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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베이징 이용욱 특파원] 중국에서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던 천쯔밍(陳子明) 씨가 췌장암으로 지난 21일 사망했다. 향년 62세.
그는 지난 1952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여느 많은 대륙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사회건설운동에 참여했으며 내몽고 혁명위 주임 등으로 일하다 지난 1975년 정권 비판으로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지난 1976년 4월 5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과 사인방의 탄압에 맞섰던 군중대표 10인 중 한명으로 시위에 참여 뒤 덩샤오핑 집권 후인 1979년 명예회복 조치를 받았다.
천쯔밍은 지난 1980년 베이징화공학원 유기화학 전공과정을 나온 뒤 중국과학원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연구하고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격동기였던 1986~1989년 그는 베이징사회경제과학연구소를 만들어 서양 근대 정치사상과 경제 현대화 개혁에 관한 저술을 내며 운동가로 활동했으며 1991년 정부전복죄로 1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 2002년 특별 조치로 풀려난 뒤 위시라이(喩希來), 화웨이(華偉), 딩차오(丁超) 등 여러 필명으로 해외 매체에서 문필 활동을 계속해왔다.
천쯔밍은 문혁(文革)을 비판하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주문하는 글을 발표하는 한편 1980년대 중반 이후 당 주도 경제자유화에 맞서다 중국 사회 혼란을 초래했다는 죄목으로 자오쯔양과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고인은 최근에 췌장암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강지윤 기자 lepomm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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