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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나 속은 곧고 꿋꿋하다. 배우 강연정(27)이 그렇다. 겉모습은 여리고 귀엽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거쳤음이 느껴진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그 안에서 긍정을 찾는 강한 사람인 그녀는 좋은 사람이자 좋은 배우다.
그런 강연정이 현재 외유내강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작품은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 화재사건으로 인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에 얽힌 네 남매와 사건 이후 사라진 유모의 이야기를 그린 심리 추리 스릴러 작품이다.
평범한 삶을 지향하지만 그 이면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픔이 감추어져 있는 네 남매 중 유일한 여자형제 안나 역 강연정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유쾌한 극이나 힐링극 위주로 해오다 보니 어떤 공연일까 정말 궁금했다. 배우도 힘들고 관객도 진이 빠지는 극이라는 얘기를 듣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삼연에 대한 부담도 사실이다. 초연작을 보면 뇌리에 확 박히는데 정말 사랑 받았기 때문에 모두 부담이 됐다. 하지만 다행히 휘둘리지 않았다. 우리가 맞춰 놓은 '블랙메리포핀스'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우리에게 나오는 것을 하고자 했다"고 고백했다.
▲ "절제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됐다"
뮤지컬 '거울공주와 평강이야기'에서 함께한 배우 임강희 팬이라 자처하는 강연정은 임강희와 자신이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블랙메리포핀스' 초연 당시 임강희가 연기했던 안나 역을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더 안나 역을 자신이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안나가 되면서 터닝포인트를 맞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연출님도 캐스팅할 때 많이 모험을 했을 거다. '너는 내가 이것 저것 보고 뽑은게 아니다. 오디션장에서 연기 했을 때 대사 안에 진실함이 가득해 뽑았다'고 하셨다"며 "외적으로도 그렇고 어린 아이 같은 부분이 많아 성인 안나와 어린 안나의 차이에 있어서도 연출님이 많이 얘기해주셨다. 차분하게 진실성을 담아 표현하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안나는 계속 무대 위에 있지만 대사가 많지도 않고 거의 듣고 있는 리액션 위주 연기다. 그래서 리딩 때도 계속 들으려고 했다. 사실 리액션이 너무 어려운데 연습 때 그걸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며 "한스와 헤르만은 감정적인 대사도 많지 않나. 사실 안나는 그걸 다 듣고 느끼면서도 표출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참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연출님이 안나에겐 절제를 많이 말씀하셨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폭발하고 싶고 한스와 헤르만이 싸우고 있으면 나도 감정이 올라 주체할 수 없긴 하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누르고 혼자 속으로만 삭이는 연습을 많이 했다. 감정적인 부분을 제일 많이 신경 썼다. 저한테 강조하신 절제는 많이 성글고 익은 안나, 외형적인 것과 다르게 익은 안나였기 때문에 많이 눌렀다."
하지만 절제는 어려웠다. 특히 전작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에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반달이 역을 맡았기에 말로 표출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러나 반달이는 안나를 연기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반달이를 연기하며 내적으로 쌓는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서 뭘 하든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공연을 시작하니 절제를 알겠고, 그 절제가 왜 필요한지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 "사실 안나는 외유내강이어야 한다"
막상 공연을 올리니 인물을 구축하는데 있어 더 명확해졌지만 사실 연습 때는 그만큼 힘든 것도 없었다. 초반 절제를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로봇 같은 연기가 나와 버렸고, 폭발시키거나 가득 채워놓은 상태에서 깎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내재된 절제를 찾아야 하니 안나에 다가가는데 있어 막혀 버렸다.
강연정은 "벽을 치고 연기하는 느낌이었다. 감정적으로 하려고 하면 너무 세게 나와 버렸고 눌러야지 하면 대사가 로봇 같이 나왔다"며 "특히 성인 안나를 연기할 때 압박이 세서 더 절제라는 틀에 갇히고 경직됐던 것 같다. 감정적인 소모도 엄청 커서 내려 놓는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또 함께 안나 역을 맡은 유리아에 대해 "감사하게도 동료 배우들이 엄청 도와줬다. 심적으로는 안나와 제일 많이 의지했다. 서로 많이 도와줬다. 표현하는 것에 있어 워낙 둘이 다르다 보니까 애매한 부분은 서로 많이 이야기해 줬다. 특히 리아에게 노래 부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안나는 세상고 단절되고 여린 전형적인 캐릭터지만 사실 안나는 외유내강이어야 한다. 외적으론 두렵고 무서워 꽁꽁 싸매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네 남매중 제일 강할 수 있다. 헤르만을 찾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나 괜찮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어. 다 내려 놓았어'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 없다. 처음에는 연약하고 유리처럼 깨질 것 같은 소녀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하다 보니 누구보다 강해야 하더라."
그렇다면 상대 배우들과는 어땠을까. 특히 메리를 제외한 네 남매 사이에선 홍일점이다 보니 신경 쓸 부분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헤르만과의 케미스트리는 특히 더 신경 쓰인다. 그는 "도대체 두 사람의 사이는 뭐냐고 애매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은데 두 사람의 관계는 요즘 말로 썸 타는 느낌이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은 안돼. 딱 썸만 타야돼. 그 이상도 안되고 보이지 않아서도 안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 중간 지점을 찾는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헤르만과 어린 시절 더 아이컨텍을 하고 터치를 하면서 꽁냥꽁냥하는 느낌을 주려 한다. 어떻게 보면 누나같이 태연하게 해야 한다. (서)경수 빼고는 오빠들인데 케미도 참 다 다르다. 세 명이다 보니 느끼는 지점들도 다르고 더 새롭게 느껴진다. 안나와 헤르만 역시 자신들의 감정을 잘 모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좋고 챙겨주고 싶은 어린 아이들의 사랑같다."
▲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다"
사실 강연정은 '블랙메리포핀스' 연습 초반 슬럼프, 혹은 터닝포인트의 시기를 겪었다. 그는 "연습 초반이 진짜 힘들었다. 작품이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내겐 도전적인 캐릭터였고, 부족함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압박도 많았다"며 "어떤 작품이든 그 안에선 고충이 있지만 그래도 그동안 행복한 작품을 해온 것 같다. 근데 '블랙메리포핀스'에서는 총체적난국이었다. 극 자체도 힘든데 노래 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으니 연기 하면서도 참 힘들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안나가 헤르만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사람들이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그럴 때면 숨이 꽉꽉 막혀서 단추를 풀어헤치고 거리로 뛰쳐 나가 소리 치고 싶어. 날 좀 그만 쳐다보라고'라는 대사가 정말 와닿았다. 안나의 답답한 마음이 내 배우 생활에 있어 당시 심정과 같아 대사할 때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시간이 지나니 점점 안나가 내게 들어오면서 내가 힘들었던 것도 채워져간 것 같다. 힘들 때는 어쩔 수 없다. 사람인지라 추스린다고 해도 완벽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매일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면서 하고 있다. 무대에서 상대 배우 눈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울컥할 때가 있는데 흥분하지 않고 참기 위해 노력한다. 너무 넘치게만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신기한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전체가 보이더라. 합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졌다."
'블랙메리포핀스'는 강연정에게 배우로서 참 많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제 배우 6년차가 된 그녀에게 꼭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예체능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섰고, 차근차근 배우로서의 내실을 다지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강연정은 "어떤 작품을 하든지 제일 큰건 그거다. 저를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배역에 상관 없이 기억에 남길 바란다"며 "사실 예전부터 변함 없는건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라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어야 그게 무대에서 나온다. 그게 전부 다 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좋은 사람, 좋은 배우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저 배우 되게 기억에도 남고 인간성도 좋은,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러려면 연기적인부분도 키우고 임팩트를 쌓아야 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블랙메리포핀스'는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다. 강연정의 다른 면을 찾을 수 있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작품이다. 캐릭터적으로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끌고 가는 감정선들이 지금 시기에 내게 중요한 것 같다. 더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한편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오는 8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배우 강연정,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공연 이미지컷. 사진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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