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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픽션 사극이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 우직한 정공법을 택한 정통사극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 이재훈) 얘기다. 그동안 수많은 사극에서 지겨우리만치 차용한 소재였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 인기는 변함이 없었다. 시청률은 2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 역사 공부라도 하듯 방송 중에는 항상 '정도전' 속 등장 인물들을 심심치 않게 포털사이트 검색어 랭크에 올려놓곤 했다.
'정도전'에는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 정몽주 최영 이인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 다른 작품에선 존재감이 미미했던 캐릭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고려의 제32대 왕 우왕(禑王)이었다. 공민왕이 암살당한 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우왕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신하들의 눈치만 보다 이인임을 아버지로, 최영 장군을 사돈으로 맞으며 자신의 울타리로 삼으려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생존에 대한 절박함은 간절했다. 그리고 '정도전'에서 우왕 캐릭터의 존재감이 부각될 수 있었던 건, 이를 연기한 배우 박진우 덕분이었다.
지난 4일 방송된 '정도전' 34회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우왕. 그는 자신이 왕씨의 후손임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에 인두질을 해댔다. 이성계에 의해 폐위되고 남은 것이라고는 광기뿐이었다. 이날 방송을 마지막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한 박진우는 "진짜 인두를 가지고 촬영했는데, 화상이라도 입을까 무서웠어요"라며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 3개월을 온전히 우왕으로 살았던 박진우는 "드라마 하차 후 긴장이 풀려서 아팠어요. 생각해보니 하루도 편하게 쉬었던 적이 없었네요. 매일 저에게는 '정도전' 대본 뿐이었죠"라고 하차 소감을 전했다.
올해로 데뷔 10년차를 맞은 박진우였지만 그래도 유동근 서인석 조재현 등 연기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선배들과 함께 연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드라마에 캐스팅된 순간부터 시작된 가슴 떨림은 하차하는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긴장이 한 순간에 풀린 나머지 온 몸으로 하차를 축하(?)한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에 정말 긴장 많이 했어요. 제가 안 해본 역할이기도 했고요. 저는 극 중반에 합류했는데, 원래 대하사극 대본리딩 분위기가 굉장히 차갑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또 워낙 대선배님들도 많이 계시고. 그래서 리딩 현장에 들어가자마자 왕 역할인데도 바깥 자리에 앉았죠. 원래 안쪽에 앉아도 되는데. 그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어요. 확실히 분위기가 현대극과는 많이 다르죠."
긴장은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선생님들께 피해를 끼칠 수 없었다"는 박진우는 "준비를 많이 해서 갔어요. 내가 연기를 이상하게 하면 다른 분들 연기도 이상해질 수 있거든요. 처음에는 분량이 많지 않아서 못해도 티가 안났는데, 서서히 분량이 늘어나면서 긴장감이 더 커졌어요. 그때부터는 전쟁이었죠. 선생님들과의 기싸움에서도 밀리면 안됐어요. 내가 미친 캐릭터니까 제대로 미쳤다는 소릴 들어야했죠. 그때부터는 진짜 한 신 한 신이 모두 저의 시험 무대였어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박진우는 선배 배우들과의 친분은 물론, 스태프들의 신뢰도 쌓을 수 있었다. 얻은 게 참 많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박진우는 대선배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았다. 우왕을 연기하며 칭찬도 많이 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의 무서운 노력 덕분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뽑아내기 위해 매일 매일 전쟁을 치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다행히 NG는 거의 나지 않았아요. 제가 긴장하고 준비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만약 거기서, 그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NG를 냈다면...상상만 해도 땀이 나네요. 또 선배님들은 워낙 경력들이 있으셔서 NG를 거의 안 내세요. NG가 났다 하더라도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젊은 제가 만약 거기서 NG를 낸다면 분위기는 한 순간에 깨지는 거죠.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요.(웃음)"
'정도전'을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박진우는 "앞으로 그냥 꾸준한 배우, 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소박한 듯 결코 소박하지 않은 목표였다.
"시청자들이 봤을 때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시청자들이 제 연기를 보고 불편해서 채널을 돌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맡은 역할을 편안한 듯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박진우.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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