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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판소리는 창자(唱者)가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춰 부채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형식의 한국 전통 음악이다. 17~18세기에 태동한 것으로 알려진 판소리는 그러나 여전히 대중에게는 매력적인 장르가 아니다. 그저 지루하고 따분한 음악의 한 장르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다. 이에 공영방송 KBS가 나섰다. '알고 듣는 판소리, 보는 즐거움'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시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도다.
'2014 KBS 대기획'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대의 작창 판소리'가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한국방송전파진흥원 경쟁다큐멘터리 부문 선정작인 '시대의 작창 판소리'는 제작 기간 20개월, 예산 8억원, 참여 배우와 스태프만 1,800여명이 투입된 대작이다. 특히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내세워 판소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인근 식당에서 진행된 '시대의 작창 판소리' 기자간담회에서 손성배 KBS전주총국 PD는 "프로그램 규모가 크다보니 제작만 2년이 걸렸다. 드라마로 따지면 기존의 대하사극보다도 규모가 크다"며 "이 프로그램이 한국방송전파진흥원 경쟁다큐멘터리 부문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장르적 내용적 특성 때문이다. 특히 해외 판매 가능성이 높아 선정될 수 있었다. 미주 지역이나 유럽 쪽에서 해외 판매와 관련해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KBS가 야심차게 내놓은 '시대의 작창 판소리'는 모두 세 편으로 구성돼 있다. '범법자 춘향 재판기' '신흥재벌 흥부의 경제학' '오래된 미래 판소리'다. 모두 기존 '춘향가' '흥부가'를 재해석 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도록 했고, 마지막 '오래된 미래 판소리'는 오늘 날에도 계속 작창이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는다. 이미 우리의 눈과 귀에 매우 익숙한 '춘향가' '흥부가'가 어떤 시대상을 담고 있고, 과연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범법자 춘향재판기'는 변학도와 춘향의 재판 이야기로 춘향가를 재해석한다. 재판관과 죄인으로 만난 변학도와 춘향은 당시 실정법을 바탕으로 치열한 법리 논쟁을 펼친다. 손성배 PD는 "사랑이야기를 그린 기존 춘향가와 달리 우리는 재판기 형태로 간다. 춘향가 속에는 사실 더 깊은 의미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며 "춘향이의 대항은 신분제가 붕괴되는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동학농민군이 1차 봉기 때 춘향가를 진군가로 부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신흥재벌 훙부의 경제학' 역시 형제의 우애를 그린 기존 흥부가에서 탈피, 놀부를 금융자본가의 탈을 쓴 고리대금업자로, 흥부는 빚조차 쓸 수 없는 신용불량자로 등장한다. 교환경제에서 화폐경제로 전환되던 조선 후기, 온갖 심술을 부리며 추심 행위를 하는 놀부와 그런 고리대금 때문에 유민의 길을 선택한 흥부를 통해 공동체적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특히 '신흥재벌 흥보의 경제학'은 한걸음에 300년을 건너 뛴 놀부가 현대 도시에 등장해 '흥부일수'라고 적힌 전단지를 집어 드는 흥미로운 장면도 등장한다.
'오래된 미래 판소리'는 현재의 모습을 담아낸다. 손성배 PD는 "판소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 날에도 작창(판소리 창작)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판소리는 바로 오늘 날 우리에게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적 기능 뿐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시대의 작창 판소리' 3부에서는 판소리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이 다뤄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新장르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란?
'시대의 작창 판소리'는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라는 생소한 장르로 제작된다. 이 새로운 장르는 판소리에 드라마와 뮤직비디오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판소리에 영상을 입혀 시청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함이다.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판소리에 좁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제작진의 배려다. 그러나 워낙 새로운 장르인 탓에 제작진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년차 베테랑 손성배 PD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손성배 PD는 "나도 해보지 않은 장르라 편집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드라마적인 요소도 살려야 하고, 다큐멘터리적 요소도 적절히 배치해야 했다. 또 뮤직비디오까지 들어가야 했다. 이런 것들이 정말 힘든 작업들이었다"며 "기존에도 다큐드라마라는 장르가 있었지만, 우리 작품은 좀 더 드라마적 완결성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다큐를 통해 왜 이것이 시대의 작창인지를 설명하려 했다. 만약 여기서 다큐의 비중이 높았다면 그냥 다큐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드라마의 완결적 요소를 갖추고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부분에서는 다큐적으로 풀어냈다. 사실 이 경계를 정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판소리는 노래 자체가 가진 가사와 그 의미 뿐 아니라, 장르에 담긴 전통적인 선과 미, 그리고 한복의 화려한 색감까지 다양한 예술이 복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다양한 촬영 기법을 동원해 이 선과 미를 살리고자 애썼다. 이로 인해 판소리가 가진 깨알같은 재미는 물론, 음악성 예술성까지 확연히 드러날 수 있다. 그렇다면 판소리는 과연 글로벌 아이템으로 거듭나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한류의 중심에 설 수 있을까.
◆ '글로컬'이 곧 경쟁력
'글로컬'은 국제(global)와 현지(local)의 합성어로 지역 특성의 세계화를 말한다. 즉, 판소리라는 지역 문화가 오히려 세계에서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손 PD도 미국 연수 시절, 새로운 것보다 이미 우리가 가진 것(전통)도 얼마든지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앞서 경쟁 부문 공모 과정에서 BBC와 내셔널디오그래픽 등 해외 매체들이 흥미로운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손 PD는 "세계소리축제 당시 영국의 선라이즈라는 매체의 편집장이 '처음 영국에서 판소리를 듣고 '최악의 음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한 비트의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외국인의 귀에도 판소리는 당최 알 수 없는 가사로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들렸을 것"이라며 "그런데 후에 그 분이 영어로 번역해서 띄운 판소리를 듣고는 '내가 판소리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던 자체가 잘못됐었다'고 했다. 그 말은 직접 창자의 얼굴을 보고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니 비로소 판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렸다는 말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판소리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기기 위해서는 영상화와 더불어 내용을 알기 쉽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말은 외국인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가사를 이해하고, 또 창자의 표정과 몸짓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대상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판소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영상에 익숙한 지금의 세대에게는 판소리를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무언가가 바로 '시대의 작창 판소리'가 될 수 있다.
손 PD는 "우리 프로그램은 춘향가와 흥부가를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달리 더 재미있게 재해석해 흡인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된다면 젊은 층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장르가 될 것"이라며 "이미 해외에서도 판소리가 예술적인 면에서도 점차 인정받고 있다.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아마 프로그램을 보시면 절대 후회 안 하실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대의 작창 판소리'는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오후 10시, KBS 1TV를 통해 방송된다.
[손성배 PD, KBS 1TV '시대의 작창 판소리' 스틸컷. 사진 = KBS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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