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진정한 라이벌.
한국농구에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수식어. 정확히 말하면 한국농구에 팬들의 흥미가 떨어진 원인 중 하나가 라이벌의 부재. 이충희-김현준 등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진정한 라이벌 구도가 있었다. 그러나 프로농구 18년 역사만을 보면 확실한 라이벌 구도를 꼽기 힘들다. 선수, 지도자, 농구관계자 모두 반성해야 할 부분.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신인왕을 다투는 이승현(197cm, 오리온스)과 김준일(202cm, 삼성)의 행보가 흥미롭다. 1992년생 두 동갑내기는 올 시즌 신인드래프트 1,2순위로 KBL에 입성했다. 아직 대학 졸업장도 받지 못했지만, 소속팀에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팀 내 비중이 매우 높다.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주전을 꿰찰 정도로 기량 자체가 좋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도 라이벌이었다. 이승현이 용산고, 김준일은 휘문고를 나왔다. 고려대와 연세대에서도 4년간 필생의 라이벌. 흥미로운 건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이승현이 김준일에게 기록, 팀 공헌도가 밀린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 올 시즌 초반만 해도 그런 흐름은 이어졌다. 이승현은 김준일과의 맞대결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즌 중반 조금씩 전세가 역전되고 있는 게 감지된다. 올 시즌 성적을 보자. 김준일은 27경기서 평균 27분14초간 13.3점(11위-국내선수 2위) 3.4리바운드 0.9블록슛, 이승현은 29경기서 평균 31분55초간 9.3점 4.8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51.3%(1위) 1.5어시스트 0.6블록슛.
▲엇갈리는 희비쌍곡선
이승현은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 충격을 많이 받았다. 심리적으로 극복해냈다. 그리고 피 나는 노력으로 3점포를 완벽하게 장착했다. 개막하자마자 팀내 장신 포워드들과 시너지효과를 이뤄내면서 자신의 팀 공헌도를 높였다. 오리온스가 개막 8연승을 일궈낸 원동력에는 이승현의 헌신이 녹아있었다. 대학 시절까지 간판 공격수였던 그는 포지션 변경과 동시에 공 소유 시간을 줄이면서 팀에 공헌하는 방법을 익혔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 그의 농구 센스는 역시 좋다.
김준일은 상대적으로 어정쩡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운동을 많이 하지 못한 채 시즌에 돌입했다. 초반 이동준의 백업으로 기용됐다. 출전시간이 들쭉날쭉하면서 컨디션 유지를 옳게 하지 못했다. 대부분 신인이 대학 시절까지 간판으로 활약하다 프로에서 갑자기 출전시간이 불규칙적으로 바뀌면서 겪는 현상. 상대적으로 이승현은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공헌도를 높여갔다. 결정적으로 김준일은 요령이 떨어지는 수비력을 극복하지 못했다. 갖고 있는 힘은 좋은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전략적으로 파울을 사용하지 못했고, 영리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또 달라졌다. 오리온스의 경우 빅 라인업 위력이 사실상 사라졌다. 가드진 약세, 트로이 길렌워터의 외곽 성향 표출로 이승현이 외곽에서 팀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축소됐다. 최근엔 이승현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수비하는 팀도 많아졌다. 추일승 감독은 이승현을 골밑으로 투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상황. 자유투 라인 뒤와 3점슛 라인 사이의 퍼리미터가 주무대가 돼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완벽히 적응하진 못했다. 결국 득점을 비롯한 개인기록들이 동반 하락했다. 팀 침체와 궤를 함께 했다. 최근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즌 초반에 비해 인상적이진 않다.
반면 김준일은 점점 위력을 더해간다. 이상민 감독은 이동준을 백업으로 돌리고 김준일을 주전 빅맨으로 기용한다. 힘이 좋아서 어지간한 외국인센터들과의 매치업서 제법 버텨낸다. 물론 이 감독 지적대로 여전히 수비 테크닉에 약점은 있다. 반대로 공격력이 위력을 더하고 있다. 리오 라이온스가 수비수들을 많이 달고 다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신인이 2번 공격옵션으로 영양가 높은 득점을 올린다. 외국인선수와의 바디체크에서 밀리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한 뒤 안정적으로 공격한다. 국제무대서도 통할 수 있는 부분. 물론 23일 전자랜드전서는 부진했다. 그러나 최근 활약만 보면 김준일이 이승현의 공헌도를 추월했다고 보면 된다.
▲반전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이제 시작이다. 두 슈퍼루키에게 또 다른 반전이 있을 수 있다. 이승현의 보이지 않는 장점 중 하나는 치열한 고민을 통한 빠른 변화다. 3점슛 장착만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리온스 관계자는 “이승현은 어떻게 하면 팀 공헌도를 높일 수 있을지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아이다. 코트 밖에서 더 치열하다”라고 했다. 그는 시즌 초반에도 “내가 스크린과 컷인을 더 많이 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길렌워터에게도 할 말은 하겠다”라고 했다. 여전히 여의치 않은 부분이 있지만, 그만큼 변화에 능동적이다. 지금 정체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시즌 중반. 길렌워터의 발등, 허벅지 부상으로 이승현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줄 때가 됐다.
김준일의 성실함과 꾸준함도 인정받아야 한다. 그는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이승현을 제대로 꺾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차분하게 준비했다. 결국 최근 기록과 공헌도에서 이승현을 추월했다. 한 농구관계자는 “준일이가 대학 3학년 때까지는 좋은 빅맨이었지만, 칭찬하는 것보다 그렇게 성장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그런데 4학년때 갑자기 너무 좋아졌다. 그 상승세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꾸준히 노력한 성과를 보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두 라이벌은 프로 루키 자격으로 신인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묘하게 희비쌍곡선을 그리면서 스토리가 부족한 KBL에 흥미를 불어넣고 있다. 계속 발전하면서 좋은 라이벌로 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신인왕 경쟁뿐 아니라 한국농구 발전을 위해서도 두 사람의 행보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퍼리미터에서의 효율성 극대화(이승현), 수비력 향상(김준일)을 이룰 경우 리그 최고의 4, 5번으로 성장 가능하다. 명품 라이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승현과 김준일.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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