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고참들이 솔선수범하죠.”
지난 15일 진천선수촌 여자농구대표팀 훈련 코트. 베테랑 임영희가 가장 먼저 나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임영희는 “내가 빨리 나오는 편이긴 하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라고 했다. 이어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농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서 그런지 후배들에게도 굳이 따로 해줄 말이 없다”라고 웃었다.
여자대표팀은 남자대표팀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베테랑들과 젊은 선수들이 많다. 여자농구 특성상 중간층이 두껍지 않다. 자칫 조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절묘하게 잘 맞는다. 그 사이에 위성우 감독이 완벽에 가깝게 팀을 통제한다. 최상의 전력을 뽐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는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딜레마도 엿보인다.
▲ 위성우 감독과 베테랑들의 밀당
현재 대표팀 베테랑들은 이미선 변연하 임영희 신정자 등이다. 이들은 소속팀에서도 핵심 자원.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이 있다. 평창 JDI서 2주간 몸을 만들었지만, 지난 몇 년간 피로가 누적돼 만들어진 고질적 부상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내색을 하지 않는다. 위성우 감독의 훈련 진행에도 묵묵히 따라온다.
위 감독의 훈련. 강도가 만만찮다. 이때 고참들이 힘들어하는 내색을 하면 팀 분위기가 무너진다. 베테랑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답게 능숙하고, 노련하게 훈련을 소화한다. 대신 위 감독과 정상일, 전주원 코치가 선수들 개개인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위 감독도 우리은행과는 달리 훈련 강도를 낮췄다. 크고 작은 부상자가 많기 때문에 무조건 강도를 높인다고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밀도가 높다. 대단히 치열하다. 위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에 베테랑들이 운동에만 집중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저연차 선수들은 녹아든다. 때문에 훈련 분위기는 긴장감이 넘친다. 대신 위 감독은 훈련이 끝나면 사람 좋은 아저씨로 변한다. 고참들과는 간혹 농담을 주고 받는다. 완벽한 밀고 당기기. 위 감독도, 베테랑들도 서로를 잘 안다. 그리고 베테랑들은 후배들을 잘 챙긴다. 완벽한 팀 케미스트리의 기본이 다져졌다.
▲ 젊은 선수들의 성장
지난해 정규시즌 MVP 박혜진을 예로 들어보자. 박혜진의 상승세는 지난해 가을 아시아선수권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태극마크를 단 박혜진은 대단히 저돌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지난 시즌 우리은행서 보여줬던 그 플레이들이 대표팀 경기서 나왔다. 완전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수년간 태극마크를 달았고 정상급 기량을 자랑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정체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정은 역시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서 확실히 한 단계 성숙했다. 김정은은 하나외환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지 못했으나 지난 시즌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단지 우연이라고 볼 순 없다. 박혜진은 “대표팀에서 느낀 게 많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임영희가 말한대로 대표팀에는 농구를 잘하는 선수만 모인다. 하지만, 다들 농구를 잘해도 미묘하게 다르다. 베테랑들이 갖고 있는 노련미와 센스를 젊은 선수들은 아직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젊은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베테랑들과 합숙하고 국제대회를 함께 뛰면서 그 센스 중 일부를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다. 박혜진의 경우 지속적으로 이미선의 플레이를 느끼고, 익혔다.
이는 대표팀이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부분. 여자대표팀은 지난 2010년 브라질 세계선수권 당시 급격한 세대교체를 시도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이후 다시 베테랑들이 등장했고 서서히 젊은 선수들의 비중을 높여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젊은 선수들의 기량은 매번 미세하게 좋아지고 있다. 전주원 코치 역시 “급격한 세대교체는 좋지 않다”라고 했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베테랑들과의 절묘한 조화가 극대화된다. 여자대표팀이 과거 국제대회서 선전했을 때 이런 기본 밑바탕은 완벽했다.
▲ 여전한 딜레마
딜레마도 있다. 대표팀은 여전히 베테랑들 위주다. 예를 들어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 당시 중국, 일본전 주요 공격옵션은 당연히 변연하였다. 실질적으로 변연하만큼의 경험과 테크닉을 갖춘 득점원이 없다. 김정은 김단비 박혜진 등 해결사들이 즐비하지만, 변연하의 노련미를 기대할 수 없다. 임영희도 국가대표 경력과 노하우는 변연하에 비해 많지 않다. 위 감독 역시 “변연하의 존재감이 크다”라고 했다.
이런 현상은 결국 국제대회 승부처서 몇몇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실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지 않고선 국제대회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높이와 파괴력 등 여전히 대표팀 자체 전력이 약점이 있기 때문. 위 감독은 이런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소속팀만큼 강도 높은 훈련을 하기 어렵기 때문. 이는 미래의 불안정성을 의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베테랑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당위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필요하다. 확실히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농구는 남자농구만큼 자원이 풍족하지 않다. 위 감독이 일찌감치 최종엔트리를 못 박은 건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구조적인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단 지난해에는 딜레마 속에서도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다. 올해 대표팀 역시 준비과정부터 대단히 인상적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가는 핵심은 신구조화와 조직력, 그리고 딜레마의 효과적 해결이다.
[여자농구대표팀.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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