만남. 나이 차이도 제법 나서 하지원이 9살 연상이다.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던 두 사람은 의외로 카메라 앞에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승냥과 타환이 초반에는 늘 티격태격하고 토닥거리며 싸운다. 서로 약 올리는 사이인데, 그런 장면을 찍으면서 신기하게도 누나랑 친해졌다. 나중에는 진짜 편한 옆집 누나 같았다. 내가 장난도 많이 쳤는데 누나가 다 받아줬다. 작품 얘기도 이런 저런 거 많이 했다. 누나랑 정말 즐거운 촬영이었다. 그래서 더 좋은 장면이 나온 듯하다."
선배가 아닌 여자로는 지창욱에게 하지원은 "정말 좋은 여자"다.
"누나가 보이시 할 줄 알았는데 천생 여자다. 소녀 감성이 있다. 여성스럽기도 하고. 근데 그 와중에 정말 잘 웃어주니까 같이 있으면 분위기도 좋고 편하다. 여자로서? 정말 좋은 여자다. 그래서 내가 '누나, 결혼 언제해요?'라고 맨날 장난처럼 물어봤다.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 능력 있지, 착하지, 게다가 예쁘지, 완전 좋은 여자 아닌가."
▲ 그리고 지창욱
꿈 없던 소년이었다. 단지 눈앞에 시험이 있어서 남들처럼 공부하고 모의고사 점수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을 고르던 학생이었다. 배우가 되겠단 것도 큰 뜻이 있던 게 아니었다. 연예인의 화려한 겉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허황된 환상이란 건 데뷔 후 지난 7년을 거치며 깨져나갔고, 50점이란 점수도 결국은 스스로 도취되지 않으려는 경계심이었다. "난 단지 직업이 연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TV를 별로 안 좋아하는 배우였다. "집에 컴퓨터는 없고 TV는 어머니 보시는 것만 하나 있다." 사람 만나고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더 좋단다. "아, 영화나 공연 보는 건 좋아한다." 매니저는 가장 친한 친구가 맡아서 도와주고 있다. 약속이 있어도 매니저가 데려주는 일도 없다. "따로따로 약속 장소에서 만난다.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많이 타고 다녔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신경 쓰이진 않냐고 물었더니 "물론 쳐다보면 그 시선이 느껴지는 게 당연한데, 그게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게 아니니까 아무 상관 없다. 뭐 어떠냐. 숨어 다니거나 모자 푹 눌러쓰고 다니는 거, 그거 좀 민망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사람을 피하기 시작하면 내가 누굴 만나 과연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또 내가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 드라마에 나온 캐릭터들은 결국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대중을 설득시키면서 함께 울고 웃어야 하는데, 내가 사람들을 피해 버리면 어떻게 이 직업을 계속 할 수 있겠나. 날 숨길 이유 없다."
1987년생, 20대 후반의 나이다. 시간이 흐르며 어린 시절에는 없던 여유를 조금씩 얻어가고 있다. 군대는 "내후년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이미 늦었는데 열심히 일하다가 갔다 올 거다. 군대 다녀오면 연기하는 데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 지창욱(위), 하지원.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MBC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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