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만족하는 순간 도태된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대표팀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20년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침체된 한국농구에 매우 고무적인 사건. 그 원동력으로 WKBL의 헌신적인 지원, 위성우 감독을 비롯해 정상일 코치, 전주원 코치의 공로, 베테랑들의 희생정신 등을 빼놓을 수 없다.
WKBL은 예년과 달리 대표팀 훈련 스케줄을 치밀하게 짰다. 주전의존도가 높은 여자농구 특성상 대표팀에 뽑힐 정도의 실력이 되는 선수들의 몸은 비 시즌엔 매우 좋지 않다. 이번 대표팀은 5월 중순 평창 재활센터에 소집돼 철저하게 몸부터 추슬렀다. 체코 전지훈련서는 유럽 강호와 맞붙으면서 세계적 트렌드를 체득했다. 국내에선 남자 고등학교와 수 없이 스파링하면서 극한의 위기를 극복하는 훈련을 했다. 여기에 위 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지도력과 리더십이 결합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란 결실을 맺었다. 대표팀의 금메달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 베테랑들, 이젠 정말 굿바이
이번 대회에 나선 대표팀 주축은 30대 베테랑들. 한국은 과거 2006년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선수권대회서 급격한 세대교체에 나섰다가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이후 대표팀은 베테랑을 주축으로 삼되, 신예들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이후 꽤 시간이 흘렀다. 척박한 여자농구 토양 특성상 쓸만한 신예들은 많이 발굴되지 않았다. 베테랑들의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지난 5월부터 여자대표팀을 취재하면서, 30대 중반 베테랑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마지막이라는 얘기를 수 없이 들었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이니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했다. 결국 이미선 변연하 신정자 임영희 강영숙 등의 꿈이 이뤄졌다. 이들은 미련 없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게 됐다. 그런데 대표팀 리빌딩 속도는 중국, 일본과 비교해 너무나도 늦다. 아니,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중국, 일본에 비해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일본과 중국은 아시안게임 기간에 동시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1진을 파견했다. 아시안게임에는 2진이 참여했다. 위 감독은 “중국과 일본은 1진과 2진의 격차가 거의 없다. 오히려 잘 모르는 선수가 많아 경기준비가 쉽지 않다”라고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국가의 여자농구 저변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 한 농구관계자는 “베테랑들이 주축이 된 게 나쁜 게 아니다. 다만, 베테랑들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허약한 구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베테랑들에게만 의존할 수 없는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젊은 선수들의 국제대회 경험 체득이 중요하다.
▲ 中日 철저한 준비를 본받자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서 우승한 건 축하할 일이지만, 일본과 중국 2진을 이겼다고 해서 아시아 정상을 탈환했다고 보긴 어렵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서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중국, 일본 2진들을 홈으로 불러들였는데도 시원하게 이기지 못했다. 젊어진 중국과 일본은 더 강해졌다. 21세기 들어 한국에 밀렸던 일본은 최근 2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한국을 넘어섰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2년 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서 일본 1진에 참패했다. 당시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 멤버와 비슷했다. 반면 일본은 수년 전부터 조금씩 여자농구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마침내 아시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남녀농구 모두 2016년 리우올림픽에 초점을 맞췄다. 자국에서 열리는 내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이 중요한 미션.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올해 아시안게임은 중간과정. 대표팀 구성원이 20대 초반으로 조정됐다. 남자농구가 아시안게임 노메달에 그치면서 너무 급격한 세대교체가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건 분명 인상적이다.
▲ 만족하면 도태된다
그동안 한국 여자농구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표팀 운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베테랑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단기적 계획은 치밀하게 잘 짰다. 하지만, 이젠 장기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운영계획도 필요하다. 대표팀 감독 전임제 논의, 해외전지훈련과 A매치 정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장래성이 풍부한 2진을 파견해 경험을 쌓게 한 건 고무적이다. WKBL이 꾸준히 실시 중인 유소녀 캠프 역시 호평 일색. 중요한 건 베테랑들이 물러나고, 2진급 선수들이 1진급 대표팀에 올라오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잘 극복할 수 있느냐다. 장기적이면서도 세밀한 운영 계획이 필요한 이유. 앞으로는 제법 많은 국제경험을 쌓은 김단비 김정은을 축으로 박혜진 이경은 등이 대표팀 중심축이 돼야 한다. 여기에 박지수 홍아란 신지현 등이 가세하면 경쟁력과 장래성을 동시에 갖춘 대표팀이 구성된다. 농구관계자들이 “여자농구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라고 하는 이유.
한국이 젊은 대표팀 완성단계에 접어든 일본, 앞으로 더 무서워질 중국에 비해 전체적인 경쟁력에서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예전에 비해 여자농구의 객관적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 건강한 유소녀 육성 시스템과 대표팀 운영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 20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만족하는 순간 도태된다. 한국 여자농구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자농구대표팀.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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