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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 '코미디의 길' 폐지는 은밀했다. 지난달 28일 방송이 마지막이었는데, 폐지 사실이 2주 넘게 지나 15일에야 알려졌다. 마지막 방송에서 종영을 알리는 어떤 공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주간 다른 프로그램이 대체 편성돼 결방인 줄 알았던 시청자들만 황당할 따름이다.
▲ '종영 자막도 없이 폐지'
과거 MBC는 몇몇 예능프로그램 종영시 출연자들의 마무리 인사 없이 자막으로만 종영을 알려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8년간 장수하던 예능 '놀러와'도 마찬가지였다. MC 유재석, 김원희의 작별 인사는커녕 '지난 8년간 '놀러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란 자막만이 종영을 알렸을 뿐이다. 당시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란 비판이 쏟아졌는데 '코미디의 길'은 자막마저 없었으니 프로그램을 아꼈던 시청자들이 어떤 심정일지 불 보듯 뻔하다.
폐지의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낮은 시청률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첫 방송이 2.5%(이하 닐슨코리아 전국기준)였고, 마지막 방송 역시 2.5%였으며 종영 한 주 전인 지난달 21일은 더 낮은 1.5%였다. 다만 시청률 부진의 원인을 전적으로 프로그램에 떠넘길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코미디의 길'은 MBC 코미디 부활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코미디계 거물격인 이홍렬을 섭외해 스물 여덟살이나 어린 까마득한 후배 김용재와 콤비를 이루게 해 신구조화를 노렸고, 페이크 다큐 형식의 동명 코너 '코미디의 길'을 야심 차게 도입했으며 1993년 '오늘은 좋은 날'의 유명 코너 '귀곡산장'을 부활시켜 젊은 세대의 감각을 덧입히기도 했다.
▲ '일요일 밤 12시 5분 편성, 시청률 높을리가…'
진짜 문제는 방송시간이었다. 일요일 밤 12시 5분 편성이었다. 그것도 앞선 프로그램들에 밀리다 보면 실제로는 밤 12시 20분이 넘어서 시작되는 날도 있었다. 시청률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간대였다. 마지막 방송을 한 지난달 28일, 시간대가 겹쳤던 프로그램들은 KBS 2TV '인천아시안게임 하이라이트'가 2.4%, SBS '달콤한 나의 도시' 재방송이 1.8%, SBS '인천아시안게임 하이라이트'는 0.5%, KBS 1TV '스포츠바둑'이 1.2%였다.
지난 6월 '코미디의 길' 기자간담회에서 이홍렬은 일요일 밤 12시 5분 편성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희망하는 방송 시간대를 묻자 "지금 시간대만 아니면 된다. 다들 졸려서 끝까지 못 보는 것 같다. 12시 5분에 시작한다고 하지만 점점 늦어지며 12시 반쯤 시작한다.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에겐 부담이 많다. 보다가 자는 경우도 있고 놓치는 경우도 있다. 요일은 상관없다. 단 지금 시간대는 조금 힘들다는 생각이다"고 했었다.
김용재 역시 "만나는 사람마다 일요일 밤에 좀 보라고 해도 다음날 회사 가는 사람들은 출근 시간, 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시간대 핑계를 대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당겨주면 좋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MBC의 '코미디의 길' 폐지가 최선이었는지 의문이다. KBS는 '개그콘서트'를 일요일 오후 9시 15분에 배치해 일요일 예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개그콘서트'라도 만약 일요일 밤 12시 5분에 편성된다면 지금과 같은 시청률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미디의 길' 폐지로 MBC 코미디의 부활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개그맨 이홍렬(첫 번째), MBC '코미디의 길'. 사진 = MBC 제공-MBC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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