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호주 시드니 안경남 기자] 슈틸리케호가 이라크를 꺾고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무실점은 계속됐고 첫 세트피스 골까지 터졌다. 여기에 수비수 김영권까지 득점에 가세했다. 이제는 운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한국의 질주는 멈추는 법을 잊은 듯하다. 그래서 스포츠는 결과가 중요하다.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모든 게 안 좋게 비춰진다. 반면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좋아 보인다. 하루 덜 쉰 이라크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이란과의 연장승부가 독이 됐다. 체력이 발목을 붙잡았다. 이라크의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세트피스에서 약점을 드러냈고 결국 이것이 승패를 가른 치명타가 됐다. 한국이 승리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은 경기였다.
● 한교원+차두리 선발…맞불작전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과 비교해 두 포지션에 변화를 줬다. 이근호 대신 한교원이 오른쪽 윙포워드로 나왔고 김창수 자리에는 차두리가 선발로 출전했다. 일종의 맞불작전이었다. 힘과 스피드를 갖춘 한교원과 차두리를 투입해 이라크의 강점인 왼쪽 측면을 사전에 틀어막기 위한 변화였다. 나머지 포지션은 같았다. 이정협이 3경기 연속 원톱에 섰고 손흥민, 남태희가 2선에 섰다. 기성용과 박주호가 중원을 맡고 수비는 차두리와 함께 김진수, 김영권, 곽태휘가 짝을 이뤘다. 골키퍼 장갑은 김진현이 꼈다.
● 전반전
예상대로 한국이 경기를 주도했고 이라크가 역습을 취하는 형태를 보였다. 이라크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마흐무드가 전방에서 내려와 볼을 소유한 뒤 2선에서 빠르게 침투하는 동료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체력이 문제였다. 이란과 연장승부를 펼친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공격의 세기는 약해졌다. 한국이 분위기를 바꾼 건 전반 20분이었다. 세트피스에서 이정협의 골이 터졌다. 김진수가 올린 크로스를 이정협이 머리를 받아 넣었다. 이라크는 직접 프리킥을 주지 않기 위해 먼 거리에서 파울을 범했지만 김진수의 롱킥이 이라크 수비를 무너트렸다. 재밌는 건 이 장면을 제외하곤 한국의 크로스 정확도가 매우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 번의 정확한 크로스가 골로 연결된 셈이다. 운이라면 운이고,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크로스가 부정확했다. 볼이 잘못 날아가면 골을 넣을 확률이 떨어진다. 그동안 세트피스 훈련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잘 된 날이고 이전에는 잘 안 된 것뿐이다”고 했다. 결국 복불복이란 얘기다. 수비에서도 한국은 행운이 따랐다. 전반 42분 곽태휘의 헤딩 미스를 틈타 압둘제라가 찬스를 잡았지만 그의 발을 떠난 볼은 크로스도, 슛도 아닌 애매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럭키다.
● 후반전
후반 시작과 함께 슈틸리케 감독은 한교원을 불러들이고 이근호를 투입했다. 경기전부터 의도된 변화처럼 보였다. 이근호는 전반 중반부터 트랙에 나와 몸을 풀며 후반 교체를 암시했다. 한교원이 전반에 우측에 넓게 서서 터치라인을 돌파했다면, 이근호는 보다 중앙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같은 듯 다른 두 선수를 번갈아 투입해 이라크 왼쪽 수비를 교란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변화가 가져온 어드밴티지는 크지 않았다.
● 장현수+한국영…슈틸리케식 굳히기
보통 휘슬이 울리고 5~10분 사이는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가 많다. 이 때 골이 많이 터지는 이유다. 한국과 이라크가 그랬다. 한국은 후반 2분 김진현이 골문을 비우고 나와 위기를 자초했다. 다행히 이라크의 슛은 골대를 외면했다. 위기를 넘긴 한국은 후반 5분 김영권의 추가골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코너킥 이후 상황에서 이정협이 가슴으로 떨궈준 볼을 김영권이 왼발 발리로 때렸고 이라크 수비에 맞고 굴절돼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실상 경기는 이 순간 끝났다. 2-0이 된 후 양 팀은 교체로 변화를 노렸다. 한국은 장현수를 투입해 굳히기에 들어갔다. 장현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했지만 상황에 따라 깊숙이 내려와 스리백 같은 효과를 줬다. 대회 초반 슈틸리케 감독은 장현수를 주전 수비수로 기용했다. 하지만 쿠웨이트전 이후 장현수를 후반 굳히기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장현수가 볼을 다루는데 있어 센터백보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더 낫다고 판단한 듯 하다. 수비적인 상황이 필요할 때 한국영보다 장현수가 먼저 선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라크는 3명의 공격수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지만 기성용을 빼고 한국영까지 투입한 한국 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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