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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중용 23장의 내용 중 일부다. 영화 '역린'의 전체적인 메시지이기도 한 이 대사는 을수 역으로 출연한 정재영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이지만 정재영의 육성으로 들리는 이 구절은 정재영이라 더욱 큰 울림이 있고, 진심이 깃들어 있는 듯 했다. 그만큼 '배우' 정재영은 매 순간,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런 연기자다.
'역린'은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정조 즉위 1년,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을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으로 그려냈다.
정조를 중심으로 상책, 정순왕후(한지민), 혜경궁 홍씨(김성령), 홍국영(박성웅) 등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중 정재영은 정조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왕의 그림자 상책 역을 맡았다.
비밀을 품고 있다. 궁 안에는 모든 이들이 비밀을 품고 있다. 이는 정조를 죽이기 위한 비밀도 있고, 살리기 위한 비밀도 있다. 상책의 상황은 아니러니 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궁에 들어왔지만, 궁 안에서는 누군가를 죽일 목적으로 사용된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도구에 가까웠다. 그저 정조를 암살하기 위한 칼이나 활 같은 도구였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 23장의 말처럼, '역린'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작은 역할은 없었다. 다들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왕을 지키기 위해, 또는 왕을 죽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갔다.
▲ 이하 정재영과 나눈 일문일답.
-'역린'에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가.
시나리오에 그려진 이야기가 재밌었다. 묵직해야 하고, 잔재주 없이 시퀀스별로 대사나 그런 것들이 좋았다. 메시지도 좋았다. 아주 잘 쓰여진 소설처럼 느껴졌다.
-상책은 어떤 인물인가.
상책의 내면은 시나리오에 표현이 안 돼 있었다. 사니리오만으로 상책을 해석했다. 심성은 착한 아이고, 어렸을 때부터 싸움을 잘 했다. 살막에서 우두머리였고, 끝까지 살아남은 아이 중 한명이다. 살막에서 친동생을 잃었고, 그곳에서 만난 을수(조정석)를 친동생처럼 챙기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궁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정조의 영향을 받았고, 정조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조 암살에 가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중적인 인물인데,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중점을 둔 것은 없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느껴지는 대로 했다. 매 신에 충실했던 것 같다. 딱히 중점을 둘 필요가 없었다. 내가 연기를 하니까 내 색이 묻어나는, 정재영스러운 상책이었다. 사실 '역린' 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정제적인 것에 중점을 둬야한다. 작은 것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겉으로 드러나고, 감동을 주고…. 하하.
-살수로 길러졌다. 액션이 부족해서 아쉽진 않았나.
편집이 된 부분이 있다. 지금도 액션이 많이 나온다. 멋있는(합을 맞추는) 액션이 아니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액션이다. 그리고 내 액션이 많으면 질린다. 사실 호수에서 싸우는 장면도 있는데 편집됐다. 예고편에만 나오더라.
-어린 시절 궁에 들어온 내관이라고 하기엔 몸이 정말 좋더라.
갑수에게 운동은 습관이었을 것이다. 궁에 갓 난 아이때 들어온 것도 아니고, 살막에서는 대장이었다. 을수가 최고의 살수로 컸지만, 을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하. 과거 부분이 생략이 돼 갑수의 실력이 안보였을 뿐이다. 영화에서 가장 싸움을 잘 하는 사람으로 해석을 했다. 이연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 연출을 하다 영화에 도전을 했다.
나도 사실 드라마 PD 출신의 감독과는 첫 작품이다. 막연하게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TV드라마 현장이 바쁘니 좀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촬영에 들어가니 아티스트 같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정말 많이 찍었다. 정성이 최고였다. 영상이 처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초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재규 감독님의 유명세인 것 같다. 단점이 없는 영화가 어디 있겠는가. 좋은 부분이 쏟아지는 혹평에 가려져서 안타깝다. 단점만 부각이 되니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웠다. 그냥 신인감독이었다면 깜짝 놀랄만한 감독이 탄생했다는 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느린 전개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루 동안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왔는데, '역린'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니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판단에서 생긴 오류다. 미리 내용을 생각하고 왔다고 해야 하나?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본 것이다. 예상과는 다른 스토리고, 스피드하게 갈 줄 알았는데, 차분하게 이야기를 가지고가니 지루한 것이다. 이것은 드라마와 영화 문법 차이는 아니다.
-흥행에 조마조마 하진 않았나.
나보다는 제작사나 이재규 감독님이 더 그랬을 것이다. 나보다 덜하진 않았겠나. 개봉 이틀 전에 봤다. 그렇게 단점만 꼽을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뒤로 갈수록 좋았다. 거기에 중용 23장, 마지막 메시지가 좋았다. 무대 인사를 다니면 그 구절 이야기를 하더라. 직접 찾아본 것이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겠다.
항상 내일이 지구 종말인 것처럼.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 그 작품에 최선을 다하면 부끄럽지 않다.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또 다시 올라간다. 그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피해가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힘든 것이다.
-도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20대에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와 닿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칭찬을 받으면 잔머리만 늘어난다.
[배우 정재영, 영화 '역린' 스틸컷.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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