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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이제는 책임감이다. 좋은 연기, 좋은 노래,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열정이 차곡차곡 쌓이니 사명감을 넘어 책임감이 됐다.
데뷔 9년차 뮤지컬배우 차지연(32)은 이제 배우로서 목표가 뚜렷해졌고, 자신이 이뤄 나가야 할 것들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되면서 울창한 숲을 위해 그 안에서 건강한 나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차지연이 집중한 작품은 뮤지컬 더 데빌'. 뉴욕의 증권가를 배경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유혹에 빠져 돌이킬 없는 선택을 한 존 파우스트와, 그를 점점 타락으로 몰아가는 X, X로부터 존을 지키고자 하는 존의 여자친구 그레첸의 이야기를 강렬한 록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더 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차지연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더 데빌'은 나에게도 새로운 시도이고 도전이다. 9년차가 되다보니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던 뮤지컬, 이 곳이 엄청난 사명감과 책임감을 주는 곳이 됐다"고 입을 열었다.
▲ "창작 작품은 기적, 배우관이 많이 바뀌었다"
차지연이 '더 데빌'에 갖는 애정은 상당했다. 창작 초연인 만큼 모든 부분을 함께 했고 모든 것이 도전이었기 때문. 분명 신선한 도전이지만 관객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었고, 관객들 입에 연이어 오르 내리게 되면서 '더 데빌' 무대에 서는 차지연의 책임감과 자긍심은 더 높아져야 했다. 또 그만큼 높아졌다.
차지연은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괜찮다. 그만큼 기대도 많았고 사랑도 많이 해주시는 것이다. 무대가 점점 더 깊이 있어지고 숙성돼 가면서 진심이 담겨진다면 닫혀 있던 관객들의 마음도 열릴 것이다. 공연 막바지에는 더 사랑 받으며 끝날 수 있을거라 믿는다"며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100% 인정한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같은 환경에서 이런 작품을 창작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걸 알아주시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창작 작품이 고통 속에서 진통을 겪으며 태어난다는 것을 예전엔 정말 몰랐다. 서울예술단에서 '잃어버린 얼굴 1895' 했을 때 어쩌다 창작자의 역할까지도 비슷하게 했었다"며 "물론 많은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을테지만 작품에 애정을 쏟으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끼고 공부가 됐다. '배우라면 이런 작업이 꼭 필요하겠구나' 싶었고 배우관이 많이 바뀌었다. 작품을 위해서도 그렇고 배우 스스로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너무 크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작품을 하면 할수록 쉽거나 만만해지지 않는다. 노하우가 생기고 요령이 생기는건 별개 문제다. 오히려 더 진중하고 신중해졌다. 내 행보가 뮤지컬이 꿈인 후배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좋은 행보의 예로 비춰지길 원한다. 엄청난 공연들이 많지만 정말 조금의 희망의 빛을 갖고 태어난 창작 작업은 진짜 기적이다. 모든 이들의 피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런 작품, '더 데빌'이 더 많은 분들에게 좋게 비워지길 바라는 이유다."
이어 차지연은 "물론 선배들이 봤을 때 건방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차를 바라보는 나로선 이 시점에 '더 데빌'은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명확하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고 만들어 보지도 않고 용기조차 없는 환경에 살고 있지 않나. 익숙하지 않은 것, 접해보지 않은 것에 누구나 거리감을 느낀다"며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더 데빌' 같은 작품에 힘을 보태주시면 좋겠다. 물론 강압적으로 사랑해 달라는 건 아니다. 장르의 다양화를 위해 스스로 성장하고 키워질 수 있게 격려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한 친구가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보라빛, 파란빛일 때 '내가 흔히 보던 음식의 색깔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먼저 할 거다. 하지만 두려움을 깨치고 한입 맛 봐서 맛있었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된다. '더 데빌'도 그런 느낌이다. 지금 '더 데빌' 때문에 좀 예민한 상태인데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다. 짜여진 틀을 깨트린 괴도를 벗어난 작품이다보니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더 데빌'의 메시지는 명확하고 간결하다. 또 강렬하고 뜨겁다. 철학적이고 순수하다. 그 안에 박혀진 보석 같은 부분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일부러 난해하게 만든 것도 아니다. 최대한 쉽고 명확하게 만들고자 머리를 맞댔고 중간 중간 명확한 메시지가 꽂혀 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기 바란다."
▲ "그레첸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 했으면 좋겠다"
'더 데빌'에 애정이 있는 만큼 차지연의 노력은 상당했다. 모든 작품에 열정을 쏟아내지만 '더 데빌'은 특히나 애정이 갔다. '더 데빌'만의 유니크함과 세련미, 잠재된 어두운 부분이 차지연과 잘 맞았다. 그래서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내면부터 외면까지 진짜 그레첸이 되고 싶었다.
차지연은 "원래 좀 통통하고 골격이 커서 거대해 보이는데 두달 넘게 다이어트를 하며 거의 9kg을 뺐다. 근육량도 많아졌다. 나도 나한테 놀라고 있다. 그간 다이어트를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한적은 없었다. 근데 더 좋은 것 같다"며 "일단 체력이 붙어서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다. 일단 몸이 가벼우니까 덜 피곤하다. 옷들도 다 커졌다. 평소 극장이 어디든 걸어 가고 매일 매일 평균 두시간씩 운동을 한다. 그러니 체력이 점점 붙으면서 '더 데빌'도 소화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더 데빌' 보시는 분들이 무대에서 움직임도 많고 감정을 많이 쏟아 부어 걱정을 많이 하신다. 하지만 그만큼 몸을 만들어놔서 괜찮다. 배우라면 그 역할과 작품에 맞게 몸과 마음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작품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여전히 커서 좀 더 그 역할에 어울리는 나로 만들고 싶다. 정말 지독하리만치 관리를 했는데 지금은 몸에 체지방이 거의 없다. 이게 또 초연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레첸은 굉장히 사랑스럽고 따뜻한 여자에서 점점 처절해진다. 근데 통통하면 안 어울릴 것 같았다. 일단 키가 크고 골격도 큰 게 굉장히 콤플렉스이기도 하고 걱정도 됐었는데 개인적인 노력들이 무대에서 조금이라도 그레첸과 작품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 의상도 노출이 많고 평범하지 않으니 어느 부분이 노출 되더라도 거부감이 없길 바랐다. 특히 등근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했다."
차지연은 겉모습 만큼이나 내면도 그레첸이 되기 위해 신경 썼다. 그는 "'더 데빌' 그레첸은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부분들이 많이 녹아져 있다. 중반부터 육체적인 고통도 많고 아픈 삶을 사는데 내 삶에서도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내 아팠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사한 감정과 상황들을 많이 겪었던지라 존을 향한 그레첸의 사랑의 크기나 마음이 정말 와닿고 이해된다. 그녀가 정말 처절하게 망가져 가지만 버티는 힘은 딱 하나, 사랑이다. 도망치거나 겁내지 않고 끝까지, 한결 같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한다"고 설명했다.
"원초적인 의미의 사랑인 것 같다. 굉장히 본질적이고 광범위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냥 우리네 이야기다. 사람 하나 하나 보면 악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상황과 타이밍, 여러가지 요소들이 오해를 만들고 시기와 질투를 만들고 상처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가운데 '더 데빌'은 우리가 좀 더 선한 길을 선택하자는 것을 얘기한다. 정말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도 뉴스를 보면 뉴스 1000개 중 999개는 안 좋은 뉴스다. 그레첸이 혹사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희망을 갖고 살기도 힘들 정도로 참담한 세상이 됐다. 하지만 끝까지 지키는 그레첸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 했으면 좋겠다. 나 힘들게 살고 있지. 그래도 나 사랑해주고 희망 잃지 말아야지.. 치유하길 바란다."
▲ "쉽사리 흔들리고 싶진 않다"
'더 데빌'에 대한 차지연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비단 '더 데빌' 뿐만이 아니라 그간 자신의 행보에 자신감이 넘쳤고, 그러면서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도대체 저 배우는 왜 저런 루트를 걸어갈까'라는 말을 들어도 목표가 있어 당당했다. 그 목표가 더 분명해지고 뿌리가 단단해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데빌'을 향한 애정도 더욱 크다고 했다.
차지연은 "다양하게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연극도 하고싶다. 노래하지 않는 차지연이 얼마나 배우답게 무대에 설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설령 그것이 또 혼냄만 당하는 계기가 되더라도 더이상 두렵지 않다"며 "악평, 혹평, 질타는 두렵지 않다. 매 작품 성공적일 수는 없다. 넘어질 때도 있고 욕 먹을 때도 있고 사랑 받을 때도 있다. 그것은 배우만의 숙명이고 자연의 섭리이자 사명이다"고 밝혔다.
그는 "두려워 하지 않고 자꾸 깨트리고 싶다. 더 깨트리고 나아가며 길을 터줘야 많은 사람들이 겁내지 않고 그 길을 따라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자극제 역할을 하고 싶다"며 "이제까지 한 번도 비슷한 역할을 한 적이 없다. 나만의 목표이자 나만의 방향성이기 때문에 그건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 정말 배우로 살고 싶다. 누구보다 굉장히 확고해졌고 '더 데빌'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고 고백했다.
"사실 체력적으로는 소리 지르고 진심을 토하는 대사들이 많아 목도 상하고 힘들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멍청하고 미련한 생각인데 '이거 좀 아껴서 얄팍하게 오래 먹고 사느니 한 회 한 회 뜨겁게 불 질러 버리자'라는 것이다. 정말 뇌리에 박혀서 내가 훅 떠났을 때도 그 강렬한 느낌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진심이 전해지고 배우로서도 성장하는 느낌이다. 무조건적으로 '안돼. 내 길을 갈거야'는 아니다. 바른 말, 정확한 의견이 있다면 당연히 수렴해야 한다. 하지만 쉽사리 흔들리고 싶진 않다. 적어도 뭔가 타인에게 내 어떤 확고한 확신이나 내 진심을 전해야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군다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이 확고해진 만큼 차지연은 늦고 뒤처지더라도 올바른 길로 가고싶다. 더디더라도 정의롭고 바른 길을 걷고 싶어 요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데빌'은 그녀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치유하고, 새로운 것을 개척해나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차지연은 "'더 데빌'을 통해 관객들을 치유하고 싶다. 내가 비슷하게나마 아파봤기 때문에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어두운 만큼 한 켠에 개구짐이 있어 나를 붙잡고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난 왜 한결 같지 못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결국 다 나네'라는 결론을 얻었다. 나를 인정하니 좀 더 편하다"며 "그 전까지는 남의 시선도 너무 의식하며 살았지만 조금씩 배우로서 목표가 정확하게 서기 시작하니 내 삶도 명확해지기 시작하더라. 참 뮤지컬 하길 잘 한 것 같다. 내가 다시 살았으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무대에서 은혜 입고 치유 받는 것들이 정말 많다. 정말 귀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더 관객들에게도 그 느낌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나라 창작 뮤지컬, 창작 연극을 많이 사랑해 주시기 바란다.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데 많이 발걸음 해주시고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다. 세쌍둥이가 동시에 뿅 하고 나와도 다 다르다. 좀 더 연약한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기댈 곳 없이 미약하게 태어나는 작품이 창작 작품이다. 좀 더 손길이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한편 뮤지컬 '더 데빌'은 오는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배우 차지연, 뮤지컬 '더 데빌' 포스터. 사진 = 클립서비스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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