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졸업 후 치과의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고려대와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개막전을 치른 미국 브리검영대학 코리 랜지가 남긴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랜지는 경기 막판 결정적 3점슛 포함 18점을 기록하며 브리검영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공식인터뷰에 나선 그는 “졸업 후 치과의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랜지의 목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브리검영대학은 전미대학농구 디비전2 퍼시픽웨스트 소속. 2부리그서도 중위권 전력. 미국대학농구 1부리그는 32개 컨퍼런스에 총 351개교가 있다. 미국 농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브리검영대학 수준은 미국에서 400~500등 정도라고 보면 된다”라고 했다. NBA 신인드래프트서 선발되는 대학 선수는 1부리그 상위권팀 에이스에 한정된다. 쉽게 말해서 브리검영대에서 NBA 선수를 배출할 가능성은 제로다.
▲ 학업과 취미위주의 미국, KBL만 보는 한국
미국 학원스포츠가 공부하는 선수를 양성하는 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 극소수 엘리트가 아니면 졸업 후 프로선수가 아닌 다양한 직업군으로 진출한다.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알맞은 길을 찾아가면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NCAA 소속 선수들은 매우 까다로운 학업 성취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경기에 나설 기회조차 박탈된다. 공부부터 잘해야 프로선수가 될 수 있다.
엘리트 농구 인재 풀이 너무나도 풍부한 미국. 대다수 선수는 자신이 NBA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하물며 브리검영대학과 같은 2부리그 팀은 말할 것도 없다. 또 다른 농구관계자는 “냉정하게 보면 동아리 농구다. 성적 스트레스 없이 농구를 즐긴다고 보면 된다”라고 했다. 랜지도 마찬가지다. 브리검영대학에선 주득점원 노릇을 했지만, 그의 목표는 치과의사다. 현재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농구는 좋은 취미다.
한국은 어떤가. 1부리그에 소속된 12개학교 선수들 대부분 KBL을 노린다. 미국에 비해 인재풀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상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1부리그 팀들이 꾸준히 KBL에 선수를 공급하지만, 대다수 선수는 2~3년 안에 소리소문 없이 은퇴한다. 1부리그에 소속된 선수라고 해서 전부 KBL을 노리는 건 희망고문이다.
그래서 대학농구연맹이 2010년 대학리그를 출범하면서 선수들에게 학업을 병행시켰다. 대학리그가 출범하기 전엔 선수들이 농구만 했다. 이러니 졸업 후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기 일쑤였다. 대학리그가 정착하면서 선수들도 정규 수업을 받고 팀 훈련과 리그에 임한다. 어렴풋이 체계는 잡힌 셈이다. 하지만, 아직 과도기다. 이들은 중, 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선수가 대부분이다. 갑작스러운 대학공부가 쉽지 않다. 때문에 KBL 진출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수는 심리적으로 방황하는 케이스가 많다.
▲ 확실하지 못한 방향설정의 폐단
때문에 우리나라도 확실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KBL에 갈 실력이 되지 않은 선수는 대학리그 경기에는 출전시키되 학업 스케줄에 좀 더 비중을 두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농구관계자에 따르면 “요즘은 지도자들도 선수들의 장래를 보고 미리 얘기를 해준다고 하더라. 바람직하다”라고 했다. 그런데 대학 커리큘럼 소화가 쉽지 않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별도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국내 1부대학서 뛰는 모든 선수는 중, 고교 시절 날리는 에이스였다. 기초 학업을 거의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경우 결국 사회 부적응자를 낳을 확률도 높아진다.
또 다른 폐단도 있다. 이 관계자는 “대학 선수들의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심각하다”라고 했다. KBL에 반드시 진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성적으로 연봉이 결정되는 프로가 아님에도 목숨 걸고 농구한다. 지금 대학 수업을 열심히 듣고는 있지만, 그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KBL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꼬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국내 대학농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테크닉과 창의성 부족이다. 이는 지도자들과 대학농구의 환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선수들에게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KBL 진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보니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기본 기술이 아닌 대학리그 성적, KBL에 가기 위한 스킬만을 익히다 보니 그 다음단계로 진화하는 데 어려움이 분명히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폭풍성장 하다 대학에 들어와서 오히려 성장이 정체되는 선수가 의외로 많다.
미래 목표를 확실하게 설정하고 농구를 즐기는 브리검영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국내 대학 4강보다 연습량이 적다. 그럼에도 선수들 테크닉은 고려대보다 미세하게 앞섰다. 순수하게 농구를 좋아하는 디비전2 선수들이 즐기면서 체계적으로 선수생활을 하니 목숨 걸고 농구하는 국내 아마농구 최강자를 꺾었다. 물론 한국 실정은 좀 다르긴 하다. 그래도 그냥 넘길 부분은 아니다.
사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미국, 호주, 중국, 필리핀, 대만, 일본 등 해외 대학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그 국가 최상위랭킹 대학이 아니다. 호주 모나시대가 그나마 수준 높다고 알려졌으나 4일 연세대에 무너졌다. 국내 대학 4강이 이 팀들에 기술, 전술적으로 참고할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농구를 하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며 어떤 체계 속에서 농구를 하는지는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이 대회 성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다.
[브리검영대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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