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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영화 '나의 독재자'의 설경구가 연기의 끝을 보여줬다. 봉준호 감독이 "대배우만이 할 수 있는 폭과 깊이의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고 말한 건 허언이 아니었다. '나의 독재자' 속 설경구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그의 말에 동감할 수 있을 것.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에서 무대 위 주인공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잡일만 도맡아하는 무명배우 김성근 역을 맡았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무대를 망쳐 버린 그는 자신을 눈여겨 본 허교수(이병준)에 의해 한 오디션에 임하게 된다. 이후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의 대역 역을 맡게 되고, 점점 김일성이 되어가다 결국 김일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설경구는 이번 작품에서 젊은 시절의 성근부터 노년의 성근까지 폭넓은 연기변신을 선보인다. 이를 위해 특수분장의 도움을 받았다. 살을 찌우고 특수분장까지 더한 그는 완벽히 나이가 들어버린 성근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물론 "연기만한 분장이 없다"는 송종희 분장감독의 말처럼 설경구의 연기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무려 5시간을 특수분장에 할애했던 설경구는 "박해일 앞에서는 주름을 못 잡는다. 박해일이 영화 '은교' 때 10시간 동안 특수분장을 했던 사람"이라며 "그 때는 송종희 분장선생님이 혼자 분장을 했다. 말이 10시간이지 저녁 9시에 분장을 시작해 밤을 새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일이는 분장을 한 채 촬영을 위해 5~6시간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해일이가 분장을 할 때 보조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메인이 돼 (분장을 할 수 있는) 손이 많아진 셈이다. 동시에 분장이 진행되니 분장에 소요되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분장하는데 5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것도 고되더라.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좀 나아지기는 했다. 송종희 분장선생님이 내 분장을 하며 해일이에게 미안해 했다. ('은교' 때 해봐서) 해일이 덕분에 시간이 줄었다며 미안하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내 영화를 보면 쑥스럽고 그렇다"며 연기에 있어서도, 고된 분장작업에 있어서도 겸손함으로 일관하는 설경구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박해일의 공으로 돌렸다. 자신보다 먼저 특수분장을 했고, 그 모습으로 연기해 본 선배로서 자신을 배려해줬다는 것.
설경구는 "그나마 박해일이라 가능한 일이다. 상대가 박해일이라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감독님에게 '박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 못 찍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수분장도 그렇고 현장에서 받쳐주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후배라도 해일이가 그러면 내가 부담스럽지 않나. 그렇게 맞춰주면 박해일의 리듬이 다 깨진다. 그런데 자신이 먼저 해봤으니까 충분히 이해를 해주고 맞춰주더라"라며 박해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성근이라는 인물에 몰입한 설경구는 김일성의 대역이 아닌 성근이라는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자신이 목표 지점으로 설정한 부분이 영화 말미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는 장면인 만큼, 이 부분에서 연극 '리어왕'의 대사를 쏟아내는 설경구의 모습은 뒷통수를 치는 듯한 경이로움마저 안긴다. 이런 성근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욕설을 덧붙이는 오계장(윤제문)의 대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건 설경구의 연기가 그만큼 대단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설경구는 "촬영 내내 아버지 세대가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이 세대의 아버지들은 항상 쪼들렸고 헐떡였다. 주어진 짐은 많았지만 넉넉하지는 않았다. 또 무능하더라도 아버지로서 권위는 지켜야 했다. 그런데 어느새 늙어 버렸다. 자기가 없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아버지 같더라. 우리 아버지도 무턱대고 '하느라고 했는데 미안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공부도 가르쳐주고 다 해줬는데도 미안하다고 하셨다. 이해준 감독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또 김성근의 모습 같다. 촬영을 하며 50년대 전후로 태어나 못살던 시대를 겪고 60~80년대를 살아왔던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다"며 애달픈 마음을 드러냈다.
설경구는 인터뷰 중 어쩔 수 없이 김일성이 돼야 했고, 김일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김성근을 "섬처럼 산 사람"이라고 평했다. 혼자서 다른 쪽을 바라보며 섬처럼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 설경구의 몸을 빌어 스크린에 투영된 김성근은 외따로 떨어진 섬이라 외로워 보이지만 그래서 더 우리네 아버지 같다. 물론 '연기의 신' 설경구가 연기했기 때문에 더욱 더 애잔함이 든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설경구가 열연한 '나의 독재자'는 대한민국 한복판,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린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30일 개봉.
[배우 설경구.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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