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전주 안경남 기자] ‘닥공’ 전북 현대는 2014년을 독주하며 일찌감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자타공인 K리그 최강팀이다. 그런 전북에서 올 시즌 새 꽃이 활짝 피었다. 바로 이재성(22)과 이주용(22)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승강제도가 도입된 이후 K리그 구단에서 ‘신인’은 더욱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성적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면서 검증된 선수가 우선 선택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은 그동안 신인보다 검증된 노장을 재발견해 효과를 본 구단이다. 이동국, 김상식, 김남일, 최은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올 시즌 달랐다. 겁 없는 두 신인, 이재성과 이주용은 팀의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신인들의 무덤’으로 불린 전북에 뿌리를 내렸다. 마이데일리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겁 없는 두 신인의 전북 생존기를 직접 들어봤다.
▲ 브라질 전지훈련
이재성과 이주용이 최강희 감독의 눈에 든 건 올 초 브라질 전지훈련에서다. 전지훈련은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이재성과 이주용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재성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전북에 왔을 때 전지훈련에서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잘 보이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의지가 컸다. 하루하루가 위기이자 기회였다. 하루 잘했다고 마음 편할 수 없었고 하루 못했다고 기죽을 일도 없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최강희 감독님이 알아봐주셨고 전지훈련에서 계속 주전팀 조끼를 입었다. 가능성을 본 순간이었다” 사실 이재성에게 전북 입단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만류했다. 하지만 이재성은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해서 더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이주용은 전지훈련의 기억이 좋지 못하다. “브라질에서 왼쪽 수비수를 처음 했다. 그때는 이재명 형이 연령별 대표팀에 발탁 되서 ‘땜빵용’으로 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속으로 ‘설마 여기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설마가 현실이 됐다”
▲ 데뷔전
데뷔전은 이재성이 빨랐다. 2월 26일 이재성은 전주에서 열린 요코하마(일본)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선발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전북은 3-0 완승을 거뒀다. 공격 2선에 선 이재성은 이승기와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다재다능한 능력을 뽐냈다. 이재성은 “데뷔전을 치르고 2~3경기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팀에 도움이 되면서 점차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주용의 데뷔전은 ‘프랑스 명문’ 올림피크 리옹과의 친선경기였다. ‘수비수’ 이주용이 첫 선을 보인 경기다. 이 경기에서 이주용은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고 최강희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리옹전에서 처음 수비수로 뛰었다. 감독님이 포지션 변경을 제안하셨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땐 불안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가는 건 좋지만 공격에서 수비로 오는 건 다르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하기 싫었다. 하지만 일단 감독님을 믿었다. 나의 다른 점을 보고 그런 제안을 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정말 나와 잘 맞았다. 개인적으로 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 최강희 감독
이재성과 이주용은 최강희 감독의 믿음이 지금의 자신들을 있게 해줬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성은 “감독님께서 워낙 나를 잘 믿어주셨다. 의지해줬고 믿어주셔서 편안하게 시즌을 치렀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런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뛰어야 했다. 운동장에서 나도 모르는 힘이 나온 건 그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님은 특별히 어떤 주문을 하시진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불러서 조언을 해주신다. 데뷔전을 치르기 전에 그랬고 아시안게임을 가기 전과 후에 그랬다. 아시안게임에 발탁됐을 때는 전북이란 팀에서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너의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주셨고, 금메달을 따고 왔을 땐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셨다. 감독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더 강하게 했다” 이주용은 최강희 감독과의 첫 미팅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했다. “포지션 변경을 들은 게 최강희 감독님과의 첫 대면이었다. 감독님 방에 들어갔는데 포지션이 적힌 종이에 최전방 이동국 형부터 이름이 쭉 써져 있었다. 근데 내 이름이 왼쪽 수비에 있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날 잘 모르나?’ ‘내 존재감이 그렇게 없었나?’라고 생각했다. 멘붕이었다. 그때 감독님께서 나의 수비적인 재능을 봤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떤 선수가 그 상황에서 ‘싫어요!’라고 할 수 있겠나. 시켜주면 해야 한다(웃음) 사실 그때만 해도 감독님과 친분이 많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고 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님 덕분에 내가 살았다. 감독님이 날 키워주신 것이다. 물론 아직 더 커야 한다”
▲ 포지션
두 선수는 올 시즌 전북의 확실한 주전 멤버였다. 이재성은 최전방 원톱과 수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 이주용은 리옹전 이후 부동의 왼쪽 수비로 뛰며 전북이 후반기 ‘8경기 무실점’ 행진을 하는데 기여했다. 이재성은 “고등학교 때가지는 중앙에서 미드필더를 봤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공격 2선에서 많이 뛰었는데 그때 쌓아온 것이 프로에 와서 도움이 된 것 같다. 또 최강희 감독님이 여러 포지션을 기용해주셨고 전술 변화를 할 때 위치 변화를 해주셨다. (대학 때의 경험 덕분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측면에서는 어떤 점이 잘 되고 중앙에선 다른 점이 잘 되곤 한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많은 위치에서 뛸 수 있는 건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주용에게 ‘왼쪽 수비’는 낯설었다. 변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전북은 수비하는 방법이 다른 K리그 팀들과 다르다. 정말 타이트하다. 지역적으로 서지 않고 사이드에서는 항상 일대일로 상대를 마크한다. 그런데 내려와서 수비를 해본 적이 없어서 무척 힘들었다. 위치선정도 그랬다. 나는 분명 (수비)준비를 하는데 자꾸 상대 선수가 빠져나갔다. 공격수는 자신이 하는 대로 상대 수비가 따라오지만 수비는 반대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90분 동안 항상 집중하고 상대가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체력적으로도 더 힘들다. 공격할 때는 힘들면 걸어서 내려오는 시간이 있지만 수비는 공격하러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오면 안 된다. 세트피스 때도 마찬가지다. 헤딩에 특기가 없어서 늘 세컨볼을 준비해야 한다. 역습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계속 긴장해야 한다. 볼이 어디로 갈지 생각한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예측하는 것이 몸에 익지 않아서 더 그랬다. 15경기 정도를 뛰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적응됐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경기장에 나가면 늘 긴장됐다. 준비가 부족하면 불안하다. 성남전에서 퇴장 당하고 쉬었다가 수원전에 나갔는데 그 사이 완전 감을 잃었다. 수비가 안 됐다. 불안해서 공격으로 올라가질 못했다. 그때 내가 아직 적응이 안 됐구나하고 느꼈다” 그럴 때마다 ‘명수비수 출신’인 최강희 감독이 이주용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이주용은 “자주 알려주셨다. 측면 수비수 출신이셔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부적으로 알려주신다. 그러면 개인 일지에 그것을 적는다. 그렇게 하고 경기장에 나가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 생존법
누구에게나 생존법은 있기 마련다. 전북이란 강팀에서 살아남은 이재성과 이주용의 생존법은 그래서 더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둘에게 들은 생존법은 다소 싱거웠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로 통했다. 바로 피나는 노력이다. 이주용은 “정말 쉬지 않고 운동한 것 같다. 쉬지 않고 운동하면 누군가 날 알아줘서가 아니고 내가 불쌍해서라도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생존법은 운동밖에 없다. 답은 운동장에 있다”고 했다. 이재성은 “공격수지만 수비력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 같다. 올 시즌 최강희 감독님께서 이전과는 다르게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강조했다. ‘닥공’ 못 지 않게 ‘닥수’가 중요했던 한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시즌 전북은 공격보다 수비가 더 빛났다. 최종전을 남겨둔 가운데 37경기서 단 21실점 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골을 적게 넣은 것도 아니다. 60골을 터트렸다. FC서울(40골)보다 20골이나 많은 득점이다.
▲ 위닝과 수다
저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이재성과 이주용은 그들의 포지션 만큼이나 180도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재성은 “(축구게임) 위닝일레븐을 즐겨한다. 위닝을 하면서 볼을 빼앗는 타이밍을 터득했다. 룸메이트 김기희 형과 자주하는데 거의 내가 이긴다. 이동국, 김남일 형과도 제주 원정에서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못한다. 조작법을 잘 모른다(웃음)”고 했다. 그러나 이주용은 게임을 끊은지 오래다. 그는 “게임은 안 한다. 대학 때는 많이했다. 피파온라인2를 했는데 3으로 바뀐 뒤로 하지 않는다. 재미가 없어졌다(웃음) 전반기에 힘들었기 때문에 게임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스트레스는 잘 모았다가 일산에 있는 집에 가면 친구를 만나서 수다로 푼다.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다. 여자친구는 없다. 지금은 혼자 있는 게 편하다. 근데 형들이 가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면서 놀린다. 특히 이승기 형이 그렇다. 외롭진 않다. 가야할 목표가 많다”
▲ 롤 모델
축구선수에게 ‘롤 모델’은 특별한 동기를 부여해준다. 누군가를 쫓기 위해서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성과 이주용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성은 “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 같이 찬스를 만들어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 팬 분들이 등번호(17번) 때문에 이청용 형과 비교해주시는데 정말 영광이다. 더 열심히 해서 이청용 형을 위협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이주용은 최근 ‘만능수비수’ 박주호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때 숭실대 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박주호형이 윙으로 뛰는 걸 봤다. 진짜 잘했다. 완전 날라 다녔다. 그 형이 지금은 수비수로 변신해 성공한 걸 보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외국선수로는 브라질 출신의 필리페 루이스(첼시)가 롤 모델이다. 이유는 수비를 잘해서다. 이주용은 “필리페 루이스는 최강희 감독님이 원하는 수비를 한다. 상대와의 거리를 잘 조절해서 예측을 잘 한다. 상대를 못 돌아서게 하고 볼을 인터셉트하는 등 90분 내내 묶는다. 최강희 감독님은 상대가 크로스 하나 올리지 못하게 압도하는 걸 좋아하신다. 필리페 루이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서 보여준 활약은 정말 최고였다. 그때 그 선수에게 반했다”
▲ 아시안게임
누군가에겐 최고의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아쉬운 단어다. 이재성은 시즌 초반 전북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시안게임 명단에 발탁되어 2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이주용은 후반기부터 뛰기 시작해 자신을 보여줄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했다. 이재성은 “결승전을 부상으로 못 뛰었지만 정말 기뻤다. 올 시즌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전북에선 우승을 이뤘고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땄다.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웃었다. 그러나 이주용에겐 아쉬움이 남는 아시안게임이다.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근데 사실 기대를 안 했다. 전반기에 경기를 못 뛰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변에서 난리였다. 그러다보니 솔직히 기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발표할 때 내 이름은 없었다. 이주영이 있었는데 ‘이주’까지 보였을 때 설마 했었다(웃음). 원래 보여준 것이 짧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 신인상
신인들의 무덤 전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이재성과 이주용은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신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둘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축구에 집중하면 언제가 상은 따라온다고 믿고 있다. 이재성은 “전북 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신인상까지 받으면 정말 100% 완벽한 한 해다. 하지만 너무 잘 되면 불안할 것 같다. 아무래도 신인상은 김승대(포항) 형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보여 지는 포인트에서 내가 부족하다. 더 분발해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이주용은 내년을 바라보고 있다. “올 시즌은 한 마디로 ‘용 됐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내년에는 승천하고 싶다(웃음) 어릴 때부터 항상 생각하는 게 작년보다 성장하는게 목표였다. 내년에는 반드시 신인상을 노리겠다”
▲ 경험의 교훈
살아가면서 경험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경험은 선수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이재성과 이주용도 최고와 최악을 경험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이재성은 “4월 광저우와의 홈경기가 개인적으로 최고의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광저우 원정에서 1-3으로 패한 뒤 광저우에게 복수하고자하는 의지가 컸다. 정혁 형이 퇴장 당하고 상황이 좋지 못했는데 프로 첫 도움을 기록해 1-0 팀 승리를 이끌며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팬들도 많이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최악의 경기는 홈에서 FC서울에 졌을 때다. 후반에 우리의 실수로 실점했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북은 11월 서울과 같은 스리백 전술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다. 이재성은 “복수하고 싶었다. 우승하는데 있어서 서울을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게 찝찝했다. 최강희 감독님께서 서울전을 준비하면서 서울은 항상 수비적으로 나와서 우리가 역으로 많이 당했다며 서울과 똑같이 하자고 말씀하셨다. 감독님을 믿고 따랐고 결국 통했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 통쾌했다. 서울을 이기면서 우승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고 결국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주용은 최고보다 최악의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최악의 경기는 성남전이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성남전서 이주용은 프로 데뷔 후 처음 퇴장을 당했다. 위기였다. “태클을 할 때 볼만 건드리고 나가려 했는데 볼이 빠졌다. 이미 경고 한 장을 받은 상황에서 퇴장을 예감했다. 그렇게 라커룸에 혼자 들어왔는데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났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다 갑자기 환호성이 들려서 골을 먹은 줄 알았다. 근데 우리가 넣었다. 후반에 관중석에서 응원하느라 기가 다 빠졌다. 완전히 멘붕이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님께선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혼날 각오를 했는데 지금까지 그때 이야기는 안 하신다. 형들은 ‘너 때문에 많이 뛰었다’고 놀렸다. 성남전을 통해 교훈도 얻었다. ‘확실한 것이 아니면 하지말자. 수비는 모험을 걸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스포츠에서 간혹 벼락스타의 탄생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하지만 노력 없는 결과는 언제가 빛을 잃기 마련이다. 한 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페데리코 마케다는 2009년 아스톤빌라전 골로 벼락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후 1군과 2군 그리고 임대를 오가다 서서히 잊혀졌다. 이재성과 이주용에게 2014년은 최고의 한 해였다. 하지만 현재에 안주해선 안 된다. 신인에겐 늘 첫 해보다 두 번째 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재성과 이주용은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사진 = 전북 현대 모터스 제공]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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