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무리하지 않고 이대로 쭉 가는 게 중요합니다.”
초보감독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보여주기식 무리수 띄우기’다. 감독이 구단, 팬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맡고 있는 팀과 상대팀들에 대한 전력, 전체적인 판도 등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리스크가 크다면, 실패로 돌아갔을 때 팀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면 그 승부수는 던지지 않는 게 현명하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 kt 전창진 감독은 그런 오류를 거의 범하지 않는 사령탑이다. 누구보다도 각 팀들의 전력과 전체적인 판세를 냉정하게 읽는 고수들. 분명 모비스와 kt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두 감독은 쉽게 승부수를 띄우지 않는다. 자칫 기존의 장점마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시즌 중에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변화로 서서히 팀을 바꿔나간다.
▲김영만 감독 안전운행
그런 점에서 동부 김영만 감독의 행보는 인상적이다. 김영만 감독은 남녀프로(동부, KB), 대학(중앙대) 등 코치 경력은 꽤 길지만, 사령탑은 올 시즌 동부에서 처음으로 맡았다. 그런데 올 시즌 팀을 운영하는 모습만 보면 초보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동부에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 일찌감치 팀을 파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차분하게 이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부는 김주성, 윤호영이라는 매우 좋은 선수를 보유했다. 득점력은 높지 않지만, 수비와 골밑 장악으로 팀 공헌도가 매우 높은 스타일. 동부는 지난 두 시즌간 부진했는데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윤호영의 부재가 가장 컸다. 윤호영이 정상적으로 팀에 합류한 올 시즌, 동부는 준수한 행보를 하고 있다. 6일 전자랜드에 패배했지만 22승12패, 3위로 올스타브레이크를 맞이했다.
김 감독은 지난 4일 오리온스전을 앞두고 “멤버가 좋아서 잘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웃었다. 자신은 철저히 묻어가고 있다는 겸손. 하지만, 김주성과 윤호영을 앞세워 특유의 철벽수비(68.9실점, 최소 1위)를 재구축한 건 김 감독의 공이 크다. 이를 바탕으로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김 감독은 “긴 연승보다도 연패만 안 하면 된다”라고 했다. 기본적인 동부 전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코멘트.
김 감독에게 “혹시 2위 욕심은 없나”라고 질문했다. 3위 동부는 2위 모비스에 3.5경기 뒤졌다. 시즌 막판인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격차. 하지만, 올스타브레이크를 통해 팀 정비를 하면, 시즌 막판 한번쯤 승부를 걸어 볼만도 하다. 더구나 4위 오리온스는 동부보다 4.5경기 뒤처진 상황. 리스크로 인한 순위 하락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실제 많은 감독이 올스타브레이크에 공수전술을 다듬어 시즌 막판 전력을 끌어올린다. 더구나 프로농구서 정규시즌 3위와 2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플레이오프를 6강에서 시작하는 것과 4강에 직행하는 건 천지차이.
하지만, 김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리하다가 밑에 있는 팀들한테 잡힐 수도 있다”라고 했다. 이어 “올스타브레이크 이후에도 이대로 운영할 것이다”라고 했다. 수비력에 집중하는 팀 컬러를 유지하겠다는 의미. 3위를 지켜 6강 플레이오프부터 승부를 보겠다는 것. 김 감독 안전운행의 실체다.
▲SK 모비스를 넘어서고 싶다면
김 감독의 최종 목표는 챔피언결정전 우승. 아직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 동부 전력과 위치를 감안하면 감독이 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하려면 결국 선두 SK와 2위 모비스를 넘어서야 한다. 동부도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두 팀과의 승부가 쉽지 않다. 선두 모비스에 3전전패로 절대 열세다. SK에는 2승1패로 우세지만, 일방적인 경기는 지난해 11월 30일 맞대결(26점차 승)뿐이었다.
한 농구관계자는 “동부가 모비스와 SK를 따라잡으려면 수비력의 세밀함을 키우고, 공격력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동부가 두 팀을 상대로 우세하려면 기존의 강점 유지만으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동부는 올 시즌 평균 71.9득점으로 9위에 불과하다. 김 감독도 “우리는 해결사가 없다. 수비를 더 강화해서 승부를 봐야 한다”라고 했다. 동부에는 애런 헤인즈, 문태영, 트로이 길렌워터 같은 해결사가 없다.
최근 외곽공격에 능한 앤서니 리처드슨을 승부처에서 기용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리처드슨은 폭발력이 있다. 승부처에서 그 장점이 발휘될 경우 동부에 미치는 효과는 크다. 김 감독은 “리처드슨이 발이 빠르기 때문에 지역방어를 쓰는 것도 편하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앞으로도 리처드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동부는 최근 수비력에 기복이 있다. 6일 전자랜드에 80점, 지난달 28일 LG에는 90점을 내줬다. 4라운드 평균실점은 72.3점으로 한창 좋았던 1라운드(63.1실점)에 비해 약 10점을 더 내주고 있다. 김 감독의 말에 힌트가 있다. 리처드슨을 기용해 지역방어를 사용하기 편한 건, 달리 말해 데이비드 사이먼의 지역방어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사이먼은 좋은 빅맨이다. 그러나 과거 동부산성을 구축했던 외국인 빅맨들에 비해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김주성은 최근 분투 중이지만, 나이가 많아 예전과 같은 수비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골밑에서의 터프함은 약간 떨어진 상황. 출전시간도 줄었다. 김 감독은 “호영이 몸 상태도 왔다 갔다 한다”라고 했다. 발가락 수술을 받은 뒤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여전히 리그 최강 수비력을 지녔지만, 김주성과 윤호영의 수비지배력은 예전과 같은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2년차 두경민과 신인 허웅이 과거 황진원처럼 팀 수비력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하는 상황.
이런 이유들로 김 감독은 무리한 승부수를 띄우지 않는다. 하루 아침에 약점을 완벽하게 메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 정규시즌서는 매우 인상적인 행보. 궁금한 건 플레이오프다. 초보같지 않은 김 감독이 SK와 모비스를 넘어서기 위해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궁금하다.
[김영만 감독(위), 동부 선수들(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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