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포항 김진성 기자] “스피드보다는 제구죠.”
150km를 상회하는 직구에 제구까지 완벽한 투수가 있다면 국이 국내에서 뛸 이유가 없다. 때문에 국내 투수가 스피드와 제구 중 하나의 장점을 갖고 있다면 그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경기운영능력으로 채워가는 방식을 택한다. 삼성 윤성환의 경우 스피드보다는 제구에 강점이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이다. 경기운영능력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볼 빠른 투수를 선호한다. 20일 포항 롯데전을 앞두고 만난 윤성환은 “감독님이 볼 빠른 투수를 선호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나는 150km가 나오는 투수가 아니다. 컨트롤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라고 웃었다. 윤성환은 올 시즌 초반 불운과 부진이 겹쳤으나 8경기서 3승3패 평균자책점 3.99. 괜찮은 활약이다. 류 감독도 당연히 윤성환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 승리에 덤덤한 남자의 진심과 소신
윤성환은 올 시즌 초반 등판할 때마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렀다. 3월 29일 개막전부터 7이닝 비자책점을 기록했으나 1회 외야 실책으로 2점을 헌납한 게 빌미가 돼 패전투수가 됐다. 이후에도 몇 차례 승리를 아쉽게 놓쳤다. 그러면서 간혹 무너진 경기도 있었다. 이럴 경우 투수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게 된다. 하지만, 윤성환은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뿐이다. 좀 더 집중했다면 다른 결과를 받을 수도 있었다. 몸이 아프지 않기 때문에 경기 당일 컨디션만 잘 유지하면 된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윤성환이 승리에 무심한 이유. 그는 “중간계투들이 도와주고 타자들이 잘 쳐줘야 선발투수가 승리할 수 있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결국 꾸준함이 중요하다. 퀄리티스타트를 꾸준히 해내고 애버리지를 보여주면 된다”라고 했다. 실제 윤성환은 데뷔 이후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선발로테이션을 지켜왔다. 뛰어난 제구와 주무기 커브 외에 체인지업 등을 장착하면서 진화해왔다. 투수로서 매우 바람직한 길을 걸어온 것.
윤성환은 최근 2연속 승리를 거뒀다. 13일 대구 한화전과 18일 광주 KIA전서 연이어 7이닝 1실점, 7이닝 2실점 호투. 불운을 털어버리고 윤성환답게 돌아왔다. 윤성환은 “역시 투수는 스피드보다는 제구다. 예전엔 스피드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태한, 김현욱 코치님이 항상 제구를 강조하신다”라며 “목표는 15승”이라고 했다. 은근슬쩍 본심을 드러낸 윤성환. 마운드에서의 컨트롤만큼 마인드 컨트롤도 잘하고 있다.
▲ 투수-포수의 책임은 50대50
볼배합의 중요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어떤 전문가들은 “결국 투수의 제구가 좋지 않으면 볼배합이 의미가 없다”라고도 하고, 또 다른 전문가들은 “박빙 상황에선 포수의 투수리드와 볼배합이 매우 중요하다”라고도 한다.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지 못하는 윤성환도 포수와의 긴밀한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윤성환은 “이지영, 이흥련 등 포수들이 정말 잘 해준다”라고 웃었다. 이어 “50대50인 것 같다”라고 했다.
윤성환은 “포수의 리드도 중요하다. 볼 배합 사인을 미리 정해놓고 마운드에 오를 때도 있다. 처음부터 포수의 사인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은 날에는 어지간해선 마운드 위에서 고개를 흔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흥련도 예전에 “윤성환 선배, 배영수 선배, 장원삼 선배, 모두 나를 편하게 해주신다”라고 했다. 그만큼 투수들이 포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윤성환은 “중요한 건 사인을 정하고 공을 던지는 순간에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윤성환은 투수가 이런 기분이 들 때 안타를 얻어맞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공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윤성환은 그래서 “투수와 포수의 믿음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또한, 투수 본연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게 윤성환의 견해. 그는 “얻어맞을 땐 볼배합의 문제라기보다 대부분 투수의 공이 한 가운데에 몰리는 등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공을 던진 경우다. 책임은 투수에게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강한 책임감과 믿음이 지금의 윤성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 순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윤성환에게 ‘강한’ 삼성의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우리는 순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했다. 흔히 고참들 위주로 선전을 다짐하는 의기투합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성환은 “신인 때부터 그랬다. 우리 팀 투수, 야수들은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했던 것 같다”라고 했다. 모든 선수가 팀에 필요한 역할을 잘 해내고, 벤치에서 해당 선수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다. 삼성이 강한 비결은 평범함에서 찾을 수 있다.
윤성환은 “물론 정규시즌을 치르다 보면 매우 중요한 경기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더 집중한다”라고 했다. 이어 “투수코치님도 상대팀별 데이터를 분석하신다. 4일 휴식기를 활용해 간혹 로테이션을 바꿔주신다”라고 했다. 숨은 배려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1위를 위해 특별한 뭔가를 하는 건 아니다.
윤성환은 “작년부터 두산만 만나면 얻어맞았다. 올해는 NC도 무서워진 것 같다. 두 팀에 잘 던지고 싶다”라고 했다. 윤성환은 15승이라는 잠재목표가 있다. 하지만, 승리를 의식하진 않는다. 팀 문화 자체가 순위, 승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순리대로 풀어갈 뿐이다. 삼성과 윤성환이 무서운 이유다.
[윤성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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