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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필리핀전 명암은 분명했다.
유재학호가 큰 산을 넘었다. 27일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리그 H조 필리핀과의 2차전 신승. 대표팀은 준결승전 진출 7부능선을 넘었다. 28일 카타르와의 최종전서 승리할 경우 조 1위를 확정한다. 준결승전서 최강 이란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카타르에 패배할 경우 승자승, 공방율에 따라 5~8위전 추락도 가능하다.
카타르전 필승이 필요하다. 유재학 감독은 “파워와 탄력이 좋고, 외곽슛도 좋다. 쉽지 않은 상대”라면서 “오늘 썼던 수비 중에서 잘 되는 걸 골라서 사용할 계획이다. 하루아침에 전력이 좋아질 순 없다”라고 했다. 필리핀전 플랜을 이어가겠다는 뜻. 대표팀의 현 주소와 향후 전망을 위해선 반드시 필리핀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필리핀전 내용이 곧 한국농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 3-2 드롭존, 절반의 성공
필리핀은 경기 초반부터 정신 없이 한국을 몰아쳤다. 짐 알라팍, 테르니오 리우스 알프레도, 젠 제프리엘 등이 조금의 틈만 있으면 3점포를 시도했고, 득점으로 연결됐다. 분명 무리한 슛 셀렉션이었지만, 필리핀 외곽 화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필리핀의 업템포 농구에 기세를 빼앗긴 한국은 결국 1쿼터 중반 3-2 드롭존을 꺼내들었다.
당장 효과는 봤다. 유 감독이 3-2 드롭존을 지시한 뒤 필리핀은 일시적으로 공격이 주춤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3-2 드롭존 움직임은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필리핀이 3-2 드롭존을 깨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필리핀은 45도 지점과 코너 등 3-2 드롭존 취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빈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기민함과 빠르고 정교한 패스워크로 3-2 드롭존을 파괴했다.
유 감독은 “드롭존이 완전히 깨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느 지점에서도 슛이 다 들어가면 지역방어가 소용이 없다. 카타르전서도 상황에 따라 수비를 선택하겠다”라고 했다. 필리핀은 전반전에만 16개의 3점슛을 던져 11개를 넣었다. 이러면 방법이 없긴 하다. 3-2 드롭존은 일시적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으면 성공. 사실 필리핀조차도 다시 이날 같은 폭발적 외곽슛을 뽐낸다는 보장은 없다. 업템포 농구 자체가 확률농구와는 거리가 있다. 필리핀전 후반전에 승기를 잡아온 전면강압수비와 곁들여진다면, 3-2 드롭존은 분명 대표팀의 좋은 무기다.
▲ 기 펴지 못한 빅맨들
아쉬운 건 빅맨들이었다. 유 감독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요령 있는 투지가 필요한데, 결국 종현이나 종규가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했다. 기대와 함께 냉정한 현실을 꼬집은 것. 대표팀은 이날 리바운드에서 35-31로 앞섰다. 오세근은 8개를 잡아냈으나. 이종현과 김종규는 합계 5개에 그쳤다. 파자도 준 마(10리바운드)에게 완벽하게 밀렸다. 힘을 바탕으로 한 위치선정에서 밀렸고, 세밀한 기술에서도 밀렸다. 파자도는 이종현과 김종규를 상대로 연이어 골밑 공격에 성공했으나 이종현과 김종규는 포스트업 혹은 페이스업을 자신있게 시도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오세근이 분투했다. 10점 8리바운드로 제 몫을 했다.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오세근은 파워에서 이종현 김종규보다 한 수 위. 그러나 그 역시 필리핀 골밑을 확실하게 요리하진 못했다. 문태종과 김태술이 리바운드서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반격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공격 작업 자체가 힘겨웠다. 골밑에 제대로 공이 투입되지 못한 채 스크린에 의한 외곽공격이 주요루트가 되면서 체력소모가 심했다. 국제대회만 되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문제점.
이종현과 김종규의 외곽수비력은 많이 좋아졌다. 3-2 드롭존의 가운데 꼭지점에 설 때 움직임은 유 감독의 반복훈련으로 상당히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스위치 디펜스를 할 때 스크린을 들어가는 타이밍이 늦거나 간격을 조정하지 못해 외곽포를 내주는 경우가 있다. 또한, 자세가 높아 필리핀 가드들의 낮고 빠른 돌파를 막지 못했다. 필리핀 가드들은 대부분 플로터성 슛을 구사할 줄 알았는데, 이 역시 전혀 막지 못하고 속았다. 이런 과정에서 필리핀의 한 템포 빠른 볼 처리를 제어하지 못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카타르전, 준결승전 혹은 결승전서도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이다.
▲ 문태종 침묵하면 어쩌나
문태종이 만들어낸 38점 대부분은 1대1로 만들어낸 점수. 필리핀 3점포와 문태종 3점포는 과정이 달랐다. 필리핀 가드들의 무리한 3점포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빠른 패스워크와 정교한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오픈찬스에 의한 3점포였다. 반면 문태종 3점포는 스크린을 받아서 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홀로 공을 잡고 수비수를 앞에 놓고 던진 3점포가 많았다.
필리핀전서 문태종 슛 감각과 클러치능력은 단연 KBL과 대표팀 입문 이후 최고였다. 그러나 과연 이런 문태종 의존도와 신들린 슛 감각이 카타르전, 준결승전과 결승전서 이어질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농구는 확률게임. 이날 대표팀 공격은 애버리지가 떨어지는 방식이었다. 정교한 움직임으로 한국 수비를 파괴한 필리핀 공격에 비해 질은 다소 떨어졌다. 물론 경기 막판 조성민과 김태술의 외곽포가 정교한 세트플레이로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더 많아져야 한다. 결정적으로 골밑 공격이 곁들여지지 않은 외곽공격은 꾸준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 감독이 대회 직전 골밑 공격을 강조한 이유.
앞으로 만날 카타르, 이란은 필리핀보다 파워와 테크닉이 더 뛰어난 부분이 있다. 빅맨들의 세기가 떨어지고, 문태종에게만 의존하는 공격이 통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힘겹게 필리핀을 넘어섰지만, 내용상으로는 필리핀에 밀린 부분이 많았다. 향후 갈 길도 여전히 가시밭길. 계속 강호들과 만나게 된다. 12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
[남자농구대표팀. 사진 = 인천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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