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월드컵은 아시안게임에 대비하는 대회가 아니다.”
지난 몇 개월간 농구계엔 나쁜 인식 한 가지가 있었다. 30일부터 개막하는 스페인 월드컵을 9월 19일부터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대비하는 성격으로 치르자는 것. 그 속엔 ‘어차피 월드컵에선 1승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대신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더 집중하는 게 맞다’라는 위험한 명제가 들어있다. 이는 결국 ‘월드컵에선 살살 해도 되겠네’라는 느슨한 마인드로 이어졌다.
월드컵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시안게임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낮다. 결과를 떠나서, 한국이 추구하는 농구를 월드컵서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그게 국제무대에 도전하는 바람직한 마인드이자 한국농구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다. 유재학 감독도 지난 19일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결단식서 “월드컵은 아시안게임에 대비하는 대회가 아니다. 평가전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1승, 아니 2승을 챙기고 돌아오겠다”라고 했다. 사령탑이 굳건한 의지를 다지면서, 선수들 역시 월드컵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이뤄졌다. 이 문제는 현 시점에선 사실상 해결됐다. 대표팀은 25일 밤 인천공항을 통해 스페인으로 출국했다.
▲ 뚝 떨어진 실전감각
한창 좋았던 뉴질랜드와의 홈 평가전 경기력. 스페인에서 재현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5월 19일부터 합숙훈련을 시작한 대표팀은 7월 12일부터 20일까지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치렀다. 세 차례 평가전서 1승2패를 거뒀다. 그리고 25일과 27일 대만, 29일과 31일 뉴질랜드와 홈 평가전을 치렀다. 대표팀 경기력은 뉴질랜드와의 세 차례 원정평가전서 달랐고, 대만과 뉴질랜드와의 홈 평가전을 치르면서 또 달랐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유 감독이 강조한 풀코트 프레스, 하프코트 프레스로 대변되는 압박수비와 철저하게 스크린을 이용하는 외곽포의 날카로움이 극대화됐다.
그러나 지난 19일 월드컵 출정식 이후 치른 삼성과의 최종 평가전서 드러난 대표팀 경기력은 엉망이었다.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 보였다. 약속된 움직임으로 구축한 수비조직력은 좋았다. 하지만, 공격이 원활하지 않았다. 시원스러운 속공도, 스크린과 조직적 움직임에 의한 외곽포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KBL 중, 하위권 수준의 삼성을 상대로 단 75득점에 그쳤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이상범 코치는 “뉴질랜드 평가전 이후 처음으로 치른 실전이었다. 그 좋았던 경기감각이 뚝 떨어졌다. 예상된 결과”라고 했다. 대표팀은 31일 뉴질랜드와의 마지막 공식 평가전 직후 진천에서 자체 연습만 했다. 무려 19일만에 실전경기를 치렀다. 물론 그 사이 자체 청백전을 가졌지만, 긴장감은 떨어졌다. 이 코치는 “자체 5대5 게임은 서로 움직임의 특성을 알고 하는 것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수비수가 일부러 길을 열어줄 수 있다”라고 했다. 연습효과는 당연히 떨어졌다. 삼성전서 보여준 최악의 경기력은 예상된 일이었다. 뉴질랜드 홈 평가전 이후 확실한 스파링파트너를 찾지 못한 대한농구협회와 KBL의 무능한 행정이 핵심이다.
▲ 스페인 월드컵, 우려되는 이유
앙골라와의 스페인 월드컵 D조 예선 첫 경기는 30일. 문제는 삼성과의 마지막 연습경기 이후 30일 첫 경기까지 단 1경기도 실전경기가 없다는 점. 이미 19일 삼성과의 마지막 연습경기서 뚝 떨어진 실전감각의 폐단을 확실하게 경험했다. 그런데 그 상황서 또 다시 열흘간 실전 평가전 없이 자체 연습만으로 월드컵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경기력이 앙골라와의 첫 경기서 나올 것인지 미지수다. 현 시점에선 매우 우려된다.
앙골라는 한국의 현실적인 1승 상대다. 이후 맞붙을 호주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멕시코 모두 한국과 비교 불가능한 강호들이다. 유 감독은 “앙골라도 파워와 탄력이 좋은 선수가 많다”라며 어려운 상대임을 인정했다. 삼성 이상민 감독도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상대 국가들의 높이에 압도당해 슛 타임이 느린 선수들은 슛 한번 못 던지고 돌아왔다”라고 회상했다. 대표팀 맏형 김주성 역시 “오히려 파워는 미국보다 유럽이 낫다”라고 떠올렸다. 이런 코멘트들은 결국 철저한 준비 없인 월드컵서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이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경기력을 갖추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지난달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끝으로 잡히지 않은 실전 연습경기와 평가전이 결과적으로 한국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고 발휘하는 데 발목을 잡았다. 필리핀은 월드컵을 위해 미국과 유럽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대부분 국가가 월드컵 직전 해외 전지훈련 및 평가전을 치렀다. 스페인에 입성한 이후에도 꾸준히 연습경기를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 뉴질랜드와의 최종평가전 직후 월드컵 직전까지 진천선수촌에 틀어박혀있었다. 스페인 입성 이후에도 연습상대를 단 1팀도 구하지 못했다. 농구관계자들에 따르면, 뉴질랜드 전지훈련 준비로 미처 스페인 입성 이후 연습경기 스케줄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농구 행정의 어두운 단면이다.
남자농구대표팀의 궁극적 목표는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만의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아시안게임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려면 월드컵부터 제대로 치러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표팀이 월드컵을 온전히 치를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물론 뉴질랜드 전지훈련과 대만, 뉴질랜드 국내 평가전은 좋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나라도 기본적으로 하는 투자였다. 애당초 거기에 만족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앙골라와의 첫 경기. 현 시점서는 희망보다 불안감이 훨씬 더 크다. 앙골라전서 무너지면 그 이후 더 강한 상대들에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 위기론 중심에 한국농구 행정의 아쉬움이 녹아있다.
[남자농구대표팀.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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