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연기와 경험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물론 많은 경험들이 연기의 자양분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다. 이를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영화 '현기증'의 도지원이다.
'현기증'에서 도지원은 어렵게 얻은 아기를 잃고 괴로워하는 첫째 딸 영희 역을 맡아 어머니와 딸, 두 가지 모습을 소름 돋게 연기해 낸다. 그는 아이를 잃은 후 분노하고 공허에 찬 눈빛을 보이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가도 어머니를 향한 애증의 감정을 발산하는 딸이 되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특히 아이를 잃고 병원에서 오열하는 신이나 어머니 순임 역의 김영애와 맞부딪히는 신 등은 이 영화의 백미다.
도지원은 "세 분(김영애, 송일국, 김소은)이 캐스팅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떠한 매력 때문에 '현기증'을 택했을까 궁금증도 생겼다"고 말했다. 사실 '현기증'은 저예산 영화에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만큼 쉽지 않은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특히 충격적 사고를 겪은 한 가족이 파멸돼가는 모습은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움을 안길 정도다. 여기에 메가폰을 잡은 이돈구 감독은 '가시꽃'에 이어 두 번째 장편영화. 도지원이 내색치는 않았지만 힘든 작업이란 건 물보듯 뻔한 일이다.
도지원은 "나 같은 경우 당시 감성 연기에 되게 목말랐던 때"라며 "'현기증'은 어떻게 보면 감성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공포스러운 부분도 있다. 내가 공포영화를 못 본다. 공포영화 '신데렐라'를 찍을 때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감성을 다루는 작품에 매력을 느껴 '현기증'을 선택하게 됐다. 찍으며 선택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기증'은 녹록치 않은 작품. 게다가 도지원의 경우 행복한 모습부터 분노하고, 슬프고, 체념하고 게다가 어머니에게 증오심을 내비치다가도 어머니기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모습까지, 다양한 진폭의 연기를 고작 94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풀어내야했다.
도지원은 "연기가 힘들수록 내가 느끼는 희열이 있다. 어려움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라며 "나도 보며 힘들었다. 기술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다. 영화를 보고 멍했다.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 그러고 있더라. '찍을 때 보다도 조금 더 강하구나'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극장에서 나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잔재가 있었다. 뭔가 끌림이 있구나 싶었다. 두 번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다. 우리 영화는 연기자를 따라가지 않나. 이 사람이 나오면 이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고 또 다른 배우가 나오면 그 배우의 감정을 따라간다. 나 자신도 그렇게 보고 있더라"라고 회상했다.
어머니 역의 김영애와의 호흡은 그동안 많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도지원에게도 특별한 기억. 그의 말에 따르자면 김영애에게서 좋은 기운들을 받을 수 있었다고.
도지원은 "난 이기적인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 연기를 할 때도 혼자 연기하는 사람은 별로다. 배우 입장에서 보여지는 부분을 생각해야 하는 게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그 상황에서 그 사람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영애 선생님은 연기 욕심도 많고 연기 열정도 많다. 감성적인 부분도 굉장히 크기 때문에 같이 호흡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분과 연기했을 때 전해져 오는 기운이라는 게 있다. 평상시에는 소녀 같고 후배들을 잘 챙겨주고 위엄보다는 '밥 먹었니?'라고 물어봐주시는 분이다. 그런 면이 굉장히 좋다. 내가 추구하는 연기자, 인간적인 연기자"라며 김영애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이어 "내가 현장에서 선배가 될 때도, 후배가 될 때도 있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김영애 선배님이 그런 식으로 하신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런 분이 계시니까 그 기운이 무척 좋았다. '이 분과 일할 때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 역량을 100% 끌어낼 수 있는 반면 깎는 상대 배우가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영화가 역할은 힘들었지만 마음 편히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이라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에서 도지원의 연기력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화장기 없는 그의 얼굴이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 역인 탓에 짙은 화장을 할 수는 없겠지만, 도지원은 흔한 아이라인 하나 그리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도지원은 "이돈구 감독님의 요구조건이 '완전 민낯 어떠세요?'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더라. 이 영화는 모든 것이 내추럴이다. 외형적으로나 내형적으로나 아무 것도 씌워지지 않은 인간 본연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연기를 보지 않고 배우의 점, 주름 이런 걸 신경 쓰는 사람도 있지 않나. 무엇이 득이고 실인가를 생각해봤을 때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면 1%의 치장은 필요할 것 같았다. 특히나 영화 같은 경우 스크린이 너무 크니까 감출 수 있는 부분의 여지를 주는 게 어떨까 싶었다. 정말 붓만 스쳤다. 라인도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게 나오더라"라며 "우리 영화는 그냥 내추럴이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 2007년 영화 '펀치레이디'이후 7년 만의 스크린 복귀. 영화 '현기증'은 도지원에게 어떠한 작품일까.
도지원은 "주변 반응 같은 걸 보면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열려 있는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며 "연기자는 끝이 없는 것처럼 늘 부족함을 느끼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나. 그런 것에 목말라 있지만 이번 연기를 통해 다시 연기에 재도전하고 싶었다. 그런 계기를 준 작품이었고 영화의 매력을 더 느끼게 됐다"며 즐거은 기색을 내비쳤다.
한편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현기증'은 평범했던 가족이 치명적인 사고 이후 무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김소은 등이 출연했다.
[배우 도지원.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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