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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첫 인사부터 씩씩하다. 농구공이 든 큰 가방을 메고 등장한 배우 김대현(30)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채 무대 위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첫 인사를 건넸다. "제가 좀 두서 없이 얘기해요", 인터뷰 시작부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지만 김대현은 그 어떤 이보다도 솔직하고 순수한, 이와 함께 열정적인 그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5년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로 데뷔해 줄곧 대극장 무대에서 활동한 김대현은 약 3년 전부터 소극장 무대에서 활동하며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연극 '모범생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연극 '나쁜 자석', 뮤지컬 '트레이스유', '그날들' 등 연극 및 뮤지컬 무대를 넘나들며 인기 배우로 거듭난 그는 현재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를 통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이하 '우노얘')는 '나와 할아버지',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집필하고 연출한 민준호의 또 다른 대표작.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소통'의 부재로 서로 멀기만 한 관계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이별을 고하는 여자친구를 붙잡으려 애쓰고 서로 소통이 부족한 아버지와는 갈등을 겪는 아들 역을 맡은 김대현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엔 과도기가 됐다. 30대 초반이니 연기를 제대로 시작한지 3년밖에 안됐는데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더라. 그러던 중 '우노얘'를 하면서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 "이번에 내 자신을 많이 버렸다"
김대현은 '우노얘' 무대에 오르며, 극단 간다 배우들과 함께 하며 배우로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그는 "사실 그동안 연기가 항상 어려웠다. 무대에 올라가면 재밌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재밌지가 않았다. 당연히 올라가면 재밌는데 항상 어렵고 긴장이 쌓이고 무슨 대사를 하는지 모르겠으니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대현은 사실 난독증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지만 책 한권 읽기도 어려웠다. 다른 곳에 생각이 가있으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대 위에선 날아다니는 그이지만 첫 대본 리딩 때는 항상 어려움을 겪었다. 무대 위 그의 모습을 본 뒤 함께 작품을 시작한 일부 연출진들은 첫 리딩에서 버벅거리고 말이 빨라지는 그를 보고 적잖이 놀라는 일도 있었을 정도라고.
하지만 김대현에게나, 김대현을 만나는 관객들에게나 다행인 것은 그의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대현은 항상 동료들의 도움으로 대본을 숙지했고, 그만큼 성장했다. 김대현은 "이번에 '우노얘' 첫공연 뒤 '모범생들'을 같이 했던 (홍)우진 형이 '자랑스럽다. 내 동생. 대견하다'고 말하더라. '왜요?'라고 물으니 '내가 네가 첫 연기 했던걸 알잖아'라고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더라"라고 밝혔다.
"우진 형은 3년 전 '모범생들' 했을 때 얘기를 아직도 한다. 처음에 '얘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면서 공연하지?' 싶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와서 서민영 역을 한다고 하니까. 근데 '우노얘' 때도 다를게 없었던 것 같다. 난 잘 모르겠으니까 막 읽었다. 고마운건 어렵게 얘기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잘 풀어준다. 민준호 연출님도 배우 출신이다 보니 직접 보여주시면서 기본을 가르쳐 주시고 배우 형님들, 누나들, 동생들 다 엄청 많이 맞춰주고 도와줬다."
김대현은 "'우노얘'를 통해 처음으로 편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늘 공연은 재밌지만 이렇게 재미도 있고 편하기까지 한 작품은 처음이라는 것. 그는 "서로 얘기하는 것, 주고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연습 도중 즉흥극을 하면서 더 친해지고 많이 깨달았다. 그냥 딱딱한 연습이 아니라 재밌게 하고 계속 이해를 시켜주니까 정말 좋더라. '잘못됐다'가 아니라 편하게 해주시니 마음대로 막 하게 됐다"며 "사실 이전에는 다른 배우들의 대사가 잘 들릴 때가 별로 없었다. 상대방 대사를 듣다 보면 내 대사를 까먹고 버벅거리게 되고 그 때부터 흔들리게 되는 때가 많았다. 근데 이번엔 상대방 대사까지도 다 외웠다. 이런 게 처음이다"고 털어놨다.
"지금 예전 작품을 하면 더 잘 할 것 같다. '우노얘'를 하면서 진짜 많이 달라졌다. 그 전엔 생각을 엄청 많이 했다. '일단 하면 다 배우겠지'라는 생각으로 겹치기 출연도 많이 했다. 근데 아니었다. 그 땐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움에 대해 이번에 완전 깨졌다. 제대로 된 공연,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면 여기서 바뀌게 되는 것을 알았다. 이제 연기가 너무 하고싶다. 난독증도 천천히 고쳤다. 대본 읽는 것 자체가 긴장이니까 무서워서 못 읽었는데 지금도 막 소리치고는 있지만 조목조목 얘기하는 것을 배웠다. 이번에 내 자신을 많이 버렸다."
▲ "처음에는 '뭐지 얘?', 나중에 보니까 나더라"
'우노얘'를 통해 배우로서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겪고 있는 김대현은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아들이자, 여자친구에게 집착하는 남자친구 역을 연기하며 자신의 또 다른 부분을 표출하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 무대 위에서 너무 멋있는 척을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찌질한 모습이 나와 반 정도 비슷하다. 나를 버리니 연기하는 것도 편해졌다"고 고백했다.
김대현은 연애하며 찌질했던 때를 묻자 "나도 옛날에 여자친구한테 '음.. 미안해..' 하면서 다시 사귀자고 하고 울고 결국 헤어지고 그랬다. 스물두살 때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 아버지가 되게 무서웠다. 집에 데려다주러 갔다가 걸렸는데 노려보시면서 '나중에 두고보자'고 하셨다"고 운을 뗐다.
"처음 사귀니까 여자친구 아버지의 그 말이 되게 무서웠다. 이렇게 무서워 하면서 사귀는게 제대로 사귀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얘기해야겠다 하고 술 마시고 새벽에 찾아가서 '보고싶어!'라고 소리쳤다. 그 때 쌓였던 스트레스가 뻥 뚫린건지 그 친구 집이 2층집이었는데 옆에 공사장에 있는 사다리를 갖고 가서 타고 올라갔다. 근데 올라간 다음에 얼굴만 보고 다시 내려갔다. 여자친구가 인상 찌푸리고 머리 밀면서 '가라고오!'라고 소리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웃음)
이어 김대현은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라고 하는 게 진짜 공감 갔다. '헤어지자'는 대사를 들으면 그 때 눈물이 난다. 옛날에 어릴 때 한 번 그렇게 울었던 적이 있다. 누나를 사귀었었는데 '미안해. 누나.. 으으으으' 이러면서 울었다. 그 때 그게 나오는 것 같다"며 "근데 극중 인물처럼 여자한테 막 욕하고 막 한 적은 없다. 때린 적도 단 한번도 없다. 그거는 큰일 나는 거다. 사실 극중 여자친구 역할을 연기하는 박민정, 노수산나 배우 두 분 다 너무 예쁜데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도, '야!' 하고 째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좀 무섭다"고 털어놨다.
김대현은 남자친구 역 뿐만 아니라 아들 역을 통해 대부분의 아들이 그렇듯 무뚝뚝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김대현은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손을 잡고 다니고 뽀뽀를 하는 살가운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우노얘' 속 아들처럼 무뚝뚝하고 대들기도 많이 대든 아들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뭐지 얘?'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나더라. 지금은 아버지와 많이 좋아졌지만 나도 많이 싸웠다. 얘기를 하자고 하면 안 하고 얘기 하면 또 싸우고.. 비슷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문자도 자주 하고 좋아졌다"며 "아버지 역 선배들은 다 다른데 쓸쓸해 보인다. 사실 주시는대로 다 받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내가 약솔 수준이라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형님들이 '우리한테 많이 빼앗아 먹어' 그러는데 이제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호진 형, 윤나무와는 캐릭터 얘기를 진짜 많이 한다. 호진 형은 모니터를 진짜 잘 해주시는데 연기 얘기밖에 안한다. 나무랑은 공연 전 자주 만나 얘기를 하는데 진짜 많은 도움을 주는 친구다. 한 살 어린 동생인데 친구나 다름 없다. '우노얘'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다. 작품 자체로는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잘 보면 다 이유가 있다. 사람에겐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다. 감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관객들이 보면서 아들이 될 수도, 여자친구가 될 수도 있다. 보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팍! 공감가게 해주는 작품이다."
▲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개그맨을 꿈꾸던 김대현은 친구들과 모여서 '틴틴파이브'를 모방한 '꾸러기파이브'를 결성해 마임을 연습하고 로보캅 흉내를 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소 산만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웃는 모습이 좋았다. 그러다 중2 때부터 친구인 배우 김지강의 영향을 받아 고3 때 처음 연기를 접했다. 그렇게 김지강과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고, 다소 빨리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김대현은 최근 연기적으로 다소 부침을 겪었다. 그럴 때 간다 선배들, '우노얘'를 만나 배우로서나 인간적으로나 많은 부분에서 성장했다. 김대현은 '우노얘'를 통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노는 낙천적의 대가였다면 이제는 더 많이 생각하고 연기를 진정 즐기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란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제일 무섭고 어려운게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서 좋은데 그 중 무섭고 어려운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까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근데 간다 식구들은 정말 믿을 수 있는 분들이다. 진짜 너무 너무 좋다"며 "관객들도 많이 좋아해주시니 요즘엔 다 감사하다. 내가 이렇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 이만큼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더 잘 하고싶다. 사람이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다 간다를 만나서 그렇다. 간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연기를 안 하게 만든다. 그래서 원래 무대에서 잘 떠는데 '우노얘'에서는 안 떠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올모스트메인' 할 때 네 작품을 했다. 지금 '트레이스유' 때보다 8kg이나 살이 쪘는데 '트레이스유' 할 때는 사람들이 나한테 요정이라고 그랬다.(웃음) 나도 사진 보면서 '내가 이렇게도 생겼구나' 싶었다. 그 때까진 하고 싶은 걸 계속 했다. 하면 늘겠다는 생각에 한 거다. 근데 한순간에 힘들어졌다. 지난 5월부터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하고 있는게 맞는 건가' 싶더라. 내 자신을 좀 내려놓고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김대현은 "그러다 '우노얘'를 하며 많이 배웠다. 연습할 땐 딱 딱 하고 술도 엄청 마시고 노는데 진짜 재밌다. 나에겐 배움의 장이다. '대현아. 이렇게 해볼까?' 하는 선배들이 너무 좋다"며 "특히 (홍)우진 형은 정말 존경한다. 와서 그냥 토닥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또 선배들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이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 전에는 '배우면 잘 해지겠지' 했다. 대본 읽는 것도 그렇고 노래 하는 것도 그렇고 연기 하는것도 계속 하면 늘 거라 생각했다. 항상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계속 하다 보면 어떤 느낌이 들고 다 보인다고 하는데 난 아직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계속 죽어라 했다. 근데 지금 바뀐 건 이제 조금 재미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대본을 보면 재밌다는 게 느껴진다. 그 전에는 '어떻게 하지' 한숨부터 나왔는데 지금은 재밌다. 30대 초반에 이렇게 빨리 재미가 찾아왔으니 지금부터 더 잘 해야한다고 선배들이 말 해주신다. 어떤게 필요한지 확실히 알았으니까 연기를 더 재미있게, 열심히 하려 한다. '우노얘'가 그 계기를 만들어줬다.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
한편 김대현이 출연중인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는 오는 10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김대현. 사진 = 스토리피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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