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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여름이면 우리는 으레 섬뜩한 귀신 이야기로 더위를 잠시 잊곤 한다. 각종 괴담과 어느 누군가의 실제 경험담 등이 주요 단골소재다. 영화나 드라마도 여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공포물을 쏟아낸다. 언제부턴가 여름에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가 됐다. 너도나도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4일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도 공포특집으로 꾸며졌다. 게시판에 올라온 다양한 사연 중 특별히 무서운 고민들이 선정돼 전파를 탔다. 무대 역시 평소와 달리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고안됐고, 방송 중간 귀신 분장을 한 연기자들이 등장해 공포특집다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등장한 사연 중 친구가 자꾸 손톱을 뜯고 긁어 고민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얼핏 들어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사연이었다.
사연인 즉, 친구가 주인공이 자는 사이 손톱을 긁고 파 이제는 남은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주인공의 손톱은 이미 다 닳고 빠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피까지 흥건했다. MC들도, 이날 출연한 게스트들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 친구가 그런 황당한 짓을 계속하는지 궁금증은 증폭됐다. 그래서 그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는 “왜 주인공의 손톱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냐?”는 물음에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친구는 주인공이 자꾸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 이를 고쳐주고자 엄지손톱에 고문에 가까운 행위를 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버릇이 고쳐졌느냐?”는 질문에 “소용이 없었다”고 답했지만, 정작 주인공은 “나는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다 고쳤다”고 밝혔다. 결국 거듭된 MC들의 답변 요구에 친구는 “처음에는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버릇이 된 것 같다. 장난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송 말미, 친구는 “이제 주인공의 엄지를 가만 두겠냐?”는 말에 “노력하겠다”는 두루뭉실한 답변으로 다시 한 번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장난으로 시작해 버릇이 됐다는 말. 요즘 같은 시기에 이보다 무서운 말은 없다.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학교 폭력. 가해자들 대부분이 “장난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 장난으로 숱한 학생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또 스마트 폰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의 가해자들 역시 그저 ‘장난으로’ 친구에게 욕을 하고 놀렸다. 최근 발생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윤일병 사망 사건’의 경우 폭력의 대물림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미 폭력이 습관이 되어버린 가해자들이 나중에는 그저 ‘장난’으로 윤 일병을 괴롭히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안녕하세요’는 현실에서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공포를 선사하며 특집의 의미를 되새겼다. 누군가의 장난이 상대방(피해자)에게는 공포 그 자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습관이 돼 이제는 나도 그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주인공의 친구가 무섭게 보인 것은 비단 기자 뿐이었을까. 이날 ‘안녕하세요’ 공포특집은 그래서 그 어떤 귀신이야기보다도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KBS 2TV '안녕하세요' 공포특집에 등장한 손톱 귀신 사연의 주인공들. 사진 = KBS 방송 화면 캡처]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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