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저를 다시 만들어준 팀입니다.”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해체. 만 이틀이 지났지만, 야구계의 충격과 아쉬움은 여전하다. 원더스 해체는 결국 원더스와 KBO, 기존 구단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은 결과다.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달랐다. 원더스로선 비전을 내다볼 수 없었다. 야구광 허민 구단주도 결국 도전을 중단했다.
원더스는 총 22명의 프로선수를 배출했다. 프로야구 토대 강화에 일조했다는 증거. 이들 중 안태영(넥센) 황목치승(LG) 송주호(한화)가 현재 1군서 백업멤버로 활약 중이다. 물론 이들은 프로에 다시 들어오기 위해 원더스서 피 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원더스 특수성을 톡톡히 맛본 것도 사실이다. 고양 원더스가 아니었다면 프로구단이 이들의 땀방울을 기억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 고양 원더스는 절실함을 일깨워준 팀
11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한화 송주호를 만났다. 그는 “원더스는 나를 다시 만들어준 팀”이라고 했다. 이어 “예전엔 절실함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님을 만난 뒤 절실함이 많이 생겼다”라고 했다. 송주호는 절실함을 땀방울로 승화시켜 프로구단으로부터 인정받은 케이스다. 물론 원더스서 프로구단에 콜업되지 못한 선수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그들의 절실함이 프로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땀방울이 의미 없는 건 아니었다. 국내야구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도전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됐다.
송주호는 “원더스 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선수들이 너무 안타깝다. 원더스가 없어지면 그 선수들은 갈 곳을 잃는다”라고 했다. 이어 “선수들과는 가끔씩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연락해보니 울먹이는 선수도 있었다”라고 고개를 떨궜다. 송주호는 한때 그 선수들과 동등한 입장이었다. 원더스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송주호는 “나 또한 고양 원더스라는 팀이 없었다면 야구를 그만뒀을 것이다. 해체가 너무 마음 아프다”라고 했다. 송주호가 실업자가 된 원더스 선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한화에서 성공해 원더스 출신의 자부심을 세우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송주호는 “원더스 출신 프로선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야구를 해야 한다. 원더스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 타격감 유지가 쉽진 않았다
원더스와 KBO가 갈등을 일으킨 부분은 퓨처스리그 정식 회원가입 여부다. 원더스는 2011년 창단 당시 KBO로부터 확답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KBO는 명확하게 그런 적이 없다고 맞섰다. 원더스는 2012년과 2013년에는 퓨처스리그 번외 48경기만 치렀다. 올해는 번외로 90경기를 치렀으나 원더스의 목적이 완벽하게 실현된 건 아니었다. 원더스 입장에선 정식 회원 가입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봤고, KBO에 뜻이 관철되지 않자 해체를 선언했다.
원더스가 정식회원 가입을 원한 건 구단의 안정적 운영뿐 아니라 선수들의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더스로선 많은 경기를 치르는 게 필요했다. 특히 2012년과 2013년엔 턱 없이 적은 경기로 경기감각 유지가 쉽지 않았다. 물론 원더스도 올해 90경기를 치렀고 앞으로도 90경기를 약속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존 팀들은 정식 96경기에 원더스, 소프트뱅크 3군과의 경기까지 더 많은 경기를 치렀다. 원더스로선 불안했다.
송주호는 “올해는 그래도 많은 경기를 치러서 괜찮았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경우 경기 수가 적어서 타격감 유지가 쉽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일정이 없는 날에 부지런히 연습경기를 소화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도 22명의 프로선수를 배출한 건 분명 인정받아야 할 일. 이젠 그 어려움조차 경험할 수 없다. 국내야구의 육성 루트 하나가 사라졌다.
▲ 독립리그 활성화 불투명
원더스가 창단 3년째를 지나면서, 독립리그의 활성화 가능성도 고개를 들었다. 실제 경기도에서 올해 3~4개 독립구단 창단을 유도해, 내년부터 경기도 독립리그를 출범시킨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언론에도 보도된 부분. 하지만, 원더스 해체로 사실상 그 동력이 사라졌다.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 자체가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독립리그를 창단하고자 하는 사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상황서 고양 원더스마저 해체되면서 독립리그 활성화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원더스 행보를 본 사업체들이 독립리그에 뛰어들 것인지 의문이다. 결국 사회인 야구 외에 한국야구 저변 확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위기에 놓였다. 한화 김응용 감독은 “대안으로 실업야구 부활도 괜찮다”라고 했지만, 그 역시 현실성이 높지는 않다.
KBO 입장도 이해가 된다. 원더스에 정식 회원가입을 용인한다면, 그 신분이 어정쩡해진다. 1군에 공식적으로 선수를 공급하고 받는 상무, 경찰청과는 성격이 또 다르다. 기록과 정통성에서 배치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프로리그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게 KBO 입장. 결과적으로 원더스와 KBO의 갈등이 독립구단을 창단하려는 주체들의 적극성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원더스와 KBO의 어정쩡한 동거는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원더스 출신 송주호의 허탈함도, 야구계의 아쉬움도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어느 주체의 잘잘못을 떠나서, 한국야구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리고 프로 문턱에서 좌절한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됐던 원더스의 해체는 한국야구 발전 동력 한 축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원더스가 남긴 정직한 땀방울과 여운이 깊고 진하다.
[송주호(위), 고양 원더스 선수단(가운데, 아래). 사진 = 한화 이글스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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