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자연스럽게 하는 게 좋지 않나요?”
LG 양상문 감독은 4일 잠실 넥센전을 앞두고 “합의판정에 실패해도 애매한 상황이 나오면 계속 요청할 것이다. 합의판정 결과가 생각대로 되지 않았지만, 부끄럽진 않다”라고 말했다. LG는 4일 경기 전까지 합의판정을 세 차례 요청해 단 한 차례도 의도한대로 판정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결정적 순간에 합의판정을 요청해 판정번복을 이끌어냈다.
양 감독의 합의판정 요청은 LG가 4-3으로 앞선 5회말 1사 2,3루 공격상황서 발생했다. 채은성이 2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날렸다. 뜬공이라 주자들의 스타트가 당연히 늦었다. 그래도 야수 실책이 겹치면서 3루주자는 여유있게 득점했다. 문제는 2루주자. 이병규(7번)가 재빨리 3루를 돌아 홈으로 쇄도했다. 넥센 중계진은 포수 박동원에게 공을 전달했다. 약간 높은 송구를 받은 박동원은 밴트 레그 슬라이딩을 시도한 이병규에게 곧바로 태그를 시도했다. 심판 최초판정은 태그아웃. 하지만, 중계방송사 KBS N스포츠가 제작한 느린 그림에 따르면 박동원의 태그 직전에 이병규가 손으로 절묘하게 홈 플레이트를 찍었다. 결국 합의판정 결과 아웃이 세이프로 번복됐다. LG는 5-3이 아닌 6-3으로 달아나면서 승기를 확실하게 잡았다.
▲ 30초룰 논란
합의판정은 이닝 도중엔 30초 안에 신청해야 한다. 30초가 넘어가면 합의판정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다수 감독은 이 제도에 반감을 드러냈다. 합의판정 요청 여부를 판단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더구나 일부 스포츠케이블 방송사가 애매한 장면을 곧바로 리플레이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불만을 가졌다. 리플레이를 통해 애매한 장면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할 경우 합의판정 성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합의판정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는 이론.
대부분 감독은 합의판정 요청을 할 때 잠시 고민한다. 일부 감독들은 덕아웃에서 가까운 장소 혹은 감독실에서 중계방송 리플레이 모니터를 하는 직원의 시그널을 받아 합의판정 요청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그런데 막상 이 작업을 30초만에 끝내는 게 쉽지 않았다. 때문에 일각에선 30초룰을 폐지해 감독이 합의판정요청 여부를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해가 간다. 감독 입장에선 합의판정으로 경기흐름을 유리하게 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더구나 최초 합의판정 요청 결과가 실패할 경우 두번째 기회가 박탈된다는 것도 감독들에겐 매우 큰 부담이다. 합의판정 타이망을 놓칠 경우 경기 흐름도 함께 넘겨줄 수 있다. 결국 30초룰이 있는 한 감독이 합의판정 요청에 소극적일 수 있다. 합의판정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양상문 감독 합의판정 소신
양 감독은 이날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자 곧바로 그라운드로 나가서 심판에게 합의판정을 요청했다. 방송사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양 감독은 “리플레이를 확인하고 합의판정을 요청하기엔 30초가 너무 짧다”고 했다. 여기까진 다른 감독과 비슷한 생각. 그런데 양 감독은 자신의 감각대로 합의판정을 요청한 뒤 결과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스타일. 양 감독은 “앞으로도 합의판정 결과에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LG와 양 감독은 4일 경기서 처음으로 합의판정으로 재미를 봤다. 짚고 넘어갈 건 양 감독이 합의판정을 요청한 뒤 심판들과 진지하게 대화했다는 점이다. 양 감독은 "그동안 코칭스태프가 심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합의판정 요청 성공을 떠나서 합의판정 자체가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시킨 것 같다”라고 웃었다.
합의판정이 도입된 기본배경은 육안으로 구분될 정도의 확연한 오심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굳이 방송사 리플레이 화면과 선수단 수신호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감독과 수석코치 정도의 간단한 의사소통만으로도 합의판정요청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럴 경우 30초라는 시간은 충분하다는 게 양 감독 생각이다.
어차피 매우 애매한 상황은 방송사 리플레이 화면을 봐도 정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합의판정이 도입됐지만, 어차피 야구에서 오심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다. 만약 30초룰이 폐지돼 벤치가 애매한 상황까지 방송사 리플레이를 통해 미리 판단한 뒤 합의판정을 요청할 경우 경기시간이 늘어질 수 있다. 또한,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방송사가 벤치를 위해 애매한 상황을 리플레이로 신속하게 보여줄 의무도 없다. 그래서 양 감독은 “일일이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한 뒤 어필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닌 것 같다”라고 했다. 양 감독이 합의판정 30초룰 유지에 찬성하는 이유다.
양 감독은 “애매한 상황에선 합의판정을 곧바로 요청하고 기다리겠다”라고 했다. 사실 야구계 전체적으로는 합의판정 성공률보다 합의판정제도를 시행하면서 오심이 줄어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심판과 감독, 팬들이 합의판정을 통해 판정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양 감독이 “합의판정은 자연스러운 게 좋다.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 깊은 뜻이 담겨있다.
[양상문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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