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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일본 지바 강산 기자] 일본프로야구(NPB)에서 응원 열기가 가장 뜨거운 구단은 다름아닌 지바 롯데 마린스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모기업, 마스코트, 홈 유니폼의 핀스트라이프 패턴이 같다는 공통점이 있고, 홈경기가 열릴 때면 야구장이 '노래방'이 되는 것까지 참 많이 닮았다.
그런데, 지바 롯데의 응원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특색 있는 응원임이 분명하다. 바로 우익수 바로 뒤편에 자리 잡은 홈팬들이 경기 내내 제자리뛰기 응원을 펼친다는 점.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오승환(한신 타이거즈)이 지바 롯데와 맞대결을 펼칠 때 TV 중계 화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징그럽다', '경기 끝나면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일본 야구 전문가들은 너나할 것 없이 "팬 숫자와 관계없이 지바 롯데 팬들의 응원 열기가 가장 뜨겁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지바 롯데의 명물인 '점핑 응원', 기자가 직접 한 번 해봤다.
응원석에 자리 잡은 순간 하나가 된다
지바 롯데와 이대호의 소속팀 소프트뱅크의 경기가 열린 15일 일본 지바현 QVC마린필드. 기자는 표를 사서 외야 관중석으로 향했다. 경기 시작 시각인 오후 6시 15분까지 약 40여분 남은 상황, 전반기 최종전을 직접 보려는 많은 팬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경기 전 볶음 국수, 카레, 유부초밥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공식 팬클럽인 'TEAM 26' 관계자들은 관악기를 점검하고, 응원가 가사가 적힌 카드를 전달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반면 좌익수 뒤편에 위치한 소프트뱅크 원정 팬들은 그야말로 소수정예.
기자가 자리를 잡고 앉자 지바 롯데 유니폼을 착용한 팬 네모토 가즈마사, 마나부 히로키 씨가 근처에 착석했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한 탓에 '바디 랭귀지'와 영어를 섞어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네모토 씨가 "한국에서 왔느냐, 이승엽(삼성)과 김태균(한화)이 뛸 때도 경기장을 찾아 자주 응원했다"며 "이토 쓰토무 현 감독도 2년 전에 두산에 있었던 걸 알고 있다"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바 롯데의 응원을 체험하고자 왔다"는 기자의 말에 흔쾌히 응원용 깃발을 넘겨줬다.
이승엽은 2004부터 2005년까지, 김태균은 2010년부터 2011년 중반까지 지바 롯데에서 뛰었다. 당시 팬들은 한국어로 '날려버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안타를 바라는 구호인 '히토(Hit)' 대신 한국말로 '안타'를 외쳤다. 특히 김태균이 한화에서 쓰던 응원가에 율동까지 그대로 따라 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라인업 소개 방식은 한국과 차이가 있다. 한국은 경기 시작 50여분 전에 전체 라인업이 공개된다. 반면 일본은 장내 아나운서가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한 명씩 차례로 발표한다. 누가 어느 타순에 배치되는지도 이 때 알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예상대로 이대호가 4번 타자로 나섰고, 지바 롯데는 '전직 메이저리거' 이구치 다다히토가 나섰다. 2번 타자 자리에 올 시즌 부진한 호소야 케이(시즌 타율 0.219)가 호명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응원 패턴은 앰프 대신 관악기를 쓴다는 점만 빼면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선수 이름을 연호하는 것과 응원가를 부르는 것, 그리고 안타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까지 매우 익숙한 패턴이다. 일본프로야구는 트럼펫으로 응원가를 연주하는 게 일반적인데, 지바 롯데가 상대 팀 응원단을 압도하는 건 팬들의 합창과 현란한 몸동작이다. 전주를 제외하면 관악기 없이 응원가만 부르기도 한다.
같은 제자리뛰기, 하지만 상황마다 강도가 다르다
'점핑 응원'은 특정 선수의 응원가가 나오거나 역전, 혹은 결승타 타이밍에 절정에 달한다. 이날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 중 호소야와 이구치를 비롯해 이마에 도시아키, 오무라 사부로, 루이스 크루즈가 나올 때 팬들은 노래를 부르며 뛰기를 반복했고, 0-1로 뒤진 4회말 1사 1루서 이구치의 동점 2루타가 터져 추가 득점 기회를 잡자 제자리뛰기는 공격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곧이어 5번 사부로의 안타로 1, 3루가 됐으나 6번타자 채드 허프먼은 삼진으로 물러났고, 스타트를 끊은 사부로마저 2루에서 아웃돼 추가 득점 기회가 무산됐다. 계속된 움직임에 지쳤는지 팬들은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기자도 다리에 힘이 풀렸고, 온 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체감상 트랙 800m를 돈 것과 진배없었다. 네모토 씨는 "허프먼이 7구 승부를 펼친 탓에 평소보다 많이 뛰었다"며 웃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응원단 관계자가 동점타를 친 이구치를 연호하라는 사인을 보낸다. 팬들이 이구치를 연호하자 그는 모자를 벗고 90도 인사를 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NPB에서는 공수교대 시 직전 공격에서 홈런 포함 적시타를 친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데, '커튼콜'을 받은 선수는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거나 손을 흔들어 답례한다. 그리고 팬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한다. 경기 중에 자주 볼 수 있는 선수와 팬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프랜차이즈 스타 후쿠우라 등장, 분위기는 절정
지바 롯데는 2-3으로 뒤진 9회말 선두타자 이구치가 삼진, 오마츠 쇼이치가 파울플라이로 잇따라 물러나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허프먼이 투수 앞 강습 안타를 때린 뒤 상대 악송구를 더해 2루에 안착했다. 이토 감독은 크루즈 대신 베테랑 후쿠우라 가즈야를 대타로 내세웠다. 이승엽이 지바 롯데 입단 당시 주전 1루수 경쟁을 펼쳤던 그 후쿠우라다.
팬들은 어마어마한 박수와 함성을 보냈고, 곧바로 제자리뛰기를 하며 '오레타치노 후쿠우라~치바노 호코리무네니(우리들의 후쿠우라~지바의 자랑을 가슴에 담아)'라는 응원가를 불렀다. 연고지인 지바현 출신으로 프로 입단 당시부터 한국 나이 40세가 된 지금까지 한 팀에서만 뛰고 있는 후쿠우라에 대한 팬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현재 통산 1848안타를 친 그는 2000안타에 152개를 남겨두고 있다.
후쿠우라는 팬들의 응원에 제대로 응답했다. 깨끗한 좌전 동점 적시타로 2루 대주자 오카다 요시후미를 홈에 불러들였다. 마무리투수 데니스 사파테만 믿고 있던 소프트뱅크 팬들은 망연자실. 반면 지바 롯데 응원석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일사불란하게 응원하던 팬들은 경기를 지켜보던 기자를 끌어안고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팬들도 눈에 띄었다. 팀을 대표하는 베테랑 선수가 9회말 대타 동점타를 때렸을 때, 팬들이 느끼는 감동은 설명이 필요 없다.
결국 양 팀은 연장에 돌입했고, 지바 롯데 팬들의 '점핑 응원'도 계속됐다. 12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아 최소 패배를 면하자 12회말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제자리뛰기 응원만 펼쳤다. 응원단 관계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팬들을 한가운데로 끌어모았다. 응원석 맨 앞줄에 자리한 팬들은 철망을 부여잡고 뛰기도 했다. 2사 만루 끝내기 기회에서 이구치가 삼진으로 물러나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다.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격려했다. "내일 이기자"는 말과 함께.
결국 체력 고갈
일단 경기는 끝났다. 그런데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물 대신 땀으로 옷을 세탁했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이걸 왜 했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무엇보다 경기장에서 숙소까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다이어트 효과'를 생각하니 다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네모토, 마나부, 그리고 경기 중반 합류한 이케우치 유리에(27, 여) 씨는 "지바 롯데 팬들은 성적에 상관없이 오늘처럼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뛴다"고 위로하며 기자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넸다. 이케우치 씨는 "이승엽과 김태균 둘 다 한국에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들었다. 요즘 어떠냐"며 근황을 묻기도 했다. 오기노 다카시의 팬이라는 이케우치 씨는 고교 시절부터 도쿄 시나가와에서 지바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를 오가며 지바 롯데를 응원했단다.
경기 내내 제자리뛰기 응원을 펼치는 거의 유일한 팀인 지바 롯데의 응원 체험.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응원가와 간단한 율동을 곁들인 한국과 일본의 응원 문화는 이미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지바 롯데의 '점핑 응원'은 뭔가 달랐다. 기자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실제 체험해보니 팬들은 중계방송을 통해 보던 것 이상으로 열정적이었다. 팀 승리를 위한 에너지 소비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응원 문화를 9이닝이 아닌, 12이닝 동안 체험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체력 고갈은 피할 수 없었다.
한편 지바 롯데는 다음날(16일) 소프트뱅크와의 전반기 최종전서 후루야 다쿠야의 완봉투와 후쿠우라, 오카다의 3안타 맹타를 앞세워 13-0 대승을 거뒀다. 3연전을 2승 1무로 장식한 지바 롯데는 세이부 라이온즈를 제치고 퍼시픽리그 4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또한 18일 열린 2군 올스타전인 '프레쉬 올스타 게임'에서는 개막전 4번타자였던 이노우에 세이야가 홈런 2방 포함 4타수 3안타 맹타로 MVP를 차지해 후반기를 기대케 했다. 전반기 막판 좋은 소식들이 후반기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바 롯데 팬들이 연장 12회말 제자리뛰기 응원을 펼치고 있다(첫 번째 사진), 지바 롯데 팬 네모토 가즈마사(오른쪽), 마나부 히로키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2번째 사진), 소프트뱅크 원정 팬들이 응원을 준비하고 있다(3번째 사진), 지바 롯데 후쿠우라 가즈야가 9회말 동점타를 터트리자 팬들이 그의 현수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4번째 사진), 지바 롯데 팬들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사진 = 일본 지바 강산 기자]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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