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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그야말로 탄력 받았다. 어딜 가든 웃음을 몰고 다니고 땀흘린 만큼 인정 받는다. 배우 정순원(27)은 요즘 그야말로 제대로 탄력 받았다. 연극 '바람난 삼대'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것도 너무도 좋은 작품으로 찾아오니 그 안의 정순원이 점점 빛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에서는 정순원의 매력이 특히 돋보인다. 다소 어리바리하지만 순수함이 묻어나는 석구의 모습은 정순원의 순수한 연기 열정과 닮았다. 적재적소 터뜨리는 석구의 웃음 포인트는 개그맨 못지 않은 재치를 지닌 정순원의 모습과 닮았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6.25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전쟁의 참혹함을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으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남과 북의 군인들이 100일간 함께 생활하며 인간적인 우정을 나누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첫사랑을 간직한 남한군 신석구 역을 맡은 정순원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핫한 뮤지컬에 출연하니까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래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을 느끼기는 했지만 한쪽으로는 의욕이 넘쳤다. 석구는 욕심을 갖게 하는 인물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 "탄탄한 전사, 재미있고 부담 없애줬다"
정순원은 '여신님이 보고계셔' 초연, 재연을 보지 못한 채 삼연에 제일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그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석구가 너무 많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힘들더라. 영리한 면도 있고 눈치가 빠르다가도 어쩔 때 보면 눈치가 없다. 누나 앞에서는 바보스럽기도 하다"며 "사실 처음엔 좀 심하게 바보같고 시골 촌뜨기 같은 석구를 만들려 했는데 연출님이 뜯어 말렸다. 석구도 매력이 있어야 하고 누나도 석구에게 사랑을 싹틔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석구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간의 석구를 보니 내가 봐도 멋있더라. 삼연에 새로 합류했기 때문에 부담감이 분명히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초, 재연 무대에서 보여진 석구들 사이에 끼는게 조금은 힘들었던 것 같다. 워낙 탄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엔 부담이었는데 이제 그 느낌은 완전히 없어졌다. 이젠 내 공연, 내 역할, 내 옷, 그리고 관객들도 내 식구 같은 느낌이 든다."
정순원이 석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동료 배우들의 도움도 컸다. 그는 "성격이 느린 편인데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망설일 때 동료 배우들이 안개를 걷어줬고 길을 빨리 택할 수 있었다"며 "손발이 잘 맞는 배우들과 톱니바퀴 돌아가듯 맞춰 나갔고 그러다 보니 부담도 없어지고 편안하게 욕심을 부릴 수 있었다. '이왕 맡은 김에 최고라는 소리는 들어봐야지'라는 욕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간 전사(前史) 역시 도움이 됐다. 류순호의 형으로 등장할 때도 '류순원'이라는 이름을 짓고 어부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했다. 전쟁에 끌려오게 될 때부터 부모님의 생사를 모르고 동생과 살아 돌아가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서의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마음 등을 함께 조율해 나가며 탄탄한 전사가 만들어졌다. 석구 역시 방대한 전사를 만들어 나갔고 감정에 솔직한 석구를 탄생시켰다.
이어 정순원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영범 역 배우들과는 서로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조)형균 형이랑은 둘이 꾀가 많아 어떤 행동과 제스처가 있을까 많이 만들어냈다. (정)문성이 형은 굉장히 아이디어가 좋다. 형은 주옥같은 아이디어를 쭉쭉 내니까 갈고 닦기만 하면 된다. (김)종구 형은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라는 얘기를 자주 해주셔서 많이 시도를 해본다"고 설명했다.
"류순호는 네명씩이나 되니까 다른 배우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순호의 느낌이다. 네명의 순호가 있기 때문에 그 네명과 네가지 맞춤형 순호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 공연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공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고 경우의 수가 많으니까 순호와는 공연 전에 마음이 통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포옹도 많이 하고 오글거리는 얘기도 한다. '이따 보자. 살아서 만나자' 같은 오글거리는 말이다."(웃음)
▲ "누나 짝사랑 경험, 심장이 쿵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었던 정순원은 '여신님이 보고계셔'에서는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자고 다짐했다. 석구는 웃기면 웃고 슬프면 우는 인물이기 때문에 애써 감정을 부여잡지 말자고 생각했다. 솔직한 것이 더 석구답고 감정을 더 증폭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순원은 "솔직히 에피소드가 제일 처음에 나오니까 부담감도 있다. 숨이 턱까지 차고 목도 엔진이 과열된 것처럼 과열된 상태일 때 '꽃봉오리'를 불러야 한다"며 "내 소리가 아닐 정도로 달아오른 상황에서 스케일이 큰 '꽃봉오리'를 불러야 하는데 저음으로 시작해 고음으로 올라가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감정에 있어 집중력을 올릴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초반을 열고난 뒤 다른 인물들을 볼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석구를 하며 첫사랑보다 짝사랑 생각을 많이 한다. 누나를 짝사랑한 경험이 있다. 그 때는 그렇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생각난다. 그러다가 목소리 한 번만 들어도 너무 좋고 그런 마음이 요즘 많이 생각난다. 물고기 잡고 나서 다같이 밥 먹을 때 '달래꽃잎 엮어주렴. 내님 목에 걸어주게'를 부르기 전에 많이 생각 나면서 요동친다. '뭐 하고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점점 발전하다가 '살아는 있을까'라는 생각에 심장이 쿵한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를 통해 따뜻한 감성을 전하고 있는 정순원은 현재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순원은 "좀 쑥스럽다. '내가 이렇게 할 정도의 실력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힘들긴 한데 관객들이 무대 위의 나를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좋다. 그만큼 책임감도 든다"고 고백했다.
"내가 100이라는 힘을 갖고 있는데 나누는건 말이 안된다. 차라리 내가 200을 더 키워서 100씩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임 질 수 없으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많은 경험이 득인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인생을 많이 배웠다. 석구를 하면서는 소중한 것에 대해 많이 느꼈다. 인문학적으로 많이 배우는 것이 득인 것 같다."
▲ "무대 위에서는 사기 치지 않으려 한다"
정순원의 끼는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최진사댁 셋째딸' 남자 주인공을 맡고 사회를 맡을 정도로 끼가 다분했던 그는 'TV에 나올거야. 개그맨 할래'라고 말했고, 부모님 역시 자연스럽게 꿈을 막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의 꿈을 당연시 여겼고, 예고에 진학하며 꿈을 구체화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고, 그 길이 참 재미있었다.
"어릴 때 저 멀리 한가지 목표가 있었다. 계속 그걸 보고 갔다. 가다 보니까 예고처럼 너무 예쁜 꽃밭도 나오고 좋은 사람 만나서 물도 얻어 마시고 그 사람들이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게 잘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배우를 하며 힘든 점은 전혀 없다. 나만큼 운이 따라주는 행운아는 없는 것 같다. 요즘 탄력 받았다는 말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지 언제나 백조처럼 물 아래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때는 연기 못한다는 소리보다 안 웃기다는 소리가 잠 못 이루게 했을 정도로 개구진 성격을 지닌 정순원은 한때 개그맨의 길을 갈 뻔 하기도 했다. 대학 개그동아리 1기 선배인 개그맨 표인봉, 김경식의 권유로 개그맨이 될 뻔도 했지만 배우를 택했다. 당시 함께 제안 받은 친구 이세진은 현재 개그맨이 돼있지만 배우의 길을 택한 정순원은 현재 결과적으로는 만족하고 있다.
개그맨 제의를 받을 정도로 유쾌한 성격 때문일까. 팬들과 소통하는데 있어서도 정순원은 적극적이고 유쾌하다. 그는 "관객은 연극의 3요소다. 연극의 한 부분인 것이다. '파리의 연인'을 할 때 역할 이해를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너무 힘들더라. 그 때 '배우라는 일도 똑같구나. 배우도 서비스업인데..'라는 생각에 고객 감동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이 비싼 티켓 사서 오시는 분들에게 내가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무대 위에서 살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강도나 다름 없다. 관객들에게 사기 치는 거다. 무대 위에서는 사기 치지 않으려 한다"며 "무대 밖에서는 사실 바쁘고 힘들 때는 트위터 멘션이 와도 일일이 답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고객 감동을 추구한다"고 털어놨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를 힐링극이라고 하는데 힐링이라는 감정은 관객분들만 느낄 수 있다. 사실 우리들은 무인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감정, 위로는 일부러 해드리려고 해도 해드릴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힐링 같은 경우는 보고나서 관객들이 느낀다면 너무 감사하다. 그런 감정들도 선택해서 얻어가시는 건데 힐링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보람차다. 나에게 '여신님이 보고계셔'란 힘든 운동 같다. 진짜 하기 힘들고 진짜 못할 것 같고 포기하고 싶고 그랬는데 하면 할수록 조금씩 늘고 또 가르쳐준 코치, 감독님들이 너무 고맙고, 또 내가 많이 성장할 수 있게 해는 운동 같다."
한편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오는 7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정순원, 공연 이미지. 사진 = is ENT, 연우무대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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