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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남자 남현희.”
기자회견실에서 만난 허준(로러스)은 작고 아담했다. 신장 169cm. 스포츠 선수를 하는데 불리하다. 그런데 너무나도 민첩하다. 상대의 공격을 저지한 뒤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 인상적이었다. 남자 남현희라고 불리는 것도 그래서다. 수년간 한국 펜싱 간판스타로 활약한 남현희도 160cm가 되지 않는 신장에 기동력과 순발력, 역습능력으로 세계정상급 펜서로 활약했다.
▲ 놀라운 오뚝이 정신
허준은 여기에 놀라움 하나를 더했다. 오뚝이 정신. 스코어 관리를 매우 잘했다. 상대가 달아나면 추격하고, 또 달아나면 쫓아갔다. 펜싱은 스코어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개인전의 경우 15점을 내면 3라운드 9분을 소화할 필요도 없다. 때문에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아야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접전을 벌이다 점수 차가 2~3점 벌어지면 흐름이 기울어지는 것도 사실. 하지만, 허준은 끝까지 따라붙고, 접전을 펼쳤다. 오타 유키(일본)와의 준결승전, 마지안페이(중국)와의 결승전이 그랬다.
특히 결승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2라운드 직후 햄스트링 통증으로 10분 추가 치료시간을 받았다. 3라운드서 허준은 도저히 경기에 임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다. 확실히 발이 무뎠다. 결국 마지안페이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3라운드 막판 끝까지 쫓아가면서 점수를 따내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역시 남자 남현희라고 불리는 이유다. 끈기와 의지가 놀라웠다.
▲ 넓어진 저변 선두주자 허준
한국펜싱은 최근 몇 년간 상승세다. 2년 전 런던올림픽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선전한 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서 금메달 4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로 순항 중이다. 중국과 함께 아시아 최강이고,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전통의 최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게 펜싱계의 평가다.
저변이 넓어졌다. 남현희를 꺾은 전희숙, 김지연을 꺾은 이라진, 신아람과 대등한 승부를 펼친 최인정. 그리고 오뚝이 펜서 허준까지. SK텔레콤 명예회장인 펜싱협회 손길승 회장의 강력한 투자가 결실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완벽한 조건, 완벽한 기량을 타고 난 것도 아니다.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찾아왔다. 허준만 해도 그렇다. 아시아권에서도 정상급 선수들과의 승부가 쉽지 않다. 사실 리우올림픽 때는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래도 허준이 보여준 오뚝이 정신이라면 앞으로 그 어떤 국제대회서도 해볼 만 하다. 허준은 햄스트링 통증을 놓고 그는 “일시적인 부상이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나섰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고질적 아픔일 가능성이 크다. 남들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 운명. 햄스트링은 허준에세 선수생활 내내 동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 선수들은 보통 그렇다.
허준은 4년 전 광저우 대회 단체전 동메달리스트였다. 이번이 두번째 종합대회 참가. 4년 전에는 선배들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면, 이번 인천 대회를 통해서는 완벽하게 남자 펜싱 중심으로 올라섰다. 그의 나이는 아직 만 26세. 갈 길이 멀다. 2년 뒤 리우올림픽은 물론이고 4년 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6년 뒤 도쿄올림픽에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 허준이 한국 펜싱 밝은 미래의 아이콘에 등극했다.
[허준.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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