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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압도적이다. 배우 이범수가 영화 '신의 한 수'에서 펼친 연기는 그 어디에도 없는 악인으로 손색이 없다. 복수를 다짐하고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태석(정우성)만큼이나 살수의 절대악 포스는 압도적이다.
이범수는 내기 바둑판의 잔인한 절대 악 살수 역을 맡아 오랜만에 악역을 연기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유린하고 즐기는 인물이 바로 살수다. 살수의 잔혹성과 악함은 이범수의 얼굴에서 더욱 살아 움직인다.
이범수가 악역으로 돌아온 것은 영화 '짝패' 이후 9년만이다. '신의 한 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 "몸이 근질근질"했던 이범수는 "시기상 하고 있던 작품을 보면 착하거나 평범한 그런 역할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극적인 캐릭터를 제안 받았다"고 회상했다.
언제나 배우들이 바라는 것이다. 이범수 역시 "연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캐릭터"를 좋아하고, 살수는 "오랜만에 새로운 악역을 연기할만한 공간이 있는 캐릭터"였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절대악 살수는 말 그대로 나쁜 놈처럼 보여야했다.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않으면, 연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나"싶은 게 이범수의 생각이었고, 고민이었다. 살수는 극중 긴장감을 조성해야 했고, 그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 "연기를 잘해야 한다보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 것"이 이범수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영화를 본 후 긴장감이 느껴져서 만족스러웠다고.
살수는 이유 있는 악역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살수의 과거가 숨겨진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바로 '신의 한 수'가 노렸던 부분이었다. 살수는 철저하게 신비주의 원칙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이범수에 따르면 살수의 사연을 잘못 담아내면 통속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오히려 묘한 놈, 알 수 없는 놈의 콘셉트"가 살수 캐릭터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더 불길하고 긴장감을 줬다. 살수의 신비주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수록 상대에 대한 공포심은 커진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살수는 파악하기 힘든, 그래서 두려운 상대다. 이범수는 "살수의 사연이 밝혀지면 다음수가 읽힌다. 수가 뻔해 보일수도 있었기 때문에 살수는 알 수 없는 놈이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살수의 악랄함은 이범수의 선한 얼굴을 통해 나오면서 잔혹성이 배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의 악행을 볼 때 더 소름 돋는 이유이기도 하다.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할 것처럼 순한 사람이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졌을 때의 반전 같은 느낌이랄까. 이범수는 "내 마스크 안에는 선한 면도 있고 날카로운 면도 있다.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이범수가 만드는 악역이 소름 돋는 만큼 그만이 가진 노하우가 있을까. 사실 악역이 "매뉴얼처럼 정해져서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연기가 그렇다. 이범수 역시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캐릭터에 집중하는 수밖에.
이번 작품에서 이범수는 20시간동안 분장을 감행했다. 바로 영화 속 살수의 모습 중 가장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준 전신 문신을 위해서였다. 살수는 "옷을 입던 안 입던 언제든 나빠 보이길 노력"했다. "얼음처럼 차갑고 냉기, 한기가 도는 그런 인간"이고 싶었다.
전신문신의 느낌은 일반인과 다른 '이질감'이었고, '혐오감'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상처 같은 사연이 있을법한 분장이 아닌, 인위적으로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문신'이야 말로 살수의 성격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도구였다.
"스무 시간이 넘게 분장을 했다.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세 명 이서 문신 분장을 했다. 일본 야쿠자 같은 문신이다. 서양 문신 같은 미(美)를 추구하는 문신보다 야쿠자의 문신이 냉기가 돌고 야비해 보인다. 그것이 살수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렇듯 이범수는 절대악인 살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감정, 표정, 외적인 모습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절대악으로 보이기 위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서도 악인에 대한 촉촉한 감정을 유지해야 했다. 과거에는 한 인물을 연기할 때 일상생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이범수는 "정답은 없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고, 배우들마다 다른 스타일을 지니고 있지만, 이범수는 "현장에서의 순간 집중력과 폭발적 에너지"를 원했고, "일상에서는 일상의 이범수"가 있다는 설명이다.
"연기를 전공하면서 배울 때는 일상에서도 그 인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살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배우가 된 지금을 놓고 봤을 때 어떻게 일상생활을 그렇게 하겠나 싶다. 배우의 스타일이다. 일상의 이범수와 카메라 앞의 이범수가 있다. 별개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범수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코믹부터 멜로, 액션까지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완성한 이범수는 "꼭 의식해서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때마다 하고 싶은 역할이 다르고, 그 상황에 따라 작품은 선택된다. 착하고 정의로운 역할을 연이어 하던 중 '신의 한 수'가 이범수에게 왔고, 잡았다. 그렇게 살수를 완성해냈다.
어떤 이들은 이범수의 코믹 연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는 "언제든지 코믹, 내가 좋아하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를 보면 웃기기도 하는데 감동도 준다. 무성의하거나 욕심 사나워서 이런저런 배역을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역할을 맡는 재미가 있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자유롭게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이범수, 영화 '신의 한 수' 스틸컷.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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