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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의 도전은 끝이 없다지만 이 배우의 도전은 확실히 놀랍다. 드라마 및 영화에서 활약하는 시간도 모자라 다소 늦은 나이에 뮤지컬 첫 도전이라니. 뿐만 아니다. 무대 위에서 여장을 하고 나타난다. 이를 넘어 트렌스젠더, 결국 내면은 여자로 분한다. 올해 나이 만 47세 배우 조성하가 말이다.
조성하는 1996년 영화 '인샬라'로 데뷔한 뒤 2014년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다. 그의 첫 뮤지컬 '프리실라'는 여장남자 '드랙퀸(Drag Queen)'의 이야기를 80~90년대의 히트팝 뮤직을 배경으로 신나는 무대로 선보인다. 톱스타들의 신나는 변신과 360도 회전을 하는 8.5톤의 대형 LED 버스 세트가 선사하는 눈부신 볼거리로 눈과 마음을 휘젓는 작품이다.
조성하는 극중 지금은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에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스타 버나뎃 역을 맡았다. 배우자를 잃고 상실감에 빠졌지만 특유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슬픔은 털어내고 긴 여정을 함께 하는 틱과 아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만난 조성하는 버나뎃 역에 흠뻑 빠져 있었다. 잔망스러운 표정은 무대 위와 똑같았고, 다리를 오므리고 앉는가 하면 손가락을 이리 저리 튕기며 영락없는 버나뎃의 모습으로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나도 깜짝 깜짝 놀란다"고 입을 열었다.
▲ "뮤지컬 도전, 처음엔 망설여 도망 다녔다"
"아주 잘 녹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조성하에게 버나뎃은 일부가 돼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도전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처음 2개월은 도망 다녔다. 막내까지도 다 선수들이고 대단한 분들이 모인 곳에서 나는 실력도 안 좋고 준비도 안된 사람이니 많이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 몸에 구겨 넣으려니 힘들더라. 여자라는 역할을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보다가 여자를 이입시키다 보니 한 번에 안들어갔다. 일부러 구겨 넣으면 거짓말 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이 안다. 척만 하는거면 짜증나지 않겠나"라며 "지금은 진짜로 여자처럼 보인다고 한다. 우아해 보이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앙증맞아 보이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나야 하니까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두세시간씩 자며 최선을 다했다. 방송을 시작한지 10년 다 돼가는데 그 이후로 쉴틈 없이 계속 바빴다. 혼자 여행도 못 가봐서 '왕가네 식구들' 이후엔 산속에 들어가서 좀 쉬고 싶었다. 근데 어떻게 또 이 작품을 만났다. 작품이 너무 재미있고 유쾌하다. 신나고 힐링이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왕 하는 거 관객들과 같이 한 번 놀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노는 타임으로 정한 게 '프리실라'다."
즐기고자 시작한 첫 뮤지컬에서 조성하는 치밀한 완벽성을 느꼈다. 누가 봐도 즐거울 수 있는 작품에서 본인 역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조성하는 "사실 춤과 노래는 24시간 내내 부담이었다. 연습하는 한달 반동안 머릿속은 계속 7.5 이상의 지진이 멈추질 않았다. 쓰나미도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며 "어찌 됐든 무대에 잘 올려서 많은 분들이 그나마 많이 재미있게 봐주시니까 너무 감사하다. 이제 조금 발 좀 뻗고 자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딸들도 너무 좋아한다. 몇 번 공연을 봤는데 매일 오고 싶다고 한다. 딸이 연기과인데 잠도 안 자고 노력하는 아빠, 무대 위 새로운 아빠를 보며 도전 정신을 크게 인정해주지 않나 싶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내와 친척들, 지인들도 와서 보고는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버나뎃은 어떨 때는 엄마 같기도 하고 누나 같기도 하고 사랑스런 여자 같기도 하다. 더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존재하지만 여자의 모습을 골고루 다 갖췄다."
▲ "여자 버나뎃, 트렌스젠더들 일부러 안 만났다"
조성하는 이제 여자 버나뎃을 온전히 받아들였지만 사실 남자 배우들에게 여장은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트렌스젠더라니. 겉모습부터 내면까지 그 인물이 되어야만 관객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에 조성하는 "여자다 보니 준비할 게 많았다. 연습할 때도 하이힐을 신고 공연할 때도 코르셋을 입고 생활하는 역할이니 좀 더 일찍 준비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일 일찍 와서 풀 메이크업을 해놓고 인물에 이입한다. 아무래도 남자답게 살다가 공연장에선 여자가 돼야 하니까 빨리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 미리 분장을 하고 있는다"며 "자꾸 시간이 가야 여자가 되니까 남들보다 더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게 공연을 시작하면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느낌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배우 인생을 살면서 진짜 이런 신나는 작품을 만나는 게 몇 작품 안 될 것이다. 300% 이상 만족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여장한 모습을 보니까 예뻐~"라고 능청스럽게 말한 조성하는 "내가 여성틱한 모습이 전혀 없는 얼굴이지 않나. 완전 남자인데 그나마 분장했을 때 흉해 보이지 않고 예쁨 받을 수 있는 여자로 보여질 수 있다는게 감사하다"며 "고영빈, 김다현이 많이 도와줬는데 우리 셋 버나뎃 중 내가 가장 여성스럽다. 나이가 있으니 인생을 살아온 구력이 더 있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성하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그는 "제일 어려운 게 그거다. 여자만 하거나 트렌스젠더만 하면 또 다른 문제인데 여자여야 되고 트렌스젠더이지 않나. 사람들이 볼 때 트렌스젠더로 보이면 안된다"며 "'저 사람은 진짜 여자구나', '태어나기를 잘못했지 천생 여자다. 여자여야만 한다. 여자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해를 구할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 단순히 유쾌하고 재미있고 웃음 폭발하는 작품이지만 인물이 갖고 있는 숙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정말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트렌스젠더들을 일부러 안 만났다. 다른 분들은 트랜스젠더 쇼 하는 것도 구경 가고 대화도 나누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트렌스젠더를 만나 트렌스젠더를 흉내내는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트렌스젠더는 저렇게 하더라' 하는 답은 없다. 다 스타일이 다른 것이다. 제일 중요한건 뭐냐. 버나뎃의 가장 큰 바람은 그냥 여자인 것이다. 그냥 아름다운 여자이고 싶고 예쁜 여자이고 싶고 귀여운 여자이고 싶다. 그게 여자로 승화가 된 모습이 나오면 되는 거지 트렌스젠더이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결국 이 사람의 인생 목표는 여자인데 트렌스젠더가 중요한건 아니다. 여자로서 사랑 받아야 한다. 그래서 더 디테일을 신경 썼다."
▲ "조성하에게 '프리실라'란 내 안에 여성성"
조성하는 버나뎃, 나아가 '프리실라'라는 작품이 주는 의미를 단순하면서도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배우 인생에 있어서도 '프리실라'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도전도 그렇다. 그는 "조성하라는 배우는 캐릭터 변신이 대체 어디까지 가야 되는 거야. 어떻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내가 계속 안해본 역할만 하는 거지? 내가 자신 없는 것 내지는 생각도 안해본 것 숙제가 계속 들어온다"고 운을 뗐다.
그는 "'프리실라'도 그렇다. 도전이다. 근데 버나뎃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이지만 도전 치고는 괜찮은 도전이 아니었나 한다"며 "뮤지컬은 '프리실라'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준비된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다. 이왕이면 좀 더 전문화된 사람이 전문화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만족하는데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많다. 다음 행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신다. '프리실라' 하고나서 아줌마 역할만 들어오는 것 아니야? 대왕대비 이런 것 들어오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나는 여배우들에게 욕은 먹겠지만 영역은 확장이 되겠구나. 역시 사람은 전략이 필요해.(웃음) 근데 나는 배우니까 하나에 딱 굳어지는 것 자체를 경계할 뿐이지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다가오는건 적극 힘을 다해 열심히 변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이를 보는 일부 편견은 없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조성하는 "공연을 보기 전에 고민을 하실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그런 문제가 대두되진 않는다. 문제점으로 제기해 보여드리지도 않는다. 그냥 사람의 이야기다. 그냥 친구들끼리 우정, 여행을 통해 일어나는 에피소드, 부성애 등이 부각되는 이야기다. 고민이나 걱정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소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은 볼거리로 표현하니 이 작품을 시작한 거다. 나는 살면서 트렌스젠더도 못 만난 사람이고 동성애자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근데 그걸 대변해주거나 어필하거나 선두할 자격도 없고 할 의미도 사실 못 느낀다. 그냥 내 주변에 '아 그런 사람이 있구나' 인정할 뿐이지 내가 그것을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 작품은 그 사람들의 모양새로 출발을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걸 정확하게 말씀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조성하는 버나뎃을 연기하며 깨달은 것들을 나열했다. 그는 "여자들이 삶이 녹록치 않다는 걸 느꼈다. 참 대단한 것 같다. 여배우도 더 존경하게 됐다"며 "또 진실성에 대해 생각했다. 무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관객과 함께 하니 관객을 속일 수 없는 순수한 마당이다. 관객을 속일 수 없는 아주 순수한 마당이다. 일단 진실성이 결여 되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공간이다. 관객의 호흡이 느껴질 때 배우는 가장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조성하에게 '프리실라'란 내 안에 여성성이다. 여자를 더 사랑하게 된 작품 아닌가 한다. 그동안 그냥 중년의 아저씨로서 나 스스로를 보기도 바빴는데 내 주변에 그렇게 많은 여성분들이 있음에도 불구 이제 더 새롭게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모든 것을 좀 더 주의 깊게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정말 신난다. 이 작품은 역시 하길 잘했다. 끝날 때까지 관객과 함께 신나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에는 관객들이 일어나 춤도 추고 같이 호흡해 주니 참 행복한 작품이다"
한편 뮤지컬 '프리실라'는 오는 9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배우 조성하. 사진 = 설앤컴퍼니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DB]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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