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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소녀여. 갈색 눈동자의 오소녀여!'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신비한 소녀다. "내가 신비하다고?" 반문한다. 오소녀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교복 입고 "담배 좀 사다 줘요" 하던 오소녀다. 그 오소녀가 고스란히 앞에 앉아 이성경이란 이름으로 인터뷰 중이다. 이성경은 본명이다. 성경(Bible, 聖經)이 이름이다. "어느 중학교 나왔죠?" 묻자 "꼭 써야 돼요?" 도로 묻는다. 목소리가 카랑하다. "왜?" 받은 질문을 다시 튕겨냈다. "못생겼어. 그때는 못생겼어요." 1990년 8월 10일생. 나이만 24살인 여전한 소녀.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고3 때까지. 그러니까 이성경 말로는 "못생겼던" 그 시절까지다. 모델이 되고 '괜찮아, 사랑이야'까지 나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냥 재미있어서"가 시작이다. 고3 때 과외선생님이 모델 대회 나가보라고 했다. "내가 왜?" 아니, 과외선생님은 대체 공부 가르치는 학생한테 왜? 뭐, 키가 크긴 크니까. 176cm. 인터뷰 때 하이힐까지 신고 온 탓에 생각보다 한 뼘은 더 컸고, "어, 되게 크네요?"가 이성경에게 건네 첫인사였다. 아무튼, 과외선생님이 한번 해보라고 해서 지원했는데 덜컥 상까지 받았다. 2008년 슈퍼모델선발대회.
"행복했고 내겐 신세계였어요." 슈퍼모델 대회의 감상이다. "안경 쓰고 머리도 대충 묶고 다니고 그랬어요. 옷도 잘 못 입었고." 그랬던 고3 여학생이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니 온통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삶을 만난 건 또 아니었는데 말이다.
"화장도 하고 속눈썹도 붙여보고. 완전 신세계! 화장은 애들이 축제 때나 소풍 갈 때 해주던 거였는데. 힐도 처음 신어 봤어요. 키가 크니까 신을 일도 없었고 가진 힐도 없었거든요. '와, 카메라가 날 찍네?' 모든 게 재미있고, 그런데 잘하면 상도 준다 그러고. 완전 재미있네? 좋은 언니들이랑 카페 들어가서 커피도 사먹고. 5천 원짜리 커피를? 우와! 제가 밥도 밖에서 사먹는 거예요. 그동안 해 봤자 애들이랑 분식집 가거나 특별한 날 외식하는 게 전부였는데. 그런 삶을 사니까 얼마나 행복한 거예요! 우와!"
입을 오물오물 하면서 표정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수다스럽게 떠드는 말투는 억양이 강해서 "사투리? 고향이 어디에요?" 했더니 "서울인데요?" 한다. 이거 원, 종잡을 수가 없다.
대회 후 시작된 모델 일은 '행복한 삶'의 연장이었다. "촬영이 '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물론 슬럼프나 자존감이 낮아져서 스트레스가 온 시기도 있었고요. 살이 좀 찌니까, 사람들이 '너 살 좀 빼' 이러는데, 그들은 그냥 하는 말이라지만 난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별 것 아닌데도 위축되고. 스트레스 받으면 폭식해서 살은 더 찌고. 그래도 다행인 건 일 자체가 위안이 됐고 행복했어요."
'괜찮아, 사랑이야' 출연은 김규태 감독 딸이 추천해서다. 김규태 감독 딸이랑 친구라도 되냐고? 아니. 딸이 '모델 이성경'에 관심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여고생 역할에 다듬어지지 않은 배우를 구한단 걸 알고 추천했다. 별안간 제작진의 연락을 받은 이성경은 "절 어떻게 아시고요? 제가 연기 못하는 것도 아시는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품행장애 여고생 오소녀.
수광의 열렬한 짝사랑 오소녀. 수광의 마음도 몰라주던 얄미운 소녀 오소녀. 조인성, 공효진, 이광수 같은 배우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연기 제법 하던 연기 초짜 이성경. "짝사랑 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수광의 마음을 그리도 몰라줬던 건가. 연애 경험은 "2번", 살면서 지금까지 통틀어서 "2번", 이상형은 "지혜로운 사람", 이유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지혜롭지 않기 때문에. 같은 판단을 해도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사랑하면 결혼하고 싶잖아요. 전 결혼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어요. 그래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이상형이요."
남자인 친구는 많다. "털털하고 쿨한 남자 애들이랑 친해요. 제가 좀 섬세하지 못한 성격이라서." 다만 담배 피우는 남자는 별로. 얼굴을 찡긋하더니 "담배요? 전 죽고 싶지 않은 걸요"란 말을 시작으로 한참을 이성경의 '금연론'이 펼쳐졌다. 결론은 건강 위해 피우지 말자는 것. 결혼할 사랑하는 남자라면, 가정에 책임감이 있는 남자라면 담배는 피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 물론 책임감 없다면 피우라는 것. 그래서 클럽은 별로 안 좋아한다. "담배 냄새 때문에." 주량은 "한 잔 마시고 취할 때도 있고, 한 병 마시고 취할 때도 있고"인데,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술 취한 듯 춤추고 놀아대서 "나, 집에 갈게" 하면 사람들이 "야, 너 술 먹고 운전하면 어떡해?" 한단다.
취미는 "책 읽기랑 다이어리 쓰기"라고 말했다가 "음, 책은 뺄게요" 했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을 물어보니까 이 책 저 책 얘기하다가 "아니, 지금 책을 사놓은 게 트렁크에 되게 많아요. 하나도 못 읽었어요. 선물 받은 책들도 있고"라고 어쩌고저쩌고 늘어놓는데, 그래, 취미에서 독서는 빼자. 다이어리에는 머릿속에 든 걸 이리저리 잔뜩 쓰고 나면 좀 정리가 된단다. 생각을 분류하는 일종의 작업.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성경의 말들을 듣고 있자니 '다이어리 쓰기'는 필수 취미다. 좋아하는 음악은 "너무 많은데…"라면서 "스윙 재즈도 듣고 힙합도 많이 듣고, 프랭크 시나트라 음악도 좋고. 저 좀 이상하지 않아요? 피아노 전공해서 쇼팽 음악 들었다가 갑자기 인디밴드 노래도 듣고 유재하, 이선희 노래도 듣고요"라고 한다. 꼭 다이어리에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차분히 정리하길.
음식은 다 잘 먹는데 김치만 못 먹는다. 김치찌개 김치는 먹는다.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약간 편식이 있었어요. 근데 학교 선생님이 강제로 김치를 입에 넣어 먹여서 그때 구역질 한 이후로 못 먹겠어요. 깍두기, 갓김치 같은 것도. 그렇지만 다른 건 다 잘 먹어요. 우거지국밥, 좋죠!"
마지막으로 물은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 물론 "'괜찮아 사랑이야' 때"란 대답. 식상하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제외하랬더니 "아…" 하고는 "다 너무 행복했는데?"라고 갸우뚱한다. "진짜에요. 모델 하는 순간도 정말 행복했고. 어쩜 이렇게 행복했지? 만나는 사람들도 정말 좋고. 어느 한 순간을 짚을 수가 없어요. 이번 태국 여행도 행복했고." 그럼에도 이성경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래도 '괜찮아, 사랑이야'".
아, 그리고 오소녀의 갈색 눈동자는 진짜 이성경의 갈색 눈동자였다.
[모델 겸 배우 이성경.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SBS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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