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모비스? 개막전 상대도 몰라.”
지난달 31일 잠실학생체육관. 남자농구대표팀 마지막 공식 평가전을 앞둔 유재학 감독은 소속팀 모비스 얘기가 나오자 고개부터 내저었다. 유 감독은 심지어 “모비스는 관심도 없어”라고 농담을 던졌다. 유 감독과 여자대표팀 위성우 감독은 현재 소속팀(모비스, 우리은행)과 대표팀을 겸임한다. 유 감독과 위 감독 모두 강행군이다. 두 사령탑 모두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워낙 높아 잡음은 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체제는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대표팀과 프로팀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표팀과 프로팀 모두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게 쉽지 않다. 유 감독과 위 감독 모두 사실상 소속팀 운영에선 손을 뗀 상태다. 두 사령탑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부터 올해 아시안게임까지 대표팀과 계약했다. 프로팀-대표팀 겸임 감독이지만, 2년 계약으로 전임감독 성격도 포함됐다. 이중 부담을 떠안은 상태다.
▲ 대표팀 전임제-겸임제 딜레마
유 감독은 대표팀 전임제 얘기가 나오자 “다 알면서”라며 씩 웃었다. 당연하다는 반응.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선 당연히 감독 전임제가 필요하다. 축구, 배구는 이미 전임제가 정착됐다. 농구는 국제대회가 많지 않은 야구와 함께 농구협회의 예산, 적은 A매치 기회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전임제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
한국농구가 전임 감독을 도입한 전례도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농구 최종예선 당시 김남기 감독-김유택 코치를 전임 코칭스태프로 기용했다. 당시 대표팀은 김 감독의 분명한 컨셉과 지도력으로 선전했다. 슬로베니아와 캐나다에 패배했으나 내용상 크게 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유의미한 시도가 1회성으로 그쳤다는 점. 당시 김 감독이 2009년 오리온스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대표팀 전임감독 논의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김 감독이 오리온스로 자리를 옮긴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비용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김 감독은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1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팀에선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농구협회 예산을 감안하면 전임감독에게 그 이상 연봉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은 게 중론. 비슷한 이유로 대표팀의 A매치와 국제대회 참가도 원활하지 않은 형편이다. 인기가 떨어지는 한국농구에 중국, 일본처럼 거대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농구협회가 전임감독 도입에 소극적인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두집 살림을 하는 유 감독과 위 감독의 피로는 크다. 두 감독은 두 시즌 연속 비 시즌에 소속팀을 돌보지 못했다. 유 감독은 외국인선수(로드 벤슨,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모두 재계약했지만, 2년 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당시 이상범 감독(현 코치)은 외국인선수 선발에 관여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 감독은 결국 지난 봄 KGC서 경질됐다. 위 감독 역시 단 1개월 주어진 지난 7월 소속팀 훈련 때 우리은행을 오래 돌보지 못한 채 뒤늦게 미국에 날아가 외국인선수들을 살펴봤다. 그나마 위 감독은 아시안게임 이후 여자프로농구 개막(11월초)까지 1개월 가량 우리은행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나 유 감독은 아시안게임 이후 곧바로 모비스서 시즌에 돌입한다. 프로농구 개막은 10월 11일.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불과 1주일 뒤다.
▲ 해답은 전임제
최근 한 농구관계자는 “이번 뉴질랜드 잠실 평가전을 봐라. 우리도 준비만 철저하게 하고 투자를 하면 경기력도 세계 수준급팀에 비해 아주 많이 뒤처지는 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A매치 추진도 결국 농구계의 철저한 준비와 노력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나아가 “대표팀에 드는 예산을 KBL과 구단들이 좀 더 부담하면 대표팀 운영 사정이 좋아질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현재 남자대표팀 운영비는 KBL이 대한농구협회와 공동 부담한다. 그래도 대표팀 운영 주체는 대한농구협회. 농구협회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 관계자의 말처럼 KBL과 구단들이 좀 더 비용을 보태서라도 대표팀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 대표팀 운영 활성화 없이는 국제경쟁력 강화도 없다. 여자대표팀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프로 단체가 대한농구협회와 합심해 해외 전지훈련, A매치, 국제대회 참가 등을 정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중국, 일본은 이미 이런 시스템이 정착됐다. 유 감독도 “A매치는 꼭 정례화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농구계가 마련해야 할 예산과 비용도 늘어난다. 그리고 대표팀 감독이 이끌어야 하는 경기도 많아진다. KBL과 WKBL, 구단들이 농구협회를 도와주면 전임감독 체제 속에서 한국농구 국제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 당장 축구처럼 거대 스폰서 유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2년에 한번 치르는 아시아선수권대회, 4년에 한번 치르는 아시안게임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전임감독은 필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국제경쟁력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증명됐다. 대표팀이 치를 대회가 많지 않다고 해서 전임감독이 필요 없다는 논리는 잘못됐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프로단체들과 프로팀들이 대표팀 운영에 무조건적으로 희생할 이유도 없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대표팀 겸임제보단 전임제가 장기적으로 한국농구에 미치는 좋은 효과가 훨씬 더 크다. 대표팀 운영에 헌신적으로 나설 농구인들은 여전히 많다. 2008년 남자대표팀 전임감독 공개모집 당시 지원자는 무려 6명이었다. 이젠 농구계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번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남녀대표팀 전임감독제 도입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유재학 감독(위), 남자대표팀(가운데), 여자대표팀 코칭스태프(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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