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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누구나 사춘기를 겪고, 이를 극복하며 성장한다. 그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춘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기 때문에 무대에서 더욱 관객과 교감할 수 있다. 배우 윤나무는 이 사춘기를 전면에 드러낸 뮤지컬 '사춘기'를 통해 관객과 교감하고 있다.
윤나무가 출연중인 뮤지컬 '사춘기'는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가 1891년 쓴 희곡 '눈 뜨는 봄'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상황에 맞게 번안해 학력 위주의 입시지옥에 갇혀 사는 청소년들의 고통을 다룬 작품. 청소년기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통쾌할 만큼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그에 대한 가식, 위선으로 무장한 기성세대를 향한 위트 넘치는 비판이 때론 가슴 저리게 느껴지게 한다.
극중 전학 오자마자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영민 역을 맡은 윤나무는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연우무대라는 극단에서 하는 공연도 해보고 싶었는데 계속 연이 안 닿았다가 '사춘기'를 하게 됐다. 젊은 배우들 많이 나와 젊은 에너지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가지가 잘 맞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나도 젊지 않나. 다들 허울없이 지낸다. 연출님이 진두지휘를 잘 하시신다. 컵차기로 대동단결 한다"며 "그래서 무대에서만 딱 집중하고 훅 털고 나올 수 있다. 약간 말랑말랑 하지만도 않고 센 역할이면서도 세게만 할 것 같진 않고.. 여러가지 복잡한 부분들을 무대에서 표현하려 한다"고 전했다.
▲ "영민이는 사랑 받고 싶은 거다"
윤나무는 지난해 뮤지컬 '카인과 아벨' 쇼케이스에서 뮤지컬 '사춘기' 박소영 연출과 함께 했다. 당시 박소영 연출은 '사춘기' 출연을 제안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원작이 같고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한다는 것에 흥미를 가진 윤나무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본도 못 본 상태였지만 박소영 연출과의 이전 작업이 좋았기에 '사춘기'를 준비하게 됐다.
윤나무는 "일단 느낌이 전혀 다른 '눈 뜨는 봄'을 한국 사람들 정서에 맞게 어떻게 각색하고 번안할까 궁금했는데 보고나니 전혀 원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나라 정서에 잘 맞아 떨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내용이 굉장히 자극적이지 않나. 자살, 낙태, 첫 경험. 이런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우리 지금 세대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드라마 자체, 대사들에 함축적인게 되게 많다. 처음에 딱 봤을 때는 재밌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싶어 하는 거지?' 했다. 연습 하면서 연출님과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갔으면 좋을지 많이 얘기했다"며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춘기를 지내온 사람들도 있고 지내기 전인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사춘기를 어떻게든 버텨내고 이겨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처럼 '사춘기'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래도 사춘기의 담을 넘고 이겨내는 드라마를 생각하고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혀 사랑 받지 못했던 영민이가 선규와 수희를 만나 어느 정도 사랑에 대한 교감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죽고 싶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영민이지만 선규가 환상 속에서 '같이 춤 추러 가자'고 하는게 '너무 험난한 세상이지만 너는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살아나갈 수 있는 메시지를 줬다고 생각한다. 수희와의 관계 역시 호감이 있으니 호기심이 생기는 거고 '걔를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욕망도 곧 수희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랑 받고 싶은 거다. 내 마음 안에서도 '너한테 사랑 받고 싶다'는 단 한가지 갖고 가는 게 있다."
사실 윤나무는 학창 시절 영민이보단 반장에 더 가까웠다. 그는 "영민이처럼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순전히 석차 안에서 인기투표로 한 거지만 고1 때 부반장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윤나무는 자신과 너무 다른 영민이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 과정에서 영민이의 가족사나 그가 처해진 환경 등을 철저하게 구축해 갔고, 이해하게 됐다.
▲ "청소년기, 어른들이 길잡이가 돼주셨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사춘기' 속 영민이 나이, 윤나무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그는 "'사춘기'에서 반장은 공부를 잘 하지 않나. 나는 공부 못하는 반장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를 그렇게 못하는 애는 아니었는데 반장처럼 잘 하지는 못했다"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는데 엄마한테 혼나기 싫어서 벼락치기로 공부도 중상위권으로 하고. 축구 좋아하고 농구 좋아하고, 운동하는 친구들이랑 맨날 어울려 다녔다"고 고백했다.
이어 "고등학교 때 한 학년에 23반까지 있을 정도로 학생이 많았다. 그래서 같은 반 애들끼리도 잘 모르고 동아리 같은 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이라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랑 계속 어울렸다. 오후 5시까지 수업하고 야간자율학습하고 그런 생활이 연속되니까 척박했다"며 "나 역시 공부해서 대학을 가려는 학생이었는데 고3 때 공연을 보고 진로가 바뀌었다. 배우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수능을 보고 싹 진로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 전엔 신문방송학과에 가서 방송국 PD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근데 공연을 보고 '아 저거 해보고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안재영이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인데 우리 둘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연극영화과를 준비했다. 근데 재영이는 바로 대학교에 붙었고 난 재수를 했다. 이후엔 재수 준비를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꺼이꺼이 하느라 재영이가 많이 도와줬다. 선택의 여지 없이 재영이가 시험 볼 때 썼던 MR을 그대로 써서 실기 시험을 봤다. 다행히 합격했다. '사춘기'를 하면서 드는 생각인데 사실 나는 지금 좋하는 일을 찾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일까. '사춘기'는 윤나무에게 지금의 청소년들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그는 "청소년들이 좀 행복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사실 친구들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집이나 학교에서 꿈을 무시하지 않고 도와줘야 한다. 그래도 지금은 생각이 좀 신선해졌으니 많이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우리 때가지만 해도 '연극영화과 갈거야. 배우가 될 거야' 하면 약간 '뭐지 쟤?' 하는 눈빛이었다. 우리 학교 역시 전교에 나와 안재영 딱 두명이었다. 그 정도로 되게 생소했다. 실기시험도 조용히 가서 봐야할 정도로 색안경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다.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게 어른들이 길잡이가 돼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인재가 나올 것 같다."
▲ "인생의 사춘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사실 윤나무는 청소년기에 사춘기를 겪진 않았다. 그는 "지금은 나아졌는데 어릴 때 애늙은이였다. 사춘기 방황 같은 게 없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스타일이다. 어릴 때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부모님을 보면서 방황을 하면 안된다고 내 안에서 제동을 건 것 같다. 기독교 집안이라 종교적인 영향도 컸다. 주변에 노는거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지만 은연중에 종교가 몸에 스며들어 '저건 해서는 안 될 일인 것 같아' 이런게 있어서 잘 놀면서도 청소년이 해서는 안 될 일은 안했다"고 밝혔다.
청소년기를 별 탈 없이 보내서일까. 오히려 대학 입학 후 윤나무는 사춘기를 겪었다. 그는 "대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안 하던 반항도 했다. 열심히 학교에 다녔지만 연기라는 거에 대해 뭔가 담을 못 넘어가는 느낌이었다"며 "내 솔직한 무언가가 안 나오는 느낌이었다. 뭔가 안전하게 연기하고 솔직한 것들, 응어리진 것들이 안 나오는 거다. 딱 이정도라는 생각을 갖고 정답을 계속 구했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머리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몸으로는 말로 나오는 연기로 전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계속 거짓말 하는 것 같았다. '왜 이럴까' 고민을 해보면 안전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근데 연기는 사실 때로는 불규칙하게, 내가 하고싶은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 하지 않나. 근데 난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오히려 너무 갇혀 있으니 사춘기가 왔다. 근데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부터 파생된 것 같다."
고민의 연속이었던 만큼 윤나무는 많은 시도를 했다. 카메라로 무작정 촬영해 보기도 하고 연기할 때 오로지 자신만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 중 교수님의 "술 진탕 마시고 집에서 깽판도 쳐봐라"라는 조언에 따른 것도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기독교 집안을 발칵 뒤집었던 사건이다.
"순진한 마음에 시키는건 다 했다. 술 마시고 현관문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연기의 담을 못 넘는다는 게 화가 나서 막 소리를 질렀다. 사실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아버지가 끌고 들어가고 엄마가 진짜 놀랐던 것 같다. 그때 뭔가 용기는 나서 평소 하지 못했던 얘기도 했다. 남자인데도 아버지가 밤 11시만 넘어도 전화를 한다. 신데렐라도 아니고.. 그런 부분을 막 이야기 했다.(웃음) 그래서 연기적인 것은 깨졌냐고? 안 깨졌다. 연기적인 것도 못 깼고, 술도 안 깼다.(웃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연기에 대한 것들이 절실했던 것 같다."
쉴 틈 없는 노력 덕분일까. 윤나무는 서서히 넘지 못했던 담을 넘고, 자신 안의 것들을 깨가고 있다. 소극장 무대에서 데뷔해 관객들과 제대로 교감할 수 있게 되니 '내가 대화를 진솔하게 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배우가 느끼니 관객도 자연스레 교감을 느꼈고 조금씩 자신 안의 것을 깨가기 시작했다.
"그런걸 느끼다 보니까 표현이 훨씬 더 섬세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그 섬세함이 많이 나오는 거다. 다행히 연출님, 작가님, 배우들도 다 진솔한 분들을 만나 나도 그렇게 변한 것 같다. 사춘기는 쉽지 않은 시기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고,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춘기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그 담을 하나 넘으면 그래도 넓은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오는 것 같다. '사춘기'를 보는 관객들 역시 인생의 사춘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연기하고 있다."
한편 뮤지컬 '사춘기'는 오는 2월 15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배우 윤나무. 사진 = 연우무대, is ENT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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