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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 민준호 연출에겐 배우들도 궁금해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다. 정확히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민준호 연출과 함께 하는 이들은 저마다 관객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권위를 내려 놓고 다그치지 않는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니 연습은 즐겁고, 작품에는 그 특별한 무언가가 묻어난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 그야말로 갑자기 훅 들어오는 민준호 연출 작품만의 특별함, 배우들이 들어가고 싶은 극단으로 거듭난 간다의 장점이다.
민준호 연출이 새롭게 선보인 연극 '뜨거운 여름'은 창단 10주년을 맞은 극단 간다의 10주년 퍼레이드 마지막 작품. 연극 '나와 할아버지',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를 집필한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공연을 앞두고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배우 재희가 연기를 하면서 과거의 자신이 품었던 꿈과 열정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준호 연출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뜨거운 여름'은 배우들도 즐겁게 하고 있어 나도 좋다. 괜히 폼 잡는게 사라지니까 극의 완성도도 더 높아지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영감을 준다"
민준호 연출은 '뜨거운 여름'을 집필하며 오랜만에 재미를 느꼈다. 쓰는 과정은 힘들고 고충이 뒤따르지만 그 시간들이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했다. 간다 소속 배우 이석이 과거 사랑 이야기하다 틀었던 노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은 간주부터 민준호 연출의 마음을 불지폈다. 단숨에 추억이 떠올랐고 간주를 듣자마자 '뜨거운 여름' 마지막 장면까지 생각났다.
민 연출은 "코드가 맞는 사람이 존재한다는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그런 영감이 줄 때가 있다. 이석은 자기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며 "'나와 할아버지' 이후 사람들이 자꾸 내 작품은 다 내 얘기인 줄 안다. 유년기가 나와 닮긴 했지만 완벽히 내 얘기는 아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난 극중 재희처럼 게임을 좋아했고 반항아였고, 초등학교 이후로 그 어떤 것도 안 외웠다. 맞으면서 공부하는 것 말고는 외우지 않았다. 국어, 영어, 수학만 과외 선생님을 부여서 6년 배웠다. 중2병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중2 때 뇌가 가지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원래 말을 듣고 익히면서 지내다가 내 세계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중2 때부터 진짜로 아무것도 안했다. 난 내 세계를 만드는게 굉장히 센 사람이었나보다. 치기 어려 보일 수도 있겠지만 유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웃음)
이어 민준호 연출은 "그렇게 어른들을 싫어했던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연극영화과에 갔고 연기 전공자가 됐다. 그러다 진선규를 만났고 몸을 잘 쓰는 선규를 보면서 나도 많이 바뀌었다. 내게 선규는 '뜨거운 여름'의 대훈이다"며 "이번에 선규와 함께 해서이기도 하지만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마지막은 좀 옛날처럼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확실히 원캐스트로 하고 그래서인지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 "나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
10년 전 '거울공주와 평강이야기'로 인기를 모은 간다는 민준호 연출을 중심으로 그를 신뢰하는 소속 배우들의 열정으로 극단이 유지됐다. 이에 민준호 연출 책임감도 상당했을 터. 10년을 이어오고, 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의 마지막 작품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그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친구 진선규가 있었기에 큰 힘이 됐다.
민준호 연출은 "사실 간다를 버리려고 애를 쓴적도 있다. 대표도 집어 던지고 놓아 달라고 했다. 그만 두고 싶었다. 근데 사람 본능인 것 같다. 단체에 집결하고 싶어 한다. 근데 그걸 선규가 알아줘서 고마웠다"며 "선규에겐 신뢰를 넘어선 뭔가가 있다. '설마 배신하겠어?' 이런 마음이다. 실제로 결혼했을 때는 내 사랑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한두달 동안 앓이가 생겼었다. '내가 더 잘 할게' 하면서 질투하고 그랬다"고 고백했다.
이어 "처음에 선규가 '뜨거운 여름' 재희를 한다고 해서 빵 터졌다. 체력도 안 될 것 같았는데 자기가 한다고 하니까 너무 신기하고 웃긴 거다. 오랜만에 간다스럽게 작품을 하고 있다"며 "'뜨거운 여름'에서는 처음 맞춰보는 배우들, 스태프들도 많은데 작품에 대한 뜨거움이 전염돼 있는건지 간다스러운 게 있다. 그래서 선규도 힘들어 하면서도 행복해 하는 것 같다. 나도 10년만에 다시 좋은 기분이 바로 든다"고 털어놨다.
"배우들이 자기 것만 할 때가 있는데 '뜨거운 여름'은 그렇지 않다. 연출이 시켜서 들었다 놨다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들이 있다. 연기 호흡의 하나로 훅 들어온다. 배려도 하고 비어 있는 부분은 잘 메꿔준다. 그냥 뜨겁다. 어떻게 이런 배우들을 모았냐고 하면 나도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건 이들은 자신이 행복하고 싶어서 남한테 주는 게 편한 사람들이다. 나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공연을 만들어가는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 같다."
▲ "한 번도 안 뜨겁게 살아본 사람이 제일 바보 같은 것"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작품을 만드니 민준호 연출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들떠 있다. 그는 "내게 뜨거운 여름은 지금인 것 같다. 너무 뜨거운데 그걸 담아낼 그릇이 늙어버렸다는게 아깝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이 제일 뜨거워서 공연도 자꾸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극단을 만든지 10년이 지났지만 다들 그런걸로 파벌을 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안 하려 해도 단체 생활에선 그런게 분명 존재하는데 그런 게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뜨거운 여름'은 초기 간다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게 원래 간다다. 딱 봐도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왔을 때 제일 좋은 힘을 발휘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내가 제일 바라는건 이걸 보고 각자 인생을 존중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며 "작품 주제와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공감하고 뜨거움을 느낀다는건 결국 사람들의 열정을 존중해 달라는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나와 할아버지'랑 비슷한 얘기지만 빠른 길이 존재하고 행복한 길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돈이 필요 없고 기타가 좋으면 기타 치면서 사는 것이고 노래가 좋으면 노래하고 사는 것이 맞다. 돈이 따라올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너무 바보 같다고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번도 안 뜨겁게 살아본 사람이 제일 바보 같은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공연을 봐주길 바란다."
한편 오는 12월 28일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연장 공연을 확정한 연극 '뜨거운 여름'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민준호 연출, 연극 '뜨거운 여름' 공연 이미지. 사진 = Story P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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