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잔소리 해야 열심히 뛰어요.”
그동안 이종현(고려대)을 바라보는 남자농구대표팀 유재학 감독의 시선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게으르다”였고, 또 하나는 “센스가 있다”였다. 유 감독은 기본적으로 성실하지 않은 선수를 선호하지 않는다. 신장과 기술이 떨어지더라도 성실하고, 자신의 농구철학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선수를 코트에 내보낸다. 그렇게 모비스를 국내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고 남자대표팀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유 감독은 이종현을 대표팀 소집훈련 도중 낙마시킬 수도 있었다. 엄청난 노력과 변신에 박수를 보낸 이종현의 선배 이승현도 결국 돌려보낸 유 감독이었다. 하지만, 유 감독은 이종현을 끝까지 안고 가기로 했다. 결국 이종현의 센스와 농구 IQ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 감독의 대학 유망주들 평가는 냉정하다. 대표팀 훈련 초반 “게으르다. 대표팀에서 했던 걸 소속팀으로 돌아가선 해보지 않을 아이”에서 “조금 좋아졌다. 그래도 계속 잔소리를 해야 열심히 뛴다”로 바뀐 상태다.
▲ 국제용 가능성 타진
유 감독이 이종현에게 일말의 아쉬움을 품은 건, 국제무대서 파괴력 있는 센터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녹아있다고 봐야 한다. 이종현은 국제대회를 꽤 많이 경험했다. 청소년 레벨서 아시아, 세계대회에 참가해 한국 골밑을 지켜왔다. 하지만, 성인레벨의 대회는 2년 전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이 처음이었다. 당시 이종현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스페인 월드컵서 이종현이 중계 카메라에 꽤 많이 잡힌다. 덩치 값을 하기 시작했다. 앙골라, 호주전서도 공헌도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득점과 리바운드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팀 특유의 골밑 도움 수비와 트랩 등을 정상적으로 수행했다. 몇 차례 블록슛으로 상대 공격을 저지하기도 했다. 3일(한국시각) 슬로베니아전 활약은 더욱 도드라졌다. 12점 5리바운드 4블록슛. 적극적인 공격과 블록슛 가담이 돋보였다.
더 이상 국제무대서 상대 빅맨들과 경합하는 걸 피하지 않았다. 2년 전 올림픽 최종예선서 이종현은 상대 빅맨들과 부딪히는 데 소극적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부딪힌다. 이종현의 신장과 파워가 국제무대 골밑서 돋보이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무시할 수준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세기가 많이 부족하지만, 일단 골밑에서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고 리바운드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만으로도 한국농구의 아킬레스건은 많이 치유됐다. 이날 이종현과 김종규가 골밑에서 보여준 적극성은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대패를 피한 원동력이었다. 이종현이 슬로베니아 골밑에 그렇게 많이 밀린다는 인상을 받진 않았다. 결국 본인 하기 나름이다. 유 감독이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
▲ 여전한 보완점
이종현의 플레이는 아직 설익다.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수 차례 지적된 외곽에서의 움직임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대표팀은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전반전서 대등한 승부를 했다. 그러나 3쿼터 들어 와르르 무너졌다. 유재학 감독은 이미 2쿼터부터 작전타임 때 “왜 스위치 안 해?”라고 지적했다. 외곽에서의 움직임이 둔했다. 기민한 스위치가 나오질 않았다. 결국 슬로베니아 장신슈터들에게 연이어 외곽포를 맞으면서 점수 차가 벌어졌다. 승패가 갈린 하이라이트 필름.
이종현은 상대의 기본적인 2대2 공격에서 일어나는 스위치에 대한 대처, 외곽 로테이션 수비를 따라가는 요령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생적으로 발이 느리지만, 요령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다. 국내 아마추어 무대서는 경험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틀을 깨고, 국제무대서 존재감을 좀 더 키우기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숙제다.
볼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도 숙제. 이종현은 이날 파울이 많았다. 경기 후반이 되자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다. 이 역시 요령 부족이다. 골밑은 전쟁터다. 어지간한 몸싸움을 그냥 허용하는 FIBA룰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월드컵서 누가 말해주기도 전에 스스로 몸으로 익히고 있다. 좀 더 영리한 움직임, 날카로운 움직임이 나오면 파울도 줄어들게 돼 있다.
이종현과 김종규에게 아직 국제용 빅맨이란 수식어를 달아주기엔 좀 이르다. 그래도 두 사람이 최근 1~2년간 국내농구의 틀을 벗어나 세계무대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특히 이종현은 스페인에서 돈 주고도 하지 못할 처절한 사투를 하고 있다. 그가 아직 KBL에도 입성하지 않은 유망주인 걸 감안하면 앞으로 기대가 더 많이 된다. 월드컵 이후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 특히 유 감독 같은 농구전문가들이 내리는 평가가 상당히 기대된다.
[이종현. 사진 = 스페인 그린카나리아 KBL 사진공동취재단]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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