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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저력의 김명민과 저조한 시청률의 이유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김명민은 역시 '연기본좌'였다. 최희라 작가의 펜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다만 시청률은 최희라 작가의 전작 '골든타임'보다 못했다. 김명민의 전작 '드라마의 제왕'보단 약간 높았다.
26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서 김명민은 변호사 김석주를 연기했다. 특유의 카리스마는 이번에도 강렬했다. 드라마의 중심에서 모든 사건과 연결되어 사실상 극을 홀로 이끌었다. 힘에 부친다거나 흔들리는 기색은 없었다. 시작과 끝이 김명민이었다. '완벽하다'란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게 어울렸다. 김명민 아닌 김석주는 존재할 수 없었다.
연기력의 절정은 한 캐릭터로 전혀 다른 두 성격을 표현한 지점이다. 불의의 사고 후 김석주는 기억상실로 일명 '무명남'이 됐다. 이 장면을 기준으로 김명민은 김석주의 두 가지 인생을 연기했다. 건조하던 목소리와 차갑던 눈빛에는 온기가 돌았다. 섬세한 표현력이 같은 김석주이긴 하나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듯한 김석주를 만들었다. 성격이 달라졌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연기와는 깊이가 달랐다.
제작발표회 때 김명민은 "기억상실 후 김석주를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다고 사람이 전부 변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란 대사에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김명민이 찾아낸 답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의사, 오케스트라 지휘자, 드라마 제작사 대표, 마라톤 선수, 간첩 그리고 변호사까지. 42살의 김명민은 다시 성장하고 말았다. 위대한 배우가 되어 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
최희라 작가는 법정드라마를 만들었다.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진짜 법정드라마였다. 이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의미이며 한국드라마의 도약이다. '골든타임'에서도 증명된 최 작가의 뚝심이다.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도 '골든타임'과 일맥상통하는 호평의 이유다. '개과천선'에선 실재하는 사회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나열됐다. 법 위에 권력이 존재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시청자 스스로 돌아보게 했다. 최 작가는 이미 '믿고 보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호평은 시청률로 이어지지 못했다. 자체최고시청률은 10.2%(닐슨코리아 전국기준)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진지했으나 무겁기만 했다. 가벼운 웃음이 적었다. 복잡한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선 시청자들에게도 높은 집중력이 요구됐다. 긴장을 풀어줄 웃음이 필요했다. 적합한 캐릭터는 있었지만 연기는 미흡했다. 박상태 역의 오정세만 제 몫을 했을 뿐이다. 안선영, 애프터스쿨 멤버 주연은 기대 이하였다. 특히 주연은 다른 배우들과 조화되지 못하고 혼자만 다른 연기를 했다. 과장된 연기였다. '개과천선'의 무게는 시청자층을 폭넓게 아우르지 못했다.
최 작가의 필력은 인정해야 하나 후반부의 연결은 허술함이 있었다. 두 차례 결방으로 인한 조기종영이 갈등과 해소 사이의 탄탄한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밀어 넣은 열쇠가 왠지 맞지 않는 데도 문이 열려 버린 느낌이랑 비슷했다. 매우 빠듯한 촬영 스케줄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드라마의 고질병이 도진 셈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제작이었다면 시청률은 달랐을 것이다. 완성도 또한 지금보다 높았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다행이다. 시청률은 충분하지 못했지만 호평은 넘쳐났다. 김명민 같은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와 최 작가 같은 진짜 드라마를 쓸 줄 아는 작가가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시청률은 높아도 혹평뿐인 드라마들도 많다. '개과천선'에는 시청률보다 값진 시청자들의 호평이 있었다. 제2의 '개과천선'이 곧 나타나길 기대한다.
[사진 = MBC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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