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우리도 예전보다 키는 크지.”
남자농구대표팀 유재학 감독은 한국농구도 예전에 비하면 장신화가 됐다고 평가했다. 여자에 비해 남자의 경우 190cm이 넘는 1~2번 가드들과 3번 스몰 포워드들이 많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신장이 국제무대서 약점 중 하나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게 국제무대서 한국이 그 어떤 국가에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 대표팀 선수들도 기술이 떨어진다
유 감독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전서 필리핀에 패배한 걸 잊지 못한다. “가드들 페이크 몇 번에 우리 빅맨들이 다 속았다”라고 했다. 당시 맹활약했던 가드가 제이슨 윌리엄, 짐 알라팍 등이었다. 그런데 윌리엄의 경우 신장이 고작 176cm. 외곽 수비가 익숙하지 않은 국내 빅맨들이 176cm 가드의 낮고 빠른 돌파와 페이크에 고스란히 뚫렸다. 단순히 신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대표팀의 화두는 수비. 공격농구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일까.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화려한 공격농구로 국제대회서 승승장구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최근 남녀대표팀의 국제대회를 살펴보면 수비보다는 공격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수비는 약속대로 잘 움직이는데, 정작 공격에선 외곽에서 부산스럽게 공만 돌리다 급하게 슛을 던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빅맨들이 키만 컸지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지금 국내 빅맨 중에서 공격 기술이 있는 선수가 누가 있나”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기본기 외에 자신의 무기라고 할 만한 확실한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 수비를 자신에게 집중시킬 수 없다. 빅맨들의 공격 기술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상대 수비를 집중시킨 뒤 외곽으로 빼주는 공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득점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그렇게 공격을 할 수 없다.
수비 역시 기술이 필요하다. 정신력과 체력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해 빅맨들이 필리핀 단신 가드들 훼이크 몇 차례에 뚫린 건 빅맨들의 외곽 수비 기술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 감독은 국내 모 선수를 예로 들며 “수비하는 길을 전혀 모른다”라고 했다. 때문에 전술훈련할 시간에 외곽수비의 ABC를 가르쳤다. 단순히 발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유 감독은 “발 빠르면 앞으로는 잘 뛴다. 그러나 옆으로 움직이거나 범위를 골밑에만 한정하다 넓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했다.
부작용이 있다. 유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 1-3-1 변형 존 디펜스를 연마할 시간이 부족하다. 기본적인 2대2 수비서 빅맨들의 외곽 움직임, 기본적인 풀코트, 하프코트 프레스에서의 움직임이 좋지 않은 선수가 많기 때문이다. 기본이 부족하니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대표팀에 뽑히는 간판 선수들조차 공수 기본적 테크닉이 떨어진다. 한국농구의 현실이다. 그래도 공격보다는 수비 테크닉 연마가 시간이 덜 걸린다는 게 중론. 대표팀 컨셉이 수비농구인 이유다.
▲ 왜 기술연마가 더딜까
왜 프로선수들은 공격과 수비 기술이 부족한 걸까. 중, 고등학교 때 기본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은 아무리 젊어도 20대 중반이다. 그때쯤이면 이미 몸이 굳는 단계라고 봐야 한다. 10대, 늦어도 20대 초반까지가 기술 연마의 최적기다. 지도자들은 “프로에서도 기술을 장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 고등학교, 대학교 지도자들이 문제일까. 꼭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요즘 중, 고등학교를 보면 농구부에 들어올 선수 구색을 갖추는 것조차 힘겹다. 여자의 경우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힘든 엘리트 체육의 길을 걷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많이 바뀌었지만, 학생농구서 여전히 성적위주의 부작용이 남아있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지도자 목숨이 위태롭다. 학교 지원도 끊길 수 있다. 지도자들이 기술을 가르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성적에만 집착해 지역방어와 짜인 패턴 등 조직적 움직임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수업에 참여한 뒤 리그를 소화하는 대학농구리그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희대 김현국 감독은 “어릴 때부터 볼을 제대로 갖고 노느냐, 놀지 못하냐의 차이”라고 단언했다. 이기는 농구에만 젖은 어린 선수들이 창의적 사고를 갖지 못한다. 주입식 교육을 하면서 기술 발전 속도가 늦다는 게 김 감독의 지적이다. 김 감독은 “갑자기 기술 하나 가르쳐준다고 해서 경기서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최소 4~5년간은 몸에 굳어있는 게 나온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감독은 어려움을 전했다. “선수들에게 기본기 연습을 많이 시킨다. 단체운동 직전 드리블 연습부터 시킨다. 내 몸이 공을 얼마나 컨트롤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선수가 드물다”라고 했다. 기본기 훈련을 시키느라 세부 전술 훈련할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수업을 듣고 윔업을 하는 시간을 빼면 실제로 제대로 운동하는 시간이 매일 2시간 정도라고 했다. 결국 김 감독은 “개인연습으로 보강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해서 익히려고 하고, 지도자들이 도와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라고 했다. 김 감독에 따르면, 수업 듣고 팀 연습 참가하면서 시간을 내고 개인훈련까지 하는 부지런한 선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
브리검영대학 켄 와그너 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다. 훈련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학사일정이 빡빡하고 훈련에 제약이 많다. NCAA 규정상 주 20시간 이상 훈련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대학 선수들은 이미 기본기가 완벽하게 갖춰졌다.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와그너 감독은 “한국 대학의 기술이 뛰어나다”라고 했지만, 정황상 립 서비스가 섞였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는 “신장보다 체격이 중요하다. 스피드와 슈팅, 기본기술에 키 작은 선수도 체격이 좋아야 한다”라며 웨이트트레이닝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생농구 시스템이 과도기를 끝내고 정착돼야 한다. 그리고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마인드 변화가 시급하다. 프로에서도 기술연마를 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릴 문제다.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한다. 가장 잘못된 사고는 농구선수는 단순히 키만 크면 된다는 것이다. 세계농구의 패러다임은 높이에서 스피드와 기술로 넘어간 지 오래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농구는 신장과 스피드, 기술을 갖춘 완성형 선수와 완성형 팀을 요구한다.
[남자농구대표팀. 사진 =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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